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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문화와 자본주의의 충돌

 
최근 나는 문화와 자본주의의 악한 관계를 충격적으로 경험했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국제연극평론가협회와 국제영화평론가협회의 회장단이 장차의 공동사업을 모색하는 회의가 열렸는데, 국제연극평론가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나도 참석했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나는 한 가지 매우 아이로니컬한 현상을 발견했다. 현대예술의 총아이며 돈이 많은 영화의 평론가들은 되도록 영화가 연극과는 다른 예술임을 강조하려 했고, 모든 예술의 모형이었던 연극의 평론가들은 되도록 두 장르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려 했다.

영화나 연극이 드라마 예술임에 틀림없는데 나는 어딘지 부자와 빈자의 멘털리티가 이 회의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연극과 영화의 국제평론계를 대표한다는 이들이 예술을 논함에 있어 자본주의적 불평등 의식을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회의 끝에 우리는 각종 영화나 연극의 심사위원회에 서로의 평론가들을 포함시키는 문제, 평론워크숍을 공동주최하는 문제 등 여러 건설적인 합의에 이르기는 했다.

그런데 문화와 자본주의의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는 참으로 엉뚱한 데서 더욱 충격적으로 나타났다. 우리를 초청해준 불가리아측의 배려로 우리는 불가리아 최남단 도시 산딘스키까지 버스로 둘러볼 수 있었다. 유럽에서 동방정교회를 처음 도입하고 키릴 문자를 개발한 나라답게 불가리아는 문화적으로는 참 부자임에 틀림없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문화재만 20개가 넘고, 근 4만개에 이르는 역사유적지가 있다 한다.

-불가리아 유적지의 감동-특히 11세기초부터 건축된 소피아 근교의 보야나 교회에는 성자들과 예수의 감정이 생생하게 표현된 중세미술의 프레스코로 교회의 벽과 천장과 건물정면이 가득 차 있었다. 유럽 르네상스의 선구자적 역사성과 경건함과 세속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또 불가리아 최대의 수도원인 릴라 수도원은 아직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적적함과 고요함과 거룩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 있는 예배당에는 아직도 신도들이 켜놓은 촛불들이 성전을 그윽하게 밝혀주었다.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거룩함에 압도당할 만했다. 수도원은 마치 히말라야의 한 고봉을 연상시키는 3,000m의 설산을 뒤로하고 있어 나는 자연과 종교와 인간이 이룩한 문화가 이 이상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한참을 감동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이 거룩한 유적지를 떠나니 풍경은 싹 달라졌다. 지방도로이든, 고속도로이든 길 양쪽으로 한 집 건너마다 새빨간 코카콜라의 배너들이 마치 우리의 주유소에 만국기가 펄럭이듯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군사적인 점령만이 점령이 아니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코카콜라의 배너들은 그 엄청난 물량으로 이 아름다운 발칸국가의 목가적 풍경을 파괴하고 있었다. 발칸 국가 중에서도 불가리아는 차를 타고 10분만 달리면 산이며 들의 풍경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독특한 나라다.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천부의 자연이 아름다운 이 가난한 나라에 코카콜라가 퍼붓는 폭력적인 홍보활동은 나를 경악케 했다. 물론 불가리아는 외국자본을 유치해서 국가경제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불가리아 안에만 네 개나 되는 코카콜라 공장이 있다 하는데 이들이 불가리아의 경제발전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코카콜라가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하더라도 그 지역의 자연을 이토록 추하게 점령할 수 있는가.

-코카콜라 ‘점령’에 경악-하긴 세계의 지탄을 외면하며 도쿄협약에서 탈퇴한 미국이고 보면 뭐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의 실체를 내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는 치솟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기왕에 영화평론가들하고 만난 행사에서 이런 경험을 하고 보니 할리우드를 상대로 하는 한국의 스크린쿼터 투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문화와 자본주의의 관계가 반드시 상호파괴적일 필요는 없다. 문화보전과 발전을 위해서 많은 기업들이 국내외적으로 메세나 운동을 통해서 애쓰고 있음을 나 역시 잘 안다. 평소에 그런 기업들에 무척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문화인과 자본가들이 공동으로 어떤 윤리강령을 만들어 불가리아에서 코카콜라가 자행하는 것 같은 추악한 점령적 홍보활동을 자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My EyEs
2003-11-26 09:36:17
797 번 읽음
  총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철면마왕 '03.11.27 12:17 PM 신고
    :-)*미국의 정신적 노예인 한국사람들에게 좋은 글이군여. 강추! ↓댓글에댓글
  2. 2. 정재헌 '03.11.27 12:17 PM 신고
    참 잘했어요. 강추!! 포인트 80점!! ↓댓글에댓글
  3. 3. 당당한걸 '03.11.26 10:23 AM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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