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라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초대 부산수산대학장을 역임한 정문기(鄭文基, 1898~1996) 박사다. 정박사는 ‘대마도의 조선 환속과 동양평화의 영속성’이라는 논문에서 대마도를 조선으로 환속하는 것이 동양평화의 영속성을 기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미 군정 시기인 1948년 2월17일에 열린 제204차 입법의원 본회의에서 입법의원 허간용(許侃龍·서북도 관선의원) 외 62명은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복귀시킬 것을 대일강화조약에 넣자는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 폭주로 연기되다 회기가 종결됨으로써 실현을 보지 못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1875~1965)은 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8월18일 전격적으로 ‘대마도 반환요구’를 발표하였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 이하 온 내각이 발칵 뒤집히며 반발하였다. 그런데도 이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9월9일 재차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며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1949년 1월6일 일본에 대해 배상을 요구한 이대통령은 이틀 후인 1월8일, 대일강화회의 참가계획을 발표하면서 또 한 번 대마도 반환을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앞으로 열릴 대일강화회의에서 대마도 반환을 관철시킬 것을 촉구하는 건의안이 제출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의 요시다 총리는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원수에게 이대통령의 요구를 막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이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전후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데 방해되는 언사로 받아들이고 이대통령의 발언을 제지했다. 그 후 이대통령은 공식적으로나 문서상으로는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교사절을 만날 때마다 대마도 영유권을 역설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는 역사적인 근거를 깔고 있는 올바른 발언이었다.
대마도는 치욕의 역사 속에서도 대의를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 항거한 면암 최익현(崔益鉉) 선생의 혼이 깃들인 섬이다. 올해 4월 부산 부경대학교(구 부산수산대) 강남주 총장은 대마도에서 입시설명회를 갖고 “대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150km쯤 떨어져 있는 일본보다는 53km 만 떨어져 있는 한국을 더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정서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강총장이 대마도에서 입시 설명회를 갖고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깊이 음미해볼 만한 일이다.
구한말 국제정세에 우둔했던 우리는 쇄국정책을 선택해, 대마도가 일본의 억압 속에 일본 영토로 귀속된 사실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당당히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을 따져볼 때다.
출처:신동아2001년8월호(대마도는 우리땅)
사진:아무로 나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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