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이 쓸 PDA 808대를 연내 구매할 방침인 경찰청이 입찰 공고를 앞두고 또 한번 논란에 휩싸일 조짐이다.
입찰 공고를 앞두고 경찰청이 최근 밝힌 PDA의 구체적인 요구 사양과 입찰 추진 방식에 대해 관련 업체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기 때문.
경찰청은 이에 앞서 '특정 대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PDA 사양을 정하려고 한다'는 지적을 받아 한 차례 논란을 겪은 바 있다.
경찰청은 그에 따라 잡음을 불식시키기 위해 해당 사업 주관 부서를 교통기획담당관실에서 정보통신기획담당관실로 바꾸고, 전문가 4인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 등을 열어 구체적인 사업 추진 방향과 PDA 사양을 다시 확정했다.
문제는 이 같은 후속 조치를 통해 도출된 방안 역시 잡음의 여지가 여전히 잔재해 있다는 점.
경찰청 관계자는 "PDA 사양을 정하면서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기능과 부차적인 기능을 구분해 필수 기능의 경우 현장에서 요구되는 수준에 맞춰 정했다"고 밝혔다.
반면, 운영체제(OS) 등 부차적인 기능의 경우에는 다른 업체들이 입찰 경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기준을 상대적으로 낮췄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이 같은 원칙에 따라 1.2m 낙하 충격에서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단말기 요구 사양으로 새롭게 추가했다. 교통경찰이 아스팔트길에서 주로 PDA를 쓴다는 점에서 이 같은 조치는 적절하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
하지만, 그와 달리 방수·방진 기능의 경우 필수 항목이 아니라 부차적인 항목으로 분류해 방수팩을 번들로 제공하도록 무심하게 처리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가까운 예로, 교통경찰과 마찬가지로 외근직 공무원인 집배원의 경우 현재 방수 기능이 있는 PDA를 일선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어 경찰청도 이를 신중하게 참고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눈·비 등에 노출되는 옥외에서도 PDA를 써야 하기 때문.
이는 미국 등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등은 교통경찰관에게 방수 기능이 필수적으로 적용된 PDA를 지급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경찰청은 단말기 필수 사양으로 PDA의 크기를 3.5인치 LCD로 못박고 있으며, 가로x세로x두께의 사이즈를 125x140x30mm이하로 한정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처럼 사이즈를 제한한 것은 휴대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는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사이즈를 제한하면서, LCD 사이즈를 3.5인치로 못박은 것은 '넌센스'라고 보고 있다.
3.5인치 LCD나 2.8~3인치 LCD나 화면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은 240x320 해상도로 똑같다. 그렇다면 경찰청이 오히려 휴대성이 뛰어난 2.8인치 LCD도 단말 사양으로 요구해야 했다는 것이다.
또한 필수 사양으로 책정한 단말기의 '몸매' 제한도 상식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휴대성 여부는 PDA를 한손에 쥐고 편하게 쓸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때문에 세로 길이보다는 가로 길이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도 경찰청은 휴대성을 결정짓는 가로 길이를 일반 PDA(평균 60~70mm가량)의 무려 1.5배 이상에 달하는 125mm로 필요 이상 키워서 정한 반면,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세로 길이의 경우에는 140mm로 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산업용 PDA는 160mm 가량의 세로 길이로 제작된다는 점에서 이 같은 길이 제한은 산업용 PDA의 입찰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냐 마찬가지라는 분석이다.
이 처럼 부가적인 세로 길이를 제한해 산업용 PDA의 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부차적인 항목의 경우에는 기준을 낮춰 입찰 참여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경찰청의 기본 원칙과도 거리가 먼 조치인 셈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이즈를 정한 기준은 경찰 근무복의 포켓 사이즈 크기에 준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정작 경찰청은 벨트에 끼워 PDA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 케이스를 이번 입찰 요구 사항 중 하나로 별도 요구하고 있어 그 해명도 무색한 상황이다.
입찰 추진 방식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은 조달청에 '긴급 구매 요청서'라는 꼬리표를 달아 일반 경쟁 입찰을 통해 PDA 납품 업체를 선정해 줄 것을 요청해 놓은 상황이다. 이 방식으로 입찰을 추진하면 장비성능시험(BMT) 과정이 생략된 채 조달청이 서류심사를 통해 낙찰 업체를 뽑게 된다.
경찰청측은 PDA의 경우 휴대폰이나 노트북PC처럼 믿고 사도 될 만큼 어느 정도 시장에서 검증이 됐기 때문에 BMT를 거치지 않고도 구매해도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일반 PDA에 한해 타당한 설명이다.
경찰청이 요구하고 있는 1.2m 낙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단말기는 일반 PDA가 아니라 오히려 산업용 PDA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같은 성능은 아직 검증이 덜 돼 다른 공공 수요 기관도 철저한 자체 BMT를 통해 PDA를 선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해부터 집배원용 PDA를 구매해 온 우정사업본부도 매번 BMT를 통해 1.2m 이상의 낙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지 여부를 검증하고 있다. 실제로 매번 입찰 때마다 제안된 PDA들이 모두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유찰되는 경우가 여러번이었다.
업계 한 전문가는 "감사원이 우정사업본부를 감사하면서 지적한 사항이 바로 BMT를 통해 선정한 PDA가 일선에 지급한 뒤 1.2m 이상의 높이에서 떨어 뜨리면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었다"며 "경찰청이 이 문제를 소홀히 한 채 BMT 없이 PDA를 구입하면 우정사업본부와 같은 문제를 다시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경찰청이 본사업을 바로 추진한다는 당초 방침을 바꾸어 시범 사업을 한 뒤 본사업을 진행키로 한 것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조치"라고 말하면서도 "각론인 구체적인 PDA 사양과 추진 방식을 보면 잡음의 소지가 있어 다시 검토한 뒤 입찰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