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사람은 교활한 겁쟁이다
만약 그대가 겁쟁이라면, 그대는 겁쟁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라. 그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듣지 문제를 낳고 복잡함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는 겁쟁이가 아니더라도
그대는 겁쟁이다. 이 사실도 받아들여라. 이 점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누가 겁쟁이가 아니겠는가? 삶이 끊임없이 죽음의 위험 속에 있는데, 어떻
게 겁쟁이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대는 언제듣지 죽을 수 있고 생
명은 그대로부터 사라질 수 있는데,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서 어찌 겁내지 않을 수 있겠
는가? 그대는 용감한 척은 할 수 있겠지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겁쟁이로 남아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보라. 하지만 존재는 광대하다. 우리는
물방울조차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양과 맞서 싸운다. 어찌 겁쟁이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점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라. 그리고 받아들여라.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결코
대항하는 목표를 만들지 말라. 그 목표는 그대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며, 기껏해야 그대
는 매우 긴장하면서 겁쟁이가 아닌 척 위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대는 이 세상과 자신
에게 겁쟁이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반대편으로 움직여갈 뿐이다.
오히려 그러한 노력 때문에 그대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왔다. 제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 그냥 받아들여라. 일단 받아들이면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때는 그것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그대가 용감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받아들임을 통해서 어느 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
겁쟁이란 사실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비겁함이 더 이상 비겁함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거부하면 그것이 비겁함이 된다. 그러나 받아들이면 겸손함이 된다.
우리는 겸손해야 하며, 우리는 전체가 아니다. 엄청난게 거대한 전체성의 일부일 뿐이
다. 아주 작은 부분, 원소, 커다란 나무에 달려 있는 작은 잎사귀.....
때로는 떠는 것도 좋다. 거기에 잘못된 것은 없으며, 그대의 먼지를 털어내는 데 도
움을 줄 것이다. 그대는 다시 새로워진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이렇다.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애쓰지 말라.그대의 폭력을 비폭력으로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그대의 비겁함을 용감함으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대의 성(性)을 독신주의로 바꾸려고 하지 말라. 반대되는 것을 만들어내지 말라. 차라리 폭력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점점 더 비폭력적으로 될 것이다. 겁쟁이란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비겁함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성의 진실을 이해하게 되면, 그 속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솟아나
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항상 그 사실을 통해서 움직이되 결코 대항하지 말라.
비겁함과 용감함은 동전의
이면과 표면이다. 두려움은
둘 모두에 존재한다. 그것
들은 두려움의 두 가지 얼
굴이다. 하나는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다른 하나는
교활하고 숨어 있다.
용감한 사람은 교활한 겁쟁
이다.
도서:나를 찾으려 애쓰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