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란 마인드 컨트롤을 받은 걸 말하는 거야.」
1990년, 角川書店에서 발간한 나가노 아저씨의 단행본에서(다섯 별 이야기 4卷)
성단사 최고의 무대뽀이자, 최고 클라스의 혈통을 가지고 나중에는 최강의 검성으로 전생한(더불어 극강로리)
마키시의 애비이자 전신, 최저 구제불능의 검사 더글라스.카이엔이 남긴 말입니다.
아트로가 츠아이하이의 광산촌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파티마로서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며
「파티마는.. 있어요.」
슈펠터를 기동시켜달라고 청했을 때, 카이엔은 그렇게 말했답니다.
그는 이미 광산촌 레지스탕스들의 창고에서 아트로의 파티마슈츠를 보고
모든 것을 알았지만, 애써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아트로의 정체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에게는 자기 혼자서 우스의 토벌대를 상대하러 간다고 했대요.
그런 카이엔에게 아트로는, "이제 더는 운명의 굴레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자신을 파티마로서 대해달라고 고백했던 거래요.
「잊고 있었던 게 있어요.. 파티마는.. 있어요.」
그렇지만 카이엔은 당장에 아트로의 다짐을 확인하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런 녀석은 없어. 파티마란 마인드 컨트롤을 받은 걸 말하는 거야.」
흔히 파티마라고 싸잡아 부르는 "인형"이란 "마음"이 없는 것이다.
너에게는 모두를 살리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 싶어하는 사랑이, 마음이 분명히 있고
그렇기에 너는 애써 "신체조직의 형성과정"을 숨기거나 하지 않아도 이미 인간인 거야..
카이엔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 말에 아트로는 놀라며, 한 편으로는 카이엔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아우크소가 앉았던
워터드래곤의 콕피드에서 큰언니 쿤의 향기를 맡습니다.
인간을 돕고 싶어했던, 마인드 컨트롤을 벗어나 이계의 신들에게 맡겨진(나중에 돌아오지만) 큰언니의 향기를..
퍼스컴 소프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의미가 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게임이란 플레이어의 조종으로 무엇인가 부수거나 만들고 성장시키는 소프트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만세전승의 지뢰찾기라던가 카드놀이라던가 하는 건 고려하지 않는 견해라고 하겠지만..
이런 의미에서 영상소설이나(VN) 담화록은(ADV) 전혀 "게임"으로 불릴만한 매체가 아닙니다.
정말로 비엔이나(VN) 아도브를(ADV) 처음 읽어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스타트를 누르고 나서
자신이 읽어가고 있는 이야기의 의미를 생각하며 그 방향을 고민해보지 않을 수도 없겠고
이미 결말이 쓰여져 있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고는 있어요.
그렇지만 아도브나 비엔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무척 많이 있으며(어떻게 하면 오마케를 만들어서 소프트를 뜯어볼까만 연구하는 사람들이 "게임의 재미"라고 하는 것들은 고려하지 않습니다.ㅡ_ㅡ)
(종이로 만든 "책"은 아니지만)"독서의 과정"을 통해 여러 가지 "의미"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
아도브를 찾는 사람들의 가장 큰 동기라고 하겠대요.
전투도 없고 전략도 없고 (보통은)육성도 없는(前ㆍ붉은 땅, 現ㆍ꿈의 나라에서 만든 일부 소프트 제외)
이런 소프트들을 "게임이거니"하고 기대하는 건 말도 안되는 거죠.
예전에는 없었지만, 인터넷 보급으로 등장한 도서문화의 한 형태인 eBook을 두고
"그 게임 재미있나요?" 하고 묻는다면 대답해줄 말이 없어요.
(유통되고 있는 예는 드물지만)eBook의 페이지마다 삽화가 삽입된 경우나
또는 미디나 MPEG음원효과가 들어간 경우도 마찬가지랍니다.
그건 "책"이지 다른 어떤 것이 아니죠.
그럼, 마우스를 클릭해서 대사나 장면을 넘기는 "거의 일방통행으로 정해진 이야기"는 어떻겠대요?
그걸 "글을 읽는 일", 곧 전자기 매체로 기록된 소설이나 희곡이라고 할지
"마우스를 열심이 눌러대는 게임"이라고 할지 판단하기란,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자의 해석이 옳다고 봐요.
어떤 사람은 "난 마우스 클릭의 달인이다. 고로 막 찍으면 즐겁다. 따라서 게임이란 그런 것."
..라는 이야기를 하는 수도 있겠지만, 이미 사고구조가 완전히 이계이형의 사람일 테니까 논외로 칩니다.
물론, (판매ㆍ유통)업계에서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非사무용ㆍ非공학용의 유희목적의 소프트를 게임이라고 한다"
..라는 관습적 표현을 지키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철권3과 여동생은 "같은" 게임인 바이다..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면
(생판 뭔지 모르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돌았나봐?" 내지는 그 비슷한 반응이 나올 거래요.
「누가, 나는 안그렇다! 똑같은 거 아니냐.」라고 굳이 "쌔우는" 사람에게는 할 말 없지만..
그럼, 천년의 여름은 어떤 이야기라고 소개하는 게 맞을지 생각해보면
우선 (하루코상이나 히지리네에상이 좀 짖궂은 짓도 하지만)조교물이 아닙니다.
(머저리 쿠니자키가 깝치는)능욕물이 아닙니다.
(칸나는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지)누군가를 사랑했기에 희생되는 순애물이 아닙니다.
(전설을 소재로 삼고는 있지만)판타지물이 아닙니다.
(칸나의 과거 이야기는 꽤 길지만)대하극이 아닙니다.
(하루코상이나 히지리네에상이 딸과 동생을 몰아세우기도 하지만)애증물이 아닙니다.
(미나와 미치루짱은 사이좋은 자매같이 모녀같이 지냈지만)가족드라마가 아닙니다.
(특별히 학교 생활이나 수업, 학교를 무대로 삼는)학원물이 아닙니다.
(당연히 전쟁이나 민족의식과도 무관하므로)시대극이 아닙니다.
아들을 남겨두고 떠난 어머니가 남긴 말.. 날개 달린 사람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겨우 조그만 인형을 움직일 수 있을 뿐인 초능력으로, 인형극 공연을 하며
떠돌아다니던 한(비렁뱅이-.-) 청년이 찾아온 여름 바다의 마을..
그곳에는 날개 잃은 천사가 있었고, 상처입은 여신이 있었고, 여동생을 사랑하는 언니가 있었고..
그들은 모두 자신의 손안에 펼쳐진 작은 세계를 지켜나가고 싶어했다.
..결국 그네들은 자신이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합니)다.
추리극도 논픽션도 희극도 시트콤도 컬트도 아닌, 민담의 틀을 주축으로 한 계몽적인 주제의 이야기를
요새는 뭐라고 달리 부르는 말이 있대요?
저는 분명히 『동화』라고 알고 있는데, "신기한" 댓글이(라고 쓰고 태클이라고 읽는다) 달렸다고
편지가 왔더래요. 무슨 헛소리냐는 식으로..
요새는 "visual arts"를 한글로 "시각예술"이 아닌, 어떤 식으로 쓰는지도 모르겠고..
하긴 90년대가 아니니까 "사람의 개념 자체가 달라지는" 수도 (어쩌면)있겠대요.
(어느 동네인지도 모를)"우리 나라 사람"이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의미불명의 해설도 자주 쓰이던데
목에 핏대세우면 다 통하는 데는 뭐..(찻길에서나 그러던데 요새는 아무데서나 그래도 될지는 모르죠)
..할 말 없어요.
요새는 글을 굳이 배경 찾아보고 생각하며 읽는 사람들이 이상한 취급을 받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