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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Suffering

 


다음 세 가지는 항상 명심하라!

1.그대가 성장을 원한다면 과거를 버려라.저항은 과거로 부터발생 발생하기 때문이다.그대는 항상 과거에 의해 판단을 내린다.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절대적으로 무관하다. 하지만 과거는 계속해서 그대를 방해한다.

그대는 여전히 과거에 따라 판단을 내리면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옳고 그름에 대한 이러한 판단은 모두 죽어 없어진 것으로부터 나오고 있다.죽은 과거가 그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그대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과거를 완벽하게 버려라 그러면 그 많던 고통들도 한꺼번에 사라져버릴 것이다.

2.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지 말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는 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왜냐하면 사물이란 '그대'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전체성에 따라 발생하기 때문이다.가령 대양의 작은 파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파도는 그저 대양의 판단에 자신을 맡길 뿐이다.만약 파도가 동쪽으로 가길 고집한다면 곤경과 고통이 뛰따를 것이다.바람이 동쪽으로 가는 걸 원하지 않고 대양 역시 그것을 원하지 않는데,파도가 무슨 수로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는 고통을 겪게 될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운명,환경,사회적 조건,경제 구조,자본주의 사회,부르주아 문화,프로이트식 무의식 등으로 부르고 있다.그대는 그것을 성장을 위한 고통이라고 부를것이다.하지만 드대는 단순히 자신의 책임감을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대감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을때,좌절과 실패가 발생한다.또 그것은 결코 충족되지 않을 것이다.그대는 마치 존재가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처럼 무시당한 느낌을 갖게 된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버려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을 활짝 열고 어울려라.하지만 미리 계획하진 말라.미래에 대해 어떠한 심리학적인 고정 관념도 만들지 말라.그러면 더 많은 고통이 사라질 것이다.

3.'인간의 잠재적 운동'에는 뭔가 본질적인 것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대의 성장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따. 하지만 아직은 그대의 내면에 명상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그래서 그대의 내면에는 끊임없이 투쟁과 노력과 의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휴식도 없다.3번째를 명심하라.그러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다.그대의 내면에 명상의 에너지와 명상의 공간을 마련하라.서구적인 방식에는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부족하다.

다시 말하지만, 다음 세 가지를 명심하라. 과거를 버리고, 미래의 기대감을 버려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향성과 외향성 사이에 통합을 이루라. 그러면 모든 불행이 눈 녹
듯이 사라지게 된다.

빛에 알려면, 어두운 밤을 통과해야만 한다
고통은 곧 수련이다. 고통 없이 성숙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만약 포만감을 알고 싶다면, 그
대는 먼저 굶주림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그래서 그대가 굶주림을 피한다면, 포만감도 피
하게 되는 셈이다. 만약 갈증의 해소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대는 먼저 목마름에 대해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빛에 대해 알고자 한다
면, 그대는 어두운 밤을 통과해야만 한다. 어둠을 통해서 그대는 빛을 깨닫기 때문이다.
만약 삶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그대는 죽음을 통과해야만 한다. 죽음이 삶을 깨닫
게 해주는 감수성을 그대에게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은 상호보완적이다.

세상에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상호보완적이다. '이 세계'
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대는 '저 세계'를 알 수 있다. 물질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신
세계를 알 수 있고, 지옥이 존재하기 때문에 천국을 알 수 있다.

요가에서는 이 세상이 곧 수련장이라고 말한다.
고통을 피하지도 말고 도피하려고 애쓰지도 말라. 그대는 고통과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깨달은 자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그는 삶이 제공하는 온갖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그러니 다시 되올아올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신이 고통의 원인임을 알게 되면, 고통은 사라진다.

고통을 낳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대가 고통을 만들어내는 주체임을 깨닫는
것이 기본이다. 그 다음 정말 고통을 겪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그대는 자신이
고통의 원인이 되는지의 여부를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자신이 고통의 원인임을
알게 된다면, 고통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고통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대 자신을 속이지는 말라. 그대는 고통을 느낄 때, '그래, 내가 이고통을
만들어냈어'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깊숙한 곳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그 고통을 만들어냈지
만. 그대는 그것에 대해 아무 짓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이렇게 위안할 뿐이다.
'이 고통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게 아냐. 나 자신이 만들어냈을 뿐이지. 서서히 나는
그것을 멈출 거야.'

그러나 앎은 즉각적인 변형이다. 거기에는 '서서히' 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고통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면, 즉각 그것을 버릴 것이다. 그리고 고통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만일 고통이 다시 찾아온다면, 그것은 그대의 이해가 아직 부족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대는 고통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할까 찾을 필요도 없고, 어떻게 멈출까 염려할
필요도 없다. 깊숙히 들어가서 진정한 고통의 원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고통의 원인이라면 고통은 멈추지 않는다. 그대가 온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가 고통의 원인이라면, 고통은 멈춰질 수 있다.

금강이
2003-08-14 21:10:19
1099 번 읽음
  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이철웅 '03.8.16 10:39 AM 신고
    :)*흐음 아주 조금(?) 동감. ↓댓글에댓글
  2. 2. 한병언 '03.8.16 1:02 AM 신고
    :)*쓴맛을 알기에 단맛을 알죠. 저렇게 살면 재밌나요?.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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