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M(Control Program / Monitor)이란 운영체제를 기억하고 계실분이 있을려나 생각해 봅니다.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최초의 PC운영체제인 CP/M은 심한 질곡은 겪은 운영체제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그것은 MS-DOS라고 알려진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는 역사상에 등장하지 못하고 CP/M이라는 이름의 운영체제가 지금의 MS-DOS처럼 불리어졌을 지도 모르게 때문입니다.
CP/M은 PC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인 게리킬달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운영되는 최초의 운영체제인 CP/M은 인텔의 4004 CPU를 위해 게리 킬달이 개발하였고 이후 8008, 8080 CPU로이식되어 성공을 거듭하며 당시 대부분의 8비트 컴퓨터에 탑재되는 운영체제였습니다.
IBM은 중대형 컴퓨터 시장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급변하는 시장(개인용 컴퓨터가 속속 등장을 하면서 주로 애플이 타겟입니다) 중대형뿐만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를 디자인하게 됩니다. 그것이 PC였습니다.
최초의 PC는 인텔의 8086CPU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었는데 이를 위한 운영체제는 당연히 CP/M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일까요. 아니면 잔인한 운명의 여신이 게리 킬달에게서 등을 돌려 버린 탓일까요. IBM PC에 채택 되리라 생각한 CP/M은 역사 속에 사라지고 혜성처럼 등장한 MS-DOS가 CP/M이 가져야할 영광의 자리를 모두 차지했습니다.
IBM이 어콘 이라는 이름하에 PC개발계획을 추진할 때, 당시 소프트웨어 시장은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가 운영체제를,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양분하고 있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지속적으로 운영체제가 아닌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운영체제는 그의 관심권 바깥에 있었습니다. PC개발을 위한 어콘 프로잭트를 수행하던 IBM이 운영체제를 위해 최초로 접촉한 사람이 빌 게이츠입니다. 하지만 빌 게이츠에겐 운영체제를 만들어낼 시간도 능력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디지털 리서치의 게리 킬달을 소개 해줍니다.
IBM은 즉각 게리 킬달을 만나 운영체제 공급계약을 추진하려 했지만 실패를 하고 맙니다. 이것이 PC역사상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가장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IBM이 만나고자 애타게 기다리던 게리 킬달은 자신의 새 경비행기의 시험비행을 위해 하와이에 가버려 만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비행은 역사상 가장 비싼 대가를 치룬 비행일 것입니다.
IBM은 게리 킬달의 아내에게(게리 킬달이 자신이 만든 운영체제인 CP/M을 판매할 회사를 아내에게 설립케 했고 그것이 디지털 리서치입니다) 운영체제 공급계약을 체결하려 했지만 불공정계약을 이유로 거부합니다(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IBM은 거대 공룡기업입니다. 대기업의 횡포는 대단하지요). 어쩌면 게리 킬달이 하와이에서 배짱을 부리며 비행을 하고 있던 것은 IBM측에게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려 시간을 끌고 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라이센스만을 주길 원하는 게리 킬달과 소유권을 가지려는 IBM의 의견의 차이는 너무 컷습니다. 어차피 사용할 수 있는 운영체제는 CP/M뿐이었고 아마도 게리 킬달은 느긋한 심정을 IBM이 항복하기를 기다렸을 지도... 어쨌든 기다리다 지친 IBM이 돌아가 버리고, 이것으로 IBM은 게리 킬달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됩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빌 게이츠는 운영체제 시장에 뛰어들 것인지 고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에겐 PC용 운영체제가 없었습니다. 시간은 두 달뿐이었고 그 안에 운영체제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돼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운명의 여신은 또 한번 빌 게이츠의 손을 들어 줍니다.
팀 페터슨이란 아마추어 프로그래머에게 CP/M을 모방한 Q-DOS(Quick & Dirty Operating System)를 7만5천달러에 삽니다. Q-DOS는 엄밀하게 따지면 CP/M의 클론입니다. 하지만 당시엔 저작권의 문제가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고, 게리 킬달도 자신이 만든 CP/M의 저작권 보호에 그리 열성적이지 않았습니다.
어찌됐든 운영체제를 손에 쥔 빌 게이츠는 IBM에 운영체제 공급계약을 따내고 최초의 PC베이스 DOS인 PC-DOS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빌 게이츠의 탁월한 마케팅능력을 발휘하는데 빌 게이츠는 PC-DOS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IBM에게서 법적 소유권을 받아 냅니다. 이 소유권 획득이야 말로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가 있게 한 진정한 힘입니다. 빌 게이츠가 DOS의 소유권을 IBM에 팔거나 독점계약을 했더라면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를 호환PC업체에 공급할 수 없었을 테고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없을 것이니까요. 이 소유권 획득이 후에 IBM이라는 거인을 무너뜨리고 독보적인 소프트웨어 업체로 살아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초석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MS-DOS로 탄탄대로 달리자 게리 킬달은 CP/M 86을 개발하고 이를 보급하기 위해 IBM과 손을 잡았지만 MS-DOS의 아성을 무너뜨릴 순 없었습니다. 그렇게 점차 잊혀지던 CP/M은 컨커런트CP/M을 끝으로 완전히 PC시장에서 사라지고, 88년 디지탈 리서치는 DR-DOS를 내놓으며 MS-DOS에게 빼았긴 자리를 탈환하려 노력했지만 이미 마이크로 소프트와는 엄청난 격차가 벌어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운영체제에서 손을 뗀 게리 킬달은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방향을 바꿉니다.
DOS의 소유권을 가진 빌 게이츠는 독자적으로 MS-DOS를 공급하며 세를 키워갑니다(이건 IBM의 개방형 정책의 일환으로 표준화된 부품을 사용해 누구나 PC를 조립 생산 할 수 있게 함으로서 PC가 빠르게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더 나아가 MS가 MS-DOS를 PC호환 업체에게 공급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겁니다. 호환PC업체의 공습에 시장을 잃어가던 IBM은 개방형 노선을 버리고 독자적인 PS/2시스템을 만들어 시장을 재편하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 버립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의 성공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PC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폭넓은 실험을 시작하게 되고 하나 둘 실험의 성과가 나타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일본 회사(아스키사)와 손을 잡고 8bit 컴퓨터인 MSX개발에 뛰어든 것입니다.
MSX가 마이크로소프트와 무슨 관계냐 하시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는 급조된 운영체제 개발팀밖에 없었고 이런 상태에서 실력을 빠르게 성장시킬 방법은 새로운 PC의 개발에 초기부터 깊숙하게 관여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MSX의 개발에 손을 대고 BIOS부터 MSX-BASIC과 MSX-DOS까지 일련의 축약한 형태의 PC를 개발함으로서 충분한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실제로 MSX-BASIC은 PC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PC-BASIC(GW-BASIC)과 아스키(ASCII)레벨에서 완전한 호환성을 가집니다(몇 몇 개 MSX에 특화된 명령어를 뺀 나머지 명령어는 100% 호환이 됩니다). MSX-DOS도 마찬가지로 MS-DOS의 파일 포맷을 그대로 이용합니다(MSX에서 포맷하고 자료를 저장한 플로피가 PC에서 곧바로 읽힙니다).
그 외에도 Windows 1.0을 개발하며 운영체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저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Windows가 애플의 운영체제를 모방했다고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 개발에 쏟아 부은 일련의 투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이고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 수많은 인재와 시스템을 만들어온 결과입니다. 1985년 말에 에플의 리사나 맥킨토시가 아닌 PC에서 그래픽 운영체제인windows 1.0을 봤을 때 정말 놀랬습니다(사실은 독립적인 운영체제는 아니고 DOS Shell이었지만 당시를 생각해보면 놀랄 만 했습니다).그리고 등장한 OS/2를 봤을 땐 PC의 패러다임이 바뀌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쟁상대가 없기에 마이크로소프트를 폄하하고 무조건 깎아 내리는 것에 대해선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inside Windows라든가 inside WindowsNT같은 책을 보다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얼마나 많은 투자와 연구 개발에 매달렸으며 앞서나가려 애쓰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타산지석이라고 마이크로소프트가 항상 성공한 것만이 아니라 많은 실패와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것도 인정해 줄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전 지금도 기억합니다. 1988년에 빌 게이츠가 CD-ROM을 소개하며 미래를 지배할 저장매체라고 했을 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CD-ROM은 비약적으로 발전을 거듭했고 빌 게이츠의 예언대로 CD-ROM은 엄청난 대중화를 이루었고 수십 장씩 되던 플로피 디스크를 대체하는 훌륭한 매체로 자라났습니다(생각해 보세요 88년에 하드 디스크의 크기는 2~40메가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650메가를 기록하는 저장 매체라니 믿어지겠습니까?)
앞으로 윈도우가 어떻게 발전 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PC를 지배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겠죠. 그리고 더 많은 재미있는 뒷 이야기들이 생기겠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꾼 팩맨의 기획자 도루 이와타니에 대해서 이야길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