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 사는 김모(30)씨는 지난해 아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어느날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자기 사진이 반지의 제왕, 호빵맨, 슈렉 등의 영화 포스터에 패러디돼 학과 홈페이지에 올려진 것이다. 이 사진은 순식간에 다른 이미지나 유머 게시판으로 옮겨져 김씨는 이 사진을 지우느라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서울에 사는 학생 A씨는 지난 1월 유명 디지털카메라 사이트에 여자친구 사진을 올렸다. 여자친구가 "오빠, 술 담배는 이제 그만"라는 종이를 들고 찍은 사진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며칠뒤 이 사진은 "오빠, 000는 이제 그만"이라는 민망한 문구로 대체된 채 올라왔다.
당황한 A씨의 여자친구는 사이트 운영자에게 바로 사진을 삭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다른 사이트에 옮겨졌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모 언론사 기자는 지난해 미국의 전시회에 출장을 가서 나레이터 모델과 찍은 사진을 홈피에 올렸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본 친구가 사진을 복사해 디지털카메라 동호회에 올려놓았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기자는 황급히 친구에게 사진을 내려줄 것을 부탁했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서였다.
◆
본인 의도와는 왜곡되어 유포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올린 사진이 자신도 모르게 다른 게시판으로 옮겨지면서 개인정보와 사생활의 침해가 점점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올린 자료나 사진인데 그것이 인터넷의 특성상 여기저기 옮겨진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개인이 원래 올린 의도와 180도 달리 활용되거나 왜곡된다는데 있다.
단순히 옮겨지는 수준에서 벗어나 패러디의 소재가 되거나 변형 왜곡되면서 개인들이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당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디지털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대부분 인터넷 포털 사이트은 '포토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이미지 게시판을 활성화하고 있다. 디씨인사이드 등 디지털카메라 동회회의 이미지 갤러리에는 하루에도 수백장의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싸이월드 같은 개인 홈피와 블로그에도 네티즌들이 자기의 주변과 일상을 디지털카메라로 기록해 보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곳에 '공개'된 사진들이 올린 이의 허락도 받지 않고 여기저기 옮겨지면서 발생하고 있다. 친구가 엉뚱한 곳에서 사진을 발견하고 본인에게 전화해 알려주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요즘에는 사진에 댓글 문화가 발달돼 있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 올려진 내 사진에 욕설이나 이상한 댓글이 달여 있으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네이버의 포토갤러리나 디씨인사이드 게시판에는 이미지 삭제를 요청하는 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번 올려진 사진은 삭제 요청을 하더라도 본인 여부나 출처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려 바로 삭제되지 않는다.
◆
보는 사람은 한번 웃고 넘어가지만 당사자 고통은 엄청나다자기 사진이 변형되거나 왜곡된 경우에는 그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한번 사진이 올려지면 기술적인 '보호'가 되어 있지 않는 한 복제, 유포가 통제 불능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피해자는 "그 때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 상기하기도 싫다"며 기사화되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기사화되면 몰랐던 사람도 알고 다시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는 이유다. 그는 그때 이후 대인 기피증이 생겼다.
보는 사람은 한번 웃고 넘어가면 되지만 당사자가 당하는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 피해자는 사진을 삭제하기 위해 사이트 운영자에게 경고 메일을 보내는 등 몇 달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가 찾아본 결과 아직도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었다. 한번 유포되면 물리적으로 이를 막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
문화부, "사진 유포는 범법행위"인터넷을 서핑하다 발견한 사진을 복사해 다른 사이트에 옮기는 것은 초보자들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 아무 생각없이 하는 이 행동은 그러나 분명한 범법행위다.
문화관광부 저작권과의 임원선 과장은 "다른 사이트의 사진을 복사해 옮기는 것은 저작권법상 복제권과 전송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사진에 찍힌 사람의 경우 민법상 초상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올린 이가 게시판에 사진을 '공개'했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퍼가세요"라고 명시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이트로 옮기는 것도 분명 저작권 침해다.
임과장은 "게시자가 사진을 공개한 것은 공개한 환경에서만 열람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므로 다른 곳으로 사진을 복사해 옮기는 것도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
사이트 운영자도 "책임있다"사진 유출로 인한 개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윤리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굳이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앞에 든 사례처럼 '장난으로 던진 돌'이 당사자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들도 나몰라라 할 수는 없는 문제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저작권법 개정안(제 77조)에 따라 사이트 운영 주체들도 저작권 침해를 적극적으로 방지해야할 책임이 뒤따른다. 현재 인터네 사이트들은 무단으로 퍼온 사진을 삭제하는 정도로 이 책임을 이행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모니터링 요원 2명씩 교대로 24시간 불법 게시물들을 감시하고 바로 삭제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씨인사이드측도 "시간마다 2명씩 사이트를 관리하고 있으며 직원들도 틈틈이 사이트를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싸이월드의 경우 사진을 게시판에 업로드할 때 다른 사람이 다운로드 할 수 없도록 하는 하는 기능을 추가할 계획. 또는 허락된 사람만 다운로드가 가능하며 다른 사람이 이를 다시 옮길 수 없도록 하는 기능도 덧붙여진다.
싸이월드 관계자는 "미니 홈피 사용자들로부터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불만이 많이 접수돼 조만간 사이트를 개편하면서 공개와 다운로드 설정 기능을 더욱 세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희종기자 hjkang@inews24.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