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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인터넷 도박 중독 '심심풀이가 패망의 길로'

 


안개처럼 자욱한 담배연기, 화투장에 착착 감기는 국방색 담요, 그리고 그 위에 수북이 쌓인 판돈들. 일명 하우스(도박장)하면 떠오르는 풍경들이다. 그러나 이제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담요는 컴퓨터 모니터로, 판돈은 사이버머니로 바뀌었다. 물론 타는 가슴을 식혀주는 담배연기는 그대로다. 요즘 온라인 성인 게임사이트를 통한 '인터넷 도박'의 폐해가 만만치 않다. 인터넷 강국을 '인터넷 망국'으로 몰고 가는 도박 실태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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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중소기업 중간 관리자였던 배모씨(36·서울 대방동)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사무실에서 지나치게 인터넷 도박에 탐닉하다 결국 짐을 싼 '도박 중독 샐러리맨'의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그는 자신의 퇴사를 두고 '자의'라고 말했지만 그를 알음알음 소개해 준 사람은 '타의'라고 귀띔했다. 지난 23일 서울 대치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대뜸 "내 재산은 3,000억원"이라며 웃음지었다. 도박사이트에서 벌어들인 사이버머니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당장 현금으로 바꾸면 400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으며, 매입자를 잘 만나면 더 받아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시간만 투자하면 재산은 얼마든지 불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도 심심풀이 삼아 고스톱과 포커게임을 즐기기 시작했으나 자신에게 놀라운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이 그렇듯 사이버머니를 충전하기 위해 아바타 아이템을 마구 사들이고, 그래도 모자라면 암호가 걸린 방을 만들어 사이버머니를 몰래 구입하곤 했다. 돈이 많이 나가는 달에는 200만원까지 써봤다. 해고의 이유는 괘씸죄. 주로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게임을 즐기다 보니 동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적어지고 회식자리도 피하게 됐다. 조금씩 동료들에게 소외됐고, 상사는 그를 외근직으로 발령냈다. 결국 회사를 나와 버렸고 지금은 무직이다. 하지만 배씨는 "생활이 정 힘들어지면 사이버머니를 모아서 되팔아가며 살 수도 있으므로 지금으로서는 직장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넷 도박의 문제점은 현금 결제능력이 있는 19세 이상의 성인들이 대상이라는 것이다. 거래되는 금액이 날로 불어나고 있지만 청소년들처럼 계도가 쉽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온라인 고스톱·포커 게임사이트에 가입돼 있는 회원은 약 7,000만명(중복 가입자 포함). 이중 매일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최소한 300만명이 넘는다는 지적이다. 취미 삼아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음성으로 사이버머니를 거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최근 유명 인터넷 게임회사 N사의 게임서버를 해킹해 약 6,270경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사이버머니를 위조한 2명을 구속했다. 이들이 위조 사이버머니를 팔아 벌어들인 돈은 무려 15억원에 달한다. 개인들은 주로 게임사이트의 채팅방에서 만나 계좌번호를 알려주는 식으로 거래한다. 그러나 요즘 게임업체들이 24시간 모니터제를 도입하는 등 통제가 심해지자 오프라인에서 따로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경우 통제는 아예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경찰과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관계 당국은 최근 들어 고스톱·포커 게임 등의 도박성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게임사이트를 통해 실제 돈이 오갔다면 '도박 개장죄'를 적용할 수 있지만 주로 개인끼리 사고팔기 때문에 이를 적발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게임업계는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H게임업체의 마케팅 관리자는 "사이버머니 거래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채팅 기능을 아예 없앤 적도 있으나 선의의 이용자들이 거센 항의를 해와 다시 재개했다"며 "게임창마다 경고문을 띄우는 등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박성만을 예의 주시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한편 외국 도박사이트를 통한 외화유출도 심각하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유명 도박사이트에 직접 접속하거나 이른바 '중개 사이트'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지난해 7월 적발된 860억원대의 인터넷 도박 사건은 '중개'의 경우. 피의자 2명은 코스타리카의 게임사이트 서버를 임대해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설하고 국내 회원들에게 약 860억원의 도박을 하게 한 후 판돈 20억원을 받아챙겼다.
 
특히 적발된 회원 중에는 명문 S대 물리학과 출신의 벤처기업 사장, 대기업 연구소장, 고위 지방공무원, 한의사 등 사회지도층이 다수 포함돼 있어 충격을 줬다.
 
정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 도박사이트 서버에 직접 접속하는 행위는 국내법상 통제가 불가능한 사각지대"라며 "지불 수단인 신용카드 결제에 관해 강력한 통제 수단을 마련해 불필요한 외화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독자들은 어떻게 사슬을 끊어야 할까. 인터넷중독치료센터 김현수 소장은 "인터넷 도박 중독자들을 보면 실제 오프라인에서도 도박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며 "단도박 모임(도박을 끊기 위한 모임) 등에 나가면서 꾸준히 자신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유전적 원인에 의해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 약물치료를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이 그렇듯 인터넷 또한 이용하기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된다. 수면제 한알은 지친 사람에게 단잠을 주지만 너무 많으면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심정미 기자 simstar@hot.co.kr

서보환
2003-07-25 13: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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