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이름이 아니다.
내가 그대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는 것은 오로지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그대의 과거 이름은 한낱 이름표에 불과하므로 단순히 사라질 수 있는
것이며,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대는 이름이 아니다. 그대의 의식 속에 이러한 사실이
인식되고 강조될 때, 이름은 더 이상 그대의 실체가 아닌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이름을 갖지 않고 세상에 태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름
을 부여해야 하는데, 이름이 유용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히 잘못이지만 수
백만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광활한 세상에서 아무도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 역시 매우 곤란한 일일 것이다. 이름이란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인데, 그것이 설사
잘못이 있다 해도 나름대로 유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들은 실체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그 유용성까지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보통 그대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성장한다. 사실 그대의 인식은 그 이후에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대의 이름은 그대의 의식보다 더 깊으며, 바로 여기서 이름과의 아이덴티
티가 일어난다. 그대는 처음으로
'이것이 나의 이름이고, 이것이 나다'라고 느끼기 시작한다.
수행승이 된 자에게 나는 이름과의 아이덴티티를 파괴하길 바라는데, 왜냐하면 그것
이 모든 아이덴티티들에 대한 파괴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이름과의 아이덴
티티를 파괴하고, 그 다음엔 육체와의 아이덴티티, 그 다음엔 마음과의 아이덴티티, 그
다음엔 가슴과의 아이덴티티를 파괴하라. 마침내 모든 아이덴티티를 파괴하고 나면,
그대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이덴티티가 없는 존
재고, 이름이 없는 존재고, 형상이 없는 존재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존대다. 그것은 또
한 그대의 내면에 있는 순수한 목격자로서 어떠한 말이나 글로도 설명될 수 없다.
스승과의 공동체 생활에서 배우게 되는 유일한 것은 목격, 주시(注視), 봄[見]이며, 이
주시는 일체를 넘어선 언덕 위의 주시다. 그 어느 것도 결코 이 초월적인 주시에는 미
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대 내면의 초월적인 존재인 '나'를 발견하는 것은 그대의 이름
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작업은 마치 잘못 지어진 건축물로부터 벽돌을 하
나씩 제거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대가 나에게 하나의 벽돌을 들어내도록 허락한다면,
나는 다른 벽돌들도 계속 들어낼 것이다. 나는 그대의 옷을 완전히 바꿔서 그대가 더
이상 과거와 연결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대는 과거와 단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를 죽이지 않고서는 새로운 탄생을 기
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는 말끔하게 떨어져나가야 하고 잊혀져야 한다. 과거는 한
낱 꿈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미래가 일어난다. 따라서 과
거가 떨어져나가면 미래도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유일한' 현실은 '지금 그리고 여기'
다. 절대적으로 '지금 그리고 여기' 에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체를 아는 것이며, 진리와 축복과 신성으로 가득 찬 진지하고 성실한 삶을 실제로 살아
가는 것이다.
그대는 육체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대가 곧 육체는 아니다
인간은 자기자신의 존재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무지하다. 사실 인간은 자기자신의 존
재에 대해선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가 아는 것은 자기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며, 또 그런 것만을 알려고 한다. 인간은 자기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근본적인 착각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근
본적인 실수인 것이다.
우리는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다. 우리의 이름들
은 '우리는 이러이러한 존재' 라는 확실한 느낌을 심어줌으로써 우리를 속이고 있다.
우리의 육체는 거울에 반사되고 우리의 얼굴은 뭇 사람들의 눈에 반사되는데, 이런 과
정을 통해서 우리 아이덴티티의 고정 관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
게 이러한 정보를 서서히 습득해가면서 완전히 잘못된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창출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우리 자신을 파악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거울은 오직 육
체만을 반사할뿐 그대가 곧 육체는 아니므로,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것만
으로는 절대 자기자신을 알 수 없다. 그대는 육체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대가 곧 육체
는 아닌 것이다. 그대의 행위, 그대의 성격, 그대의 활동이 그대의 마음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것 역시 그대는 아니다.
심리학파 중에는 행동주의자로 불리는 주요한 학파가 있다. 그들은 인간을 오직 행
위로 판단한다. 인간이란 단지 행동의 총합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대의 행
동이 이해될 수 있어야만 '그대' 가 이해된다. 그러나 인간은 행동의 총합을 훨씬 뛰어
넘는 존재다. 인간은 오직 행동만으로 판단 가능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인간은 육체와
마음과 행위의 가장 깊숙한 의식이다.
만일 그대가 그대의 의식을 알아채지 못하고 내면의 빛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대
는 계속 환상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환상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으며, 남에게서
넘겨받을 수 있다. 이처럼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환상을 지속시키
려 한다.
자기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힘겨운 작업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대한 탐험이기
도 하다. 어쩌면 달에 착륙하거나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일이 더 쉽고 자기자신의 중
심에 도달하는 일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전적으로 혼자서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
다. 위대한 그리스이 신비주의자 플로티노스(Plotinos)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오직 홀로 떠나서 홀로 도착하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