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은 괴롭다.
작정하고 백수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사지육신 멀쩡한데 일을 못하다니.
그래도 한가닥 희망은 국내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만 들어가면
취직 걱정이야 없겠지라는 것인데.
이젠 그런 안전판도 없나보다.
아! 이 실업 대란의 끝은 어디 있는가!
하지만 서울대에 다니는 분들도 곰곰히 생각해 보시라!
혹시 너무 높은 조건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닌지.
작고 견실한 회사는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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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를 비롯한 이른바 명문대도 더이상 ‘취업난 무풍지대’가 아니다. 일부 지방에서는 아직도 서울대생이 나오면 ‘축 서울 대 입학’이란 현수막이 내걸리고 마을 잔치가 벌어지기도 하지 만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 취업과 장래를 보장해주는 시대는 지 났다. 채용사이트 리쿠르트 이광석 사장은 “기업들이 대학 간판 만을 보고 인재를 뽑던 시대는 지났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만 보 고 진학을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류전형에서만 20여차례 낙방한 한 서울대생의 구직스토리를 통 해 청년실업 문제의 심각성을 조명해본다.
“이제 취업만 시켜준다면 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입니다. 취직 이 안되더라도 면접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16일 오후 서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만난 이 대학 인문대 4학년생 이모(2 6)씨는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씨는 지난 봄만해도 경기불황이 니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니 하는 말들이 남의 얘기인 줄 알았다 . ‘그래도 국내 최고의 대학 졸업생이 설마 취직도 못할까’하 고 조금 안이하게 생각했다. 이른바 ‘잘 팔린다’는 법학과나 경영학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대 인문대를 다니고, 토익점수 900점에 학점도 괜찮아(4.3만점에 3.2) 걱정은 하지 않았다. 취 업이 어렵다던 지난해에도 선배들 대부분이 취업을 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사정은 지난 8월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정성껏 작성했지만 첫 원서부터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LG나 현대자동차등 5대그룹뿐만 아니라 두산, 금호타이어, 한화 등 30 대 그룹에서도 마찬가지. 상경계열보다 불리할 것 같아 인문계열 을 모집하는 곳을 중심으로 원서를 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지 금까지 원서를 제출한 20여곳 모두 1차인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떨 어졌다.
이씨는 “그나마 저보다 학점도 좋고 토익점수도 높은 친구가 서 류전형에서 15번 떨어졌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있어요”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같은 과 친구 중 유학이나 고시 준비생들을 제외하고 취업희망자 10명 중 오직 1명만이 취업을 확정했을 뿐 이다. 이씨는 “취업사이트에 가보면 연·고대생들 중에는 토익 950이고 학점 3.7인데도 서류전형에서 30번 떨어졌다는 사람이 있 다”며 “취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고 말했다.
8월부터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이씨는 요즘에는 부모님께 안부전 화도 드리지 못하고 있다. 아들이 서울대에 다닌다고 동네에 자 랑하고 다니셨던 부모님의 목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서류전형에서 20여번 떨어지자 요즘에는 두통에다 불면증에 시 달리게 됐다. 지난주부터는 그나마 채용공고마저 거의 끊겨 이제 는 더욱 우울한 겨울을 맞게 됐다. 이씨는 “대학을 졸업하면 공 무원으로 정년퇴직하신 아버지께 용돈을 드리려고 했는데…”라 며 눈물을 글썽였다.
심은정기자 ejshim@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