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글은 아니지만, 요즘 뭔당은 100억이고 뭔당은 10억이고
니똥이 더 더럽다고 싸우기나 하면서 자기 잘 못은 시인할 줄 모르는
윗대가리들 보다가 머리가 썪어 들어 갈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런 분이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가져 봅니다.
`日軍 속죄` 4년째 안중근 동상 청소
(::매주 수요일 독립기념관 '출근' 장기붕 前 성대교수::)
29일 오전 8시 30분 점퍼차림의 노부부가 쌀쌀한 아침공기를 가르며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제5전시관에 들어섰다. 노인은 높이 5m, 폭 2m의 철제 사다리를 힘겹게 끌고와 이곳에 전시된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 세워놓더니 아내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사다리를 올랐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흰 수건을 꺼내 동상을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내는 동상 기단과 주변에 놓여져있는 화초를 닦았다. 전시관에는 이들 부부의 동상 닦는 소리와가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일제때 징병 '마음의 집'
성균관대 행정학과에서 34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장기붕(79)교수. 그는 지난 99년 5월부터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아내 김명희(74)씨와 함께 순국선열동상 청소를 해오고 있다. “일제때 징병돼 만주에서 일본군 생활을 한 게 마음에 항상 걸리더군. 교수생활 내내 퇴임하면 뭔가 속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이제야 실천하는게야.” 장교수는 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된형 때문에 일제의 감시대상에 올랐고 44년 징병령이 시행되자마자 일본군에 끌려가게 됐다.
정년퇴임후 부인도 함께
당시 일제는 요시찰 가정의 젊은이를 중심으로 징병을 했는데 장교수도 포함된 것. 강제로 일본군에 편제됐던 장교수에게는 이게평생 마음의 짐이 됐다.
지난 89년 정년퇴임한 뒤 충청북도 제천에서 10여년간 생활했던장교수는 독립기념관에서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아예99년 초 천안 시내의 임대아파트로 집을 옮겼다. 그는 이사한 다음날 독립기념관을 찾아가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처음 한달동안은 화단 정리를 했지. 그런데 선의로 한 일이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의 생계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 다른 자원봉사 활동거리를 찾게 됐고 결국 직원들의 일과 겹치지 않는 동상 청소를 하게 됐어.”
장교수는 사비를 털어 작업용 사다리를 마련한 뒤 부인과 함께본격적으로 동상 청소에 나섰다. 자녀들은 심하게 반대했다. 장교수가 심장질환 수술을 받은 직후였고 부인 역시 허리 디스크로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동상 청소가 70대 노인들이 하기에는 버거운 일이라는 게 자녀들의 주장이었다.
디스크 앓아 자녀들 반대
그러나 그 어떤 말도 장교수의 확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 장교수가 동상을 청소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성균관대 공과대 교수들은 동상 청소에 사용하라며 광택제를 마련해 보내주기도 했다.
장교수는 순국선열 동상을 청소할 때마다 젊은 시절 뭉클했던 감정이 되살아남을 느낀다. “당시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의거는 의기소침할 수 밖에 없었던 식민지 젊은이들에게 큰 용기를 심어줬어. 일본군으로 복무할 때도 그 감동을 한 번도 잊은적은 없었지. 그분들의 동상을 닦을 때마다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묘한 설렘을 느끼곤 해.” 특히 지난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이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지 94주년 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장교수는 이날 청소를 더욱 뜻깊어했다.
"몸 허락하는 한 계속"
오전 9시30분 개관 시간이 다가오자 사다리를 내려온 장교수의횐 장갑과 수건은 어느새 까맣게 변해있었다. 장교수는 “참회하는 심정으로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이 일을 할 생각”이라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내렸다.
유회경기자 yoology@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