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급 연극배우로 꼽히는 박정자(62)씨가 최근 모대학에서 한 특강에 학생이 한명만 찾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연극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박씨는 그래 도 한 명(나중에 다섯명)의 관객을 앉혀놓고 90분 동안 강의를 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당사자인 박씨가 한 일간지에 ‘살아있 는 나의 제삿날?’이라는 제목의 기명칼럼으로 쓰면서 비로소 세 상에 알려지게 됐다. 각본 없이 1시간30분 가량 진행된 ‘박정자 의 처절한 모노드라마’는 한국 순수예술의 비극적 상황과 한국 대학문화의 현주소를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다가온다.
2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박씨를 만나 ‘박정자 특강 모노 드라마’의 진상을 물었다. 그는 또다시 치미는 분을 애써 삭이 며 한숨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끄럽고 황망해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습니 다. 그동안 내가 한 연극은 무엇인지, 심지어 내 삶이 뭐였는지 참담한 기분이었습니다.” 박씨는 지난달 중순 서울의 한 대학 예술학부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고 그 대학 90분짜리 특강에 초빙됐다. 그 교수는 연극계의 지도급 인사다. 박씨는 이날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수업 30분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차도 학교 인근 후배 사무실 앞에 두고 걸어 서 올라갔다.
학교의 분위기를 느끼며 감정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그는 공연을 할 때도 그렇게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시간 전부터 극장에 앉아 마음을 모은다. 그는 평소 화장을 하지 않고 맨 얼굴로 다 닌다.
그러나 이날은 화장도 하고 높은 구두를 신는 등 연극적인 코디 를 하고, 그야말로 배우처럼 차리고 갔다. 연극자료를 구운 CD도 챙겼다. 학교측은 학생들이 밀릴 것을 대비, 400석의 대형 강의 실을 준비했고 강의 내용을 촬영할 준비까지 마쳤다. 그러나 2시 가 지났는데 학생이 한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리더라구요. 큰일났다는 생각밖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이제 연극은 더 이상 필요없는 것인가. 내가 평생을 바쳐온 연극의 가 치가 이렇게 공허한 것인가.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르는 배신감과 적개심만이 가득찼습니다.” 하지만 박씨는 그 ‘참혹한 무대’를 내려오지 않았다. 그에게 주어진 공연시간 90분을 채우기 위해 교단이라는 무대에 서서 빈 좌석을 응시하며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그냥 강의실을 나와서 패잔병이 돼버리자는 ‘나’와, 기다림 으로써 자존심을 지키려는 또 하나의 ‘나’ 사이에서 갈등했습 니다. 그러나 돌아서 나오면 이 게임에서 정말 지는 것 같아 그 럴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좌석을 바라보는 그 황당함은 뭐 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이것이 내 제삿날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쿵쿵 하고 울리더군요. 나를 초청한 그 교수가 원망스러웠어요. 내가 나오고 싶어 했나요. 왜 사람을 불러내 이 망신을 시켰는지 모르겠어요.” 15분쯤 지나 드디어 강의실 뒤쪽문으로 한 관객이 들어왔다. 법 대 2학년 여학생이다. 그 학생은 지금 서울 신촌 산울림소극장에 서 공연중인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볼 예정인데 그 전에 연극에 대한 박씨의 생각을 듣고 싶어 수업에 들어왔다 고 했다. 화려하게 준비했던 박씨의 모노드라마는 관객사정으로 15분 늦게, 처절하게 시작됐다. 박씨가 1명의 관객을 놓고 공연을 시작한 것은 평생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여학생을 앞으로 오라고 했지요. 둘이서 연극에 대해서, 예 술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는데 조금 있 다가 남녀학생 2명이 들어왔어요. 앞으로 내려오라고 했더니 3시 에 수업이 있어서 중간에 나가야 되기 때문에 뒤에 앉는다는 거 예요. 3시에 보내줄 테니 내려오라고 했지요. 한참 있다가 남자 애들 2명이 더 들어왔어요.
하나는 이 학교 학생이 아니고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제 이름을 보고 들어온 것이고, 또 다른 친구는 졸업생인데 학교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10년전에 제가 출연한 연극을 본 적이 있어 들어왔 다는 거예요. 저를 초청한 예술학부 학생이나 관계자는 아무도 없었어요.” 박씨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여배우 윤석화(47)씨가 카페에서 이 야기하고 있는 박씨와 기자를 발견하고 “언니와 동생이 은밀하 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는 거야”하며 들어왔다.
‘박정자 특강 모노드라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 윤씨는 눈 물을 흘리며 카페가 떠나갈 듯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래서 이민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평생을 연극에 바친 배우를 이렇게 대접해도 되는거야. 학생들은 그렇다고 치고 교수 들은 뭐한 거야. 불러온 ×들은 다 어디갔어. 대학이 무슨 양심 과 정의를 지키는 순수 지성의 상아탑이야. 눈앞의 이익밖에 모 르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기심만을 키우는 곳이지….” 막 말을 섞어가며 터지는 윤씨의 분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거 세지기만 했다. 이제 오히려 박씨가 윤씨를 달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한참을 퍼부은 윤씨는 눈물을 훔치며 “언니, 이제 우리들 의 세상이 아닌가 봐”라고 힘없이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씨가 화를 발칵 내며 “왜 니가 우리 세상이 라고 그러니, 이건 내 세상이야. 니 세상이 아니야”라고 쏘아붙 였다. 윤씨를 비롯한 후배들이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큰언니 로서의 질책이다.
윤씨는 과거 자신이 주연한 연극 ‘왕자 호동’의 마지막 대사를 읊으며 허공에 삿대질을 했다. “너는 남자를 사랑한 죄, 너는 여자를 사랑한 죄, 너는 돈을 사랑한 죄, 너는 권력을 사랑한 죄 , 너는 민족을 사랑한 죄…그리고 우리는 연극을 사랑한 죄” 예기치 않았던 윤씨의 흥분에 오히려 박씨가 차분해졌다. 박씨는 누구에게 하는지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제 젊은 사람들이 무서워. 나이가 든 사람이 좋아. 내 얘 기도 잘 들어줘. 주부들이 좋아. 하지만 희망은 있을 거야. 5명 이나 들어왔잖아. 연극은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사람이 살아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거야. 자기가 하는 일에 목숨을 걸 어야지. 열 개의 목숨이 있으면 열 개 모두를 걸어야 돼. 지지부 진 눈치보며 찌글찌글 하면 안돼.”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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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바람이 찬 어느 날이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예술학부에 90분짜리 특강을 하러 갔다. 연극배우가 강의를 한다는 것은 '연극적 정직'이라는 거울을 통해 본다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연극이라는 세계를 이해시키려 애쓰는 연극 운동가의 격에는 맞는 일이다.
나는 높은 구두에 연극적인 코디로, 그야말로 배우처럼 차리고 연극 자료들을 구운 CD도 챙겼다.
강의 시작 15분 전. 4백석 규모의 중극장에 도착해 찬찬히 CD와 스크린을 준비했다. 드디어 2시.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계단식 강의실의 빈 의자가 휑뎅그렁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연극은 학생들에게 그토록 소용없는 사이드 디시일 뿐인가? 내가 평생을 바쳐온 연극의 가치가 이렇게 공허한 건가? 이제 연극은 끝났나? 연극배우로서의 내 효용성도 끝났나? 순간 적개심이 일었다. 밀려오는 배신감은 누굴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오직 그 시간, 그 공간의 황당함만이 나를 괴롭혔다.
담당 조교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강의실을 나옴으로써 패잔병이 되자는 나와, 그들을 기다림으로써 자존심을 지키려는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서 나오면 이 게임에서 지는 것 같았다.
10분이 지났다. 조그마한 여학생 한 사람이 들어왔다. 법대 2학년생이란다. 그녀는 내가 공연 중인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볼 예정인데 그 전에 연극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처 보지 못했던 '19 그리고 80'에 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내년에도 그 연극을 할 거라고 말하면서 나는 조금씩 자신을 회복해 갔다.
"좋다. 그럼 나와 둘이 이야기하자. 너만을 위해 강의를 하겠다."
조교는 CD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무대 위의 스크린이 너무 커 황량하기까지 했다. 그때, 강의실 맨 끝에 남학생 한 사람과 여학생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지나가다 그저 들렀을 뿐이라는 인문계열 학생이었다. 3시에 강의가 있다는 그들에게 다음 수업에 늦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앞자리에 불러 앉힌 다음 나는 연극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네 명의 청중을 놓고 연극에 관한 나의 오랜 상념을 털어놓자니 마음이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이윽고 3시. 세 학생이 나갔다. 그 사이에 남학생 둘이 더 들어왔다. 그러나 음악만 빼고 미술.영상.연기.연출.무용 등 소위 예술적인 목록들을 망라하고 있는 예술학부에선 정작 아무도 내 강의를 듣지 않았다. 70년대 초 관객 12명을 두고 공연했던 오래 전의 기억이 아프게 떠올랐다.
강의를 마치고 나는 조촐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 한 학생은 최근에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보았고, 또 한 친구는 오래전 내가 공연했던 '신의 아그네스'까지 본 추억을 들려주었다. 놀랍게도 그는 거의 10년 전에 본 그 연극의 대사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강의실을 나오는데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기운이 빠졌다. 살아있는 나의 제삿날이랄까, 연극의 제삿날이랄까. 그러나 그렇게 우울한 채로도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 위로를 했다. 학교는 축제 중이었지만 소수의 학생들만이 참여할 뿐 끼리끼리 어울려 정보 얻기에만 여념이 없다는 게 학교 측의 얘기였다. 컴퓨터 시대를 사는 그들에게 눈동자를 맞추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이란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이 아득함. 속도전으로 치달아가는 세대에게 무엇이 진정 가치있는 것일까. 나도 그 답을 모르겠다.
박정자 연극배우
기사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