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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Belief

 


신념은 해방시키지만, 믿음은 구속이다.
믿음은 그대가 논리적으로나 지적(知的)으로 확신하고 있음을 뜻하며, 말해진 것이
옳다는 것을 뜻한다. '논쟁'이 그대를 자극한다. 믿음은 가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믿
음은 절대적으로 마음으로 이루어진 마음의 현상이다. 믿음은 사랑의 일이 아니다.

믿음은 지적으로 확신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 이유는 그 확신을 깨뜨릴 수 있는 어떤
논증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그대가 다룰 수 있는 모든 논증이 그것을 증명하
는 것이다. 그러나 깊이 내려가보면 그 밑바닥엔 의심이 흐를
수밖에 없다. 믿음은 의심을깰 수는 없으며 단지 덮을 수만 있다. 너무 완벽하게 덮어서 그 의심을 잊어
버릴 수는 있겠지만, 의심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믿음이 있는 자를 약간만 긁어보아라.
그대는 거기서 의심을 발견할 것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과 대적하는
어떤 것도 듣기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종교든 자신들의 교의나 믿음에 위배되는 것은 추방당하거나 파괴되어왔다. 세
상의 모든 믿음을 가진 자들에 의해 금기시되어온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무엇 때문
일까? 그 까닭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의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그들 모
두가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의심이 여전히 존재하며, 어느 누구든 다시 먼지를
일으킬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의심을 진정시키
기도 하며 상처를 덮어오기도 하였지만,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했다. 의심은 여전히 존재하며,
덮개 아래로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신을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의심을 떨어버렸다는 것을 뜻하는가? '의심'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믿음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믿음은 대책이고
약품인 것이다. 그대가 건강하다면 약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마찬가지로 그대 안에 의심이
없다면 믿음은 필요치 않다.

붓다는 말한다
"믿지 말라, 믿으면 결코 알지 못한다.
그대가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믿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불신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불신 또한 다른 종류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 자들도 믿는 것이고, 신을 믿지 않는 자들도 역시 믿는 것이다.
전혀 차이가 없다. 무신론자나 유신론자나 똑같아! 가톨릭 신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이나
차이가 전혀 없다. 바티칸이건 크렘린이건 똑같다.
붓다는 "오라, 그리고 보아라" 고 말한다. 이 말은 붓다의 초대장이다. "오라, 나를 믿지
말고 나와 함께 체험하라. 그대 속으로 들어가라. 그리하여 그대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믿어라." 그러나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믿음이 아니라 신뢰고
신념인 것이다. 믿음과 신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신념은 경험으로부터 나오고,
믿음은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어떤 경험도 없는 단순한 편견일 뿐이다.

신념은 해방시키지만, 믿음은 구속이다.

믿음은 아주 피상적인 것으로서 그대를 분리시킨다. 피상적인 부분에서만 믿고 있을
뿐 나머지 대부분,즉 존재의 10분의9는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믿는 자
들의 내부에는 혼란이 존재하며,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의 믿음을 교란시키는
무엇인가와 마주칠까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그의 믿음을 교란
할 수 있다.

진정한 신뢰는 믿음이 아니라 경험이다. 신은 경험되어야
한다. 그대가 경험하기 전에는 결코 믿지 말라. 일단 믿음이 그대 존재 속으로 들어가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믿음을 버려라. 왜냐하면 신이 '있으니까' . 왜 믿는가? 왜 경험
하지 않는가?
나는 선생이 아니다. 나는 그대에게 교의나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목격자일
뿐이다. 나는 말한다. "나는 경험했다. 따라서 '그대'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믿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절대적으로 무신론자이며, 내가 결코 신을 믿지 않는 것을 엄청난 행운으로 여
기고 있다. 신을 믿었다면 결코 신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무척 회의적인 사람이
라서 어느 누구도 묻지 않을 듯한 것들을 묻곤 했다. 심지어 나는 타인의 존재에 대해
서도 묻곤 했다. 타인이 진정 존재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
지 말이다. 때때로 그대는 꿈을 꾸고, 그 꿈속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장자의 유명한 말을 사랑했다. "어느 날 밤 나는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때 이래로 나는 늘 곤경에 부딪쳤다. 그 상황을 정확히
밝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장자가 나비라는 꿈을 꿀 수 있다면, 누가 알겠는가?
아침에 그 나비는 잠이 들고 자기가 장자인 꿈을 꾸고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나는 대학에 다닐 때, 이 글을 책상 뒤에 붙여놓았다. 어느 날 교수 한 분이 나를 보러
왔다. 그는 그 글을 보고서 내게 물었다.
"그대는 왜 이 장자의 글을 써놓았는가?"
내가 말했다.
"이 글은 나의 말이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의 존재도 믿지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때때로 당신은 내 꿈속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일이 훨씬 복잡해
졌습니다."
"무슨 뜻인가?"
"꿈속에서도 당신은 이 글에 대해 묻습니다. '왜 이 글을 써놓았느냐' 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묻고 계십니다. 이제 나는 누구를 진짜라고 믿어야 합니까?"
그는 그냥 나가버렸다.
"자네는 나를 미치게 만드네! 자네는 미친 건가, 아닌 건가?
그러나 나는 그렇게 미쳐버려서 행복하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자유로웠다. 그래서 그 자유 속에서 뭔가가 생겨났고, 그 철저한 공(空)
속에서 마치 산들바람 같은 무언가가 저 너머로부터 불어왔다. 나는 그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느꼈다. 나는 그것의 신선함과 향기를 느꼈고, 그것이 나를 변형시켰다.
나는 여전히 믿는 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제 신은 나에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신은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오직 신만이 존재할 뿐 그 밖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강이
2003-08-26 18: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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