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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제와 더불어 군에 관련되 여성(부)들의 발언들을 듣다가..

 
(b)
몇년 전이었던가..
여성부에서 군 전역자 공무원시험 가산점 폐지를 처음 주장했을 때, 저를 포함한 많은 예비역들은 울분을 토했었지요.. 출산문제는 그 당시 나우누리에서 대단히 신망(?)을 받고 있다는 "초록나무"라는 대화명을 쓰는 어느 님께서 거론하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상당한 수의 여성들도 반발을 했던 내용이었지요..
전 89년 10월 군번이고, 논산 제2훈련소에 입소하여 육군 제1989부대 신병교육대대에서 복무를 했습니다.. 보직은 대대 인사서무병이었지요.. 그리고 92년 2월 27일 전역을 하였습니다..
당시 집안에 군관련 줄과 빽이 있어서 면제도 가능했었지만, 저는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는 가야 하고, 안가면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와 부모님은 당연히 입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그리고 운동을 하는 관계(?)로 모 대학의 체육학과에 재학중이었고, 가진건(?) 혈기뿐인 시절이었기도 하고요..
정상적인 입대과정을 거쳐서 논산 제2훈련소에서 군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전 훈련소 마지막 6주차에서 훈련중 무릎에 '좌슬골 연화증(병원 공식병명)'이라는 연골 파열을 당하게 됩니다.. 고통에 걷기도 힘들고 뛰는 건 무리였습니다.. 그래도 미련하게 8Km단독군장 구보만을 제외하고 행군까지 다 마쳤습니다.. 자대(전속부대)에 배정받고 고참들의 갈굼(구타는 없었음)속에 의무대와 내부만 사무실을 오고갔고, 무릎이 부어올라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전투화(군화)를 벗고 활동화(운동화)를 신고 근무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지요..
시간을 흘러 어느덧 고참 서열에 들게되고, 잘 견뎌왔던 무릎이 아프더군요.. 국군광주통합병원의 군의관은 군 시설로는 진단을 못하니 사회병원에서 진단을 받아오라고 해서 모 대학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고, 연골을 제거하거나 장기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자대 복귀 후 의무대의 군의관(의무대 사람들과는 아주 친했음)이 그러더군요.. 의가사 제대가 가능한 병명과 증상인데, 군생활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고, 몇개월 안남은거 연골제거해 버리고 의가사 제대하기는 아깝지 않냐? 갈들을 좀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렇더군요.. 몇개월 남지도 않는 군생활.. 같은 병장이라도 의가서 제대로 주민증에 남는 것 보다는 전역이라고 돼 있는 것이 좋겠다는..
91년도 언젠가 서울의 모 대학에서 분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향이 광주라서 고인의 시신이 광주로 온다는 방송이 나왔고, 전남 도에서는 반대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바로 부대에 비상이 걸리더군요.. 호남고속도로 광주톨게이트를 조금 지나면 오치동에 군사용 톨게이트가 있습니다.. 거기는 군사용이고, 말 그대로 군 부대의 시설입니다.. 광주톨게이트를 통과못하면 그리로 나오게 되어 있지요.. 하필 그때가 본인이 신병교육대대의 마지막 5분대기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비상이 걸렸지요.. 밤 10시에 예행출동과 더불어 브리핑도 실시되었고.. 사단 일직사령이 제가 조금 친한 분이셨는데, 밝고 활달한 성격과 달리 매우 경직되어 계시더군요.. "여러분은 군인이다.. 군인은 그저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상황 명령이 떨어지면 아무 생각하지 말고 명령대로 시행하면 된다." 각 상황실 사관들과 기타 몇가지 확인을 거치는데, 후방인 관계로 평소에는 5분대기조용 실탄은 각 부대 상황실 2중 밀실안에 보관되는데, 바로 지급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으라는 지시도 들리더군요..
당시 육군 하사관 서열 10위안에 드는 우리 주임상사님이 부대로 복귀를 하셔서, 저를 비롯한 몇명에게 당부하시더군요.. 아무생각 하지말고, 귀를 열고 앞만 바라보고, 명령대로 움직이기만 하라고.. 그날 단독군장 상태 그대로 매트만 깔아논 침상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지만 잠이 안오더군요.. 그리고 영화속에 사람에게 총을 쏘는 장면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람(군중)에게 총을 쏘는 장면을 떠올렸는데, 방아쇠가 당겨지질 않더군요.. 정말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아니라 조준조차 할 수 있을까??
동틀 무렵에 잠시 잠이 들었나 본데, 주임상사님이 살며시 깨우더군요.. 저와 내 동기, 그리고 밑에 한명을.. 다른 전우들 잠 안깨도록 군장 풀고 나오라고.. 그리고 60트럭을 타고 톨게이트로 가서 바리케이트와 철조망을 걷어서 싫고 부대에 내려 놓은 후에, 정말 고생들 많았다고 위로해 주시더군요.. 돌아와서 아침먹고 들어보니 저만이 아니라 다들 잠을 못잤더군요..
보직이 인사업무인 관계로 기밀아닌 각종 기밀들을 다루게 됩니다.. 그러면서 전군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와 사건들을 문서로 접하게 되는데, 군 공식(소위말하는 사후 진급 가능한) 사고만도 1주일에 몇건씩이더군요.. 비공식으로 알려지지 않는 사망사고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전역 날짜를 세고 있게 되면서, 복학이라는 문제가 생기더군요.. 갈등이 심했습니다.. 이 무릎으로는 강도높은 운동은 할 수 없고, 그렇다면 복학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전문대라도 가려고 공무를 하려고 시도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제 의지로는 힘들더군요.. 그렇게 전역을 했고, 복학도 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재활치료도 병행을 하고요.. 지금은 일반인들의 운정정도는 소화를 합니다.. 대신 춥거나 날씨가 굳으면 고통은 생기지요.. 특히 버스를 타고 2시간 이상의 장거리를 가게되면 내려서 제대로 걷지를 못합니다.. 무릎이 부어서..
강도높은 운동을 못하게 되어서 전 레져쪽으로 눈을 돌렸고, 스킨스쿠바 강사를 하다가 제 능력부족과 더불어서 경기여파를 핑계로 더이상 생업을 삼지 못하고, 지금은 자동차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재학시절에는 예비군 훈련만 있으면 좋았죠.. ;-) 거의 놀자판이었으니까요.. 졸업 후에는 정말 짜증나더군요.. 셀러리맨도 아니고 자영업인데, 예비군 훈련은 생업에 많은 지장을 주었고, 말도 안되는 싸구려 형편없는 도시락을 추운날 물도없이 3,500원이라는 값을 치루고 맨바닦에서 까먹고.. 수송버스는 4,000원 이었던가?? 이용하기도 너무 불편해서 어쩔수 없이 차를 가지고 가면 주차할 장소가 제대로 없고.. 전 이사등으로 인해서 동원을 한번도 못들어가고 전부 미지정으로 받았습니다..
강사 교육 및 시험을 호주에서 했는데, 이때는 정말 인내심을 벗어나더군요.. 동원기간과 겹쳐서 연기신청을 하는데(영장에 나와있죠? 불참시 시간추가 재교육, 법적조치 등등), 동사무소에 갔더니 구청가라, 구청갔더니 동사무소 가라.. 시간이 없어서 아버님께 맏기고 떠났습니다.. 돌아오니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구청가서 가뜩이나 큰 목소리로 소리쳐댔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가만 있다가 나이가 좀 있으신 한분이 무슨일이냐고 묻고는, 이거는 아무데서나 처리가 되는 사항인데? 이러더니 처리해 주더군요.. 그리고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사과와 함께.. 결국 추가 1시간 포함되서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ㅜㅜ
지금은 간소화 되었지만, 외국에 나가려면 몇군데를 찾아가서 서류쓰고 지장찍고.. 군대갔다가 온사람들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 완전히 범죄자더군요..

전 군대를 갔었을 당시에도 이나라 이민족 가족과 형제 등등.. 이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입대했다는 그런 생각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남자라면 가야 한다는 건강한 남자로서 당연한 순리로 생각을 했지요..
전 공무원 될 생각도 없었고, 지금은 될 수도 없습니다.. 다른 많은 예비역들도 마찬가지 일테고요.. 그렇기에 공무원시험 가산점.. 관계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폐지론이 거론되었을 때부터 다들 흥분했습니다.. 그나마 30개월간 썩어버린 청춘에 대한 상징적 보상이었으니까요..
만약 제 어머님께서 저에게 '너는 내가 군대가는 대신에 낳은 자식이다' 라고 했다면.. 전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저도 자식을 낳고 나서 몸으로 실천은 못하지만 부모님께 알수 없는 새로운 감정을 느낌니다.. 그것이 혹자가 말하는 또다른 사랑이라는 감정인지.. 제가 딸애에게 대하는 그런 감정이라는 것만 알수 있습니다..
울 딸애를 출산할 때 집사람 옆에서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출산후 제가 3일 동안이나 몸살에 시달렸습니다.. 출산과 새생명의 탄생이란 것은 제 자신이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하물며 동물은 태생도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인데, 이것을 군복무라는 것과 비교를 하다니.. 그 말을 꺼낸 님들께 조소를 보냅니다..

요즘 군대의 기능이 다양하고 여러가지 활동도 하고 있지만, 원론으로 들어가서.. 군이란 것은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입니다.. 즉 사람을 죽이기 위한 합법적인 집단이지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개인의 사상이나 사고는 절대 금물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이고, 어떻게 하면 많이 죽일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군인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요.. 사람을 죽이려면 자신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훈련은 살아남기위한 생존 연습이지요..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다면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된다고들 하지요.. 군대의 훈련이 살아남기위한 방법이기에 제정신으로는 감당하기 힘든겁니다.. 구타.. 저도 당하고, 저도 자주 했습니다.. 왜? 특수부대가 아닌 이상에 서로가 서로에게 목숨을 보존받아야 하는 존재가 보병입니다.. 한사람의 실수는 부대의 몰살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이고, 이것은 군인이기에 본능적으로 나올 수도 있는 사항입니다.. 그래서 실수를 용납 못하기에 행해지는 행위이고요.. 때론 사소한 개인 감정 때문에 발생하기도 합니다..

전 군에서 보낸 시간들과 무릎 부상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알아 달라거나, 보상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땅을 지키고, 이나라의 경제를 위해서 피를 흘리고 고인이 되신 조국 선열들과 그러다가 부상을 당하고 병신취급을 받는 상이용사들을 욕되게 하지 말며, 제가 예비역이라는 사실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 내용들을 보다가 후회를 느낀적도 있고, 심지어 입영대상자들을 상대로 반대시위와 거부운동을 주도할까 하는 충동도 느끼게 됩니다.. 역사에서도 나오지만, 외세의 침략은 이와같은 군의 멸시와 천대에서 군기능이 약해짐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왜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짧은 지식과 소견으로, 당파싸움과 무인천시 등이 외세의 침략으로 이어졌는데, 지금이 역사속의 시기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과거는 중국 사대주의였지만, 지금은 미국 사대주의란 것이 다를 뿐..

훗날 손주들을 앞에 앉혀 놓고, 예비역 병장이라는 사실이 창피하지 않는 시절이었으면 바랍니다..

PS : 리플은 사양합니다..

솔개
2003-08-24 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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