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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 어느덧 가을이다.

길었던 8월이 작별을 고하고, 여름의 추억을 씻어 내리기라도 할 듯 시

원한 빗줄기와 함께 가을이 다가왔다. 하늘은 언제 그렇게 높아 졌는지

올려다 보려니 몸이 뒤로 기운다. 그럼에도 그 푸르름에 시선을 뗄 수

가 없다.

여름도 겨울도 싫지 않다. 그래, 일년 전까지는 정말 그랬다. 여름은

덥지만 돌이켜 보면 유쾌한 계절이다. 땀으로 온 몸을 절이다가도 시

원하게 샤워 하고 나왔을 때의 상쾌함이, 여름 밤만의 덥지만 즐거운

정취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제는 여름이 싫다. 그 어찌할 바를 모를 뜨거운 무더위도, 짜

증스러울 정도로 울리는 매미의 구혼 광고도, 한 달 목욕 안한 사람처

럼 온 몸을 긁적이게 만드는 모기의 간지러운 발자취도 견뎌낼 수 있지

만, 이제 여름이면 생각날 그 뼈아픈 이름 하나는 도저히 잊혀질 수 없

을 듯 하다.

가끔은 그렇다. 한 번 무심하게 지켜보는 것으로 그 사람을 거진 파악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좋지만은 못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모두들 가슴에 어느 정도의 상처를 하나씩은 간직하고 살아간다. 다만

그 가슴의 상처가 너무 커 위태 위태한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이지 귀

찮아 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의 상처까지 돌보아 주기엔 너무나도 바

쁜 세상이니까. 그래서 나는 그저 외면하곤 한다. 그 아슬아슬함을 알

면서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내게 그 이름은 더욱 뼈져리다. 내가 그대로 외면해 버린, 무심

히 고개를 돌린 그 몇몇 중 하나의 이름이기에.


처음 만날 때 부터 알았다. 어쩌면 저리도 어색하게 웃을까. 늘 웃음

은 짓고 있었지만 그 웃음 아래로 뻔히 보이는 어둠엔 질식할 지경이

었다. 그 애가 내 팔을 잡으면 난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특별히 손

이 차가운 것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왠지 소름이 돋았

다. 그래서 일 것이다. 나는 그 아이를 친구라 불렀지만, 사실은 조금

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나는 한번 친구라 인정한 사람에 대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비

뚤어지면 잡아주려 노력하고, 힘들어하면 버팀목이 되어주려 노력한

다. 물론 모든게 다 노력대로 되진 않는다. 하지만 노력한다는 것에 의

의가 있음도 안다. 나를 위해 애쓰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어려울 때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나는 그것을 안다.

그럼에도 난 모른척 한것이다. 친구라고 부르면서, 같이 밥먹고 같이

웃고 같이 떠들면서, 사실은 한번도 마음을 열어주지 못한 것이다. 슬

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힘을, 내가 가진 그

여유를 나는 조금도 불어넣어 주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처음으로 느끼는 후회란 얼마나 뼈저리고 가슴 아린지. 그 때

흘렸던 눈물은 마치 심장이라도 녹아 내리는 양, 그렇게 뜨겁고 아프

더랬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 아픔을. 그 눈물을. 그 여름을.


개학을 일주일 앞둔 여름이었다.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문자를 보내었

지만 돌아오는 답문은 없었다. 냉동 창고 마냥 시원한 교실은 공기가

통하지 않아 답답했다. 주위엔 간간히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들려올

따름이었다.

전화를 걸었다. 몇번이나 울리던 벨소리가 끊기고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저희 고객께서는....' 잠시 후 다시 걸자 그 동생이 받

았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려 나는 조금 고개를 기웃했

다. 무슨 일이 있었나? '저 혜영이 친군데, 혜영이 집에 있어요?' 있

다면 왜 동생이 핸드폰을 받았겠는가. 알면서도 괜히 물었다. 그래야

그 다음에 어디 나갔냐고 자연스레 물을 수 있을 테니까. 들려오는 목

소리는 여전히 불안정 했다. 조금은 격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언니 없어요'

어감이 조금 이상했다. 보통은 '지금은 없어요' 내지는 '집에 없어요'

라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그 목소리가 하도 불안해서 이상하게 들렸

는지도 모른다. 자매끼리 싸우기라도 했나 싶었다. 아니면 나란히 부

모님께 야단이라도 맞은 걸까?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조용히 말

을 꿀꺽 삼켰다. 그 동생과는 그리 친하지도 않을 뿐더러 나중에 혜영

이에게 물어보면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몰려오는 졸음을 억지로 쫓으며 조용히 문제집을 넘겼다. 때마침 걸려

온 전화는 그 졸린 교실 밖으로 나가기에 아주 좋은 핑계였다. 나는 자

리에서 후다닥 일어나 교실 문을 나서며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복도는 조용하고 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으로 온통 창백해 보였다. 그 긴

복도에 아무도 없어 조금은 머쓱해 하다가, 창으로 다가가 무심히 밖을

내다 보며 상대편의 말을 기다렸다. 전화를 건 상대는 아주 의외의 사

람이었다. '저 혜영이 언니 동생인데요..' 아까 전화하신 분이냐고 물

어온다. 추운 교실에 있다 복도로 나오니 따뜻한 햇살에 몸이 노곤해

지는 것을 느끼며, 한편으론 나에게 전혀 전화 걸 이유가 없을 것 같은

사람으로부터의 연락에 조금은 아연함을 느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상대방은 조금 머뭇거렸다. 뭔가 어려운 말을 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하

며 조용히 바깥 풍경에 몰두했다. 주차장에 차 몇 대. 담장 너머 초등

학교의 등나무길은 온통 푸르렀다. 무더운 바람에 초록빛 잎이 흔들거

린다. 매미 소리가 어지러웠다. 후끈한 열기가 에어콘 바람에 차갑게

식은 내 이마를 달궈 주었다.

'언니가 목을 매달았는데요..'

손이 떨린다. 지금도. 이빨이 딱딱 거리며 부딪히고 있다. 온 몸이 부

들부들 떨려온다.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은 말이다. 하지만 듣고 말

아야 했던 말이다. 여름 바람의 노곤함이 한순간에 싹 사라져 버렸다.

나는 내 심장이 저렇게 뛰다 터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지경이었

다. 심장 뛰는 소리가, 매미 울음 소리 보다도 더 크게 들리고 있었다.

손이 떨려 핸드폰을 놓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뱃속 깊이 터져 나오려

용트림하는 건 놀랍게도 바로 웃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웃어 버렸다.

'농담이지?' 왜 웃고 있는데도 몸은 싸늘하게 식어 가는지. 왜 얼굴 근

육이 그렇게나 굳어버려 웃을 수 조차도 없게 만드는 것인지. 나는 알

고 있었다. 농담이지라고 묻고 있는 순간에도, 그게 결코 농담이 아니

라는 것을. 그럼에도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농담이지?'

농담이지?

농담이지.....?


그녀는 화를 냈다. '저 그런 걸로 농담하는 사람 아녜요!'

제발, 제발. 화가나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제발.

동생의 요청에 따라 핸드폰을 들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교무 회의 중이

었다. 빨리 나가라며 인상 찌푸리고 손짓하는 선생님들께, 급한 일이

라고 말하며 핸드폰을 꽉 쥐어 들었다. 구석에 12반 담임 선생님이 보

이신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선생님들은 더이상 아무 말씀도

않으셨다. '혜영이....동생인데요' 선생님께 핸드폰을 건네곤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옆에 서있으려니 나가 보라고 손짓하신다. 떨어지지 않

는 걸음으로 한발 한발 걸어 나갔다. 교무실 문을 닫기 전, 힐끗 본 선

생님은 종이에 무언가를 다급히 적고 계셨다. 무얼까.

초조한 마음으로 복도에 서 있으려니 아는 아이 한명이 지나갔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 무슨 일이냐고 물어 오는데, 갑작스레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아인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달래려 애썼다.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이야' 나는 설명하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하지?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 울음이, 끝없이 터져

나왔다.

한참 후에, 울음이 간신히 진정되고 난 후에야, 난 주먹을 꽉 쥐고 다

시 교무실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선생님께로 다가갔다.

'선생님, 제 핸드폰...' 아, 하시며 핸드폰을 돌려 주신다. 그리곤 내

가 머뭇거리며 서있자 교무실 밖으로 나가셨다. 급히 따라 나가며 물었

다. '선생님, 혜영이 많이 아프대요? 지금 상태가 어떤데요? 심각 한가

요?' 선생님은 뒤돌아 계셨다. 그러다 몸을 돌려 나를 바라 보셨는데,

역광으로 얼굴이 잘 보이질 않았다. 복도는 조용하고, 내 심장 뛰는 소

리와 매미 우는 소리만이 귀 곁을 맴돌았다. 선생님은 조금은 곤란한

목소리로, 조금은 침통한 음성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아, 몰랐니? 혜영이 지금 영안실에 있다'

왜요, 라고 되물을 뻔했다. 왜요, 왜 영안실에 있는데요? 왜요?

그러나 물음대신 터져 나온 건 눈물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흐물 흐

물 복도 바닥에 주저 앉았다.

왜요?

왜요?

왜....요.........?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왜지? 왤까. 끊임없이 물었다. 답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해는 할 수

없었다. 왜 나는 친구에게 공손히 절을 해야 하는가? 그 사실에 대해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이해 시켰어야 좋았을까? 나는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

혜영이 할아버지께서 물어 오셨다. '누가 가장 친했던 친구지?' 아이들

이 모두 나와 미연이 쪽을 쳐다본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내 옆에 앉으

셨다. 그리고 난 부끄러워 고개도 들 수 없었다. 네, 제가 바로 그 아

이 친구 입니다. 바로 옆에서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했던 제

일 친한 친구 입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번 열어주지 못한 바보 같은 친

구 입니다. 힘들어 하는 것 뻔히 알면서 도리질 치며 모른 척한 바로

그 친구 입니다. 차마 친구란 이름이 부끄러운, 제가 바로 그 친구 입

니다.






일년이 지났다.

눈물은 어느덧 멈추었지만, 마음은 끝없이 흐르고 있어

언제나 나의 심장을 콕콕 찔러 대곤 한다.

언제까지 멈추어 있을 것만 같던 시간은,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그리

고 조용히 흘러 어느새 그녀를 과거로 만들어 버렸다. 그럼에도 그 이

름이 결코 추억일 수 없는 것은, 그 때 벌어진 상처가 아직도 아무르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가 '죽고 싶다'고 말하면, 그게 뻔히 농담인걸 알면

서도 괜히 민감하게 반응해 서로 무안해지곤 한다. 안그러려고 노력하

면서도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굳어 버리는 얼굴을 감당할 수가

없다. 되도록이면 웃으며, 나도 농담처럼, '그러면 안돼' 라고 말하곤

한다. 그리곤 천천히 얘기하는 것이다. 그 무더운 여름날을 떠올리며,

일년전 내가 누군가에게 했어야 했던 말들을, 그러나 못다한 얘기들을,

그렇게 조용히 늘어 놓는 것이다.


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쓰러지지 말라고.

지지 말라고.

내가 옆에서 받쳐 주겠노라고..





2003-09-22 19:01:55
412 번 읽음
  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심혁성 '03.9.23 11:00 AM 신고
    :-)*"1년세월 '눈물은 멈추지만 마음은 흐른다' 그래요, 텅빈 마음속을 세월이 벗이되어 이별의 아픔도 견딀수없는 슬픔도 흘러갑니다,
    인연이 되어 만나서 그 만남의 기쁨을 다 하기전에 석별의 낙루를 흘리는것이 ↓댓글에댓글
  2. 2. 심혁성 '03.9.23 11:09 AM 신고
    :-)*人間의 숙명 인것을 어찌합니까,
    인생 중반으로 가는 길목에서 초반에 아픈시련은 앞으로 사랑의 묘약이
    될수 있으니까요...^^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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