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成.正雄 = 朴.正熙
전 대한민국 직.간선 모두를 통한 3선 대통령이자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특유의 "체육관 대통령"제도를 창시한
1917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출생하여, 1937년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교사 일을 하던 중 경제공황 여파로 자진퇴직하고, 1940년 만주의 신경(장춘) 육군 사관학교에
입대한 이래로 "우수한 국가관과 치안유지의 실적"을 바탕으로 1944년 관동군 제삼 보병사단에서
"반란분자"들을 철저히 소탕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자칭 독립투사라고 주장하던..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기리어지는)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와 같은 광복군 장교들과 뭇 "대한민국 독립군"들의
"과격시위"를 진정시킨(이라고 쓰고 "무작정 잡아다 죽인"이라고 읽는다)
후대 1975년에 와서는 무슨 1860년대의 일본국이라도 되는양, 탱크 깔아놓고 유신개헌을
선포하고 부산, 마산, 인천, (서울)종로 일대에서 "인간사냥"을 시킨
그으런 사람을
"역사에 길이남을 애국자"로서 무조건 추안하고 숭상해야 함에 이설의 여지가 없다!
뭐.. 그런 게 2천년대 대한민국의 "애국투사觀"일까봐요?
광복군 장교였던 내가, 조국광복을 위해 중국땅 수천리를
맨 발로 헤맨 내가, 오늘날 광복이 되었다고 하는 조국에서,
그것도 광복절날 끌려다녀야 하는가?" (1968. 8/15.. 공판장 연행,중 장.준하 선생 어록 발췌)
그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만세 최고의 애국자였다"라는 견지에서 본다면
1898∼1905 연해주 독립의군부의 "성급한 행동을 잠재우고"(라고 쓰고 코만도 공작을 하고라고 읽는다)
메이지30년대의 일부 보수내각의 만류로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진 양국관계를
"확실히 하여" 그 위상을 분명히 한 점에서라던가
(현지파병나온 본토순시군의 도움으로)간도 이주민들의 "관리청 건립을 추진하여"
질서와 치안을 유지한, "살기좋은 만주생활"을 이룩해준
그 안.중근이라는 인물 또한
억울하고 원통하게 희생된..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투사"로서
길이길이 받들어모셔야 한다는 시대가 된 건가봐요..
70년대말이라던가 80년대초에는 여건이 좀 안좋아서, 그렇게 믿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지만
90년대 들어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단 대학생들 가운데서는 별로, 거의 없었다고 기억하는데
요새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나봐요?
(민주화가 진행된)세계 어느 나라의 연구자들한테 물어보더라도
김.일성이 더 민주주의의 파괴자냐 박.정희가 더 그렇냐고 하면
후자라고 한다던 이야기는 순전히 구라였다는 건가봐요;;
과거 일본국에서의 전체주의 과격파 군부들이랑 그 직계 극우파들을 청산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너 이 새○쳐죽일 쪽바리지?"하는 식으로 잡아세우는 거라니
세월 참 많이 변했네요.(뭐.. "울 ∼님을!"하는 식이라니 딱 대놓고 뭐라고도 못하죠. 그런 일족들은)
정말 십년 세월이면 강산이 싹 다 변하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