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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신불출, 수용소서 비참한 최후"

 



무용배우 출신 김영순씨 증언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崔承喜) 선생이라든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담가 신불출(申不出) 등 북한으로 넘어간 유명 인사들의 최후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북한에서도 몇 안 될 거예요. 꿈을 안고 북을 선택했지만 제대로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남쪽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13년간 조선인민군협주단 무용배우로 활동하다 지난해 11월 한국에 온 김영순(67) 할머니가 4일 인터뷰에 응했다. 김 할머니는 그간 조용히 살아오다 북한 인권 운동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최근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촉망받는 무용수에서 수용소에 갇힌 ‘정치범’ 신세까지, 김 할머니가 걸어온 인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킬 만큼 파란만장하다. 김 할머니는 중국 선양(瀋陽) 출신으로 항일연군에 참여했던 오빠를 따라 1946년 평양으로 들어갔었다. 평양종합예술전문학교(현 평양음악무용대학) 1기 졸업생인 김 할머니는 최승희로부터 직접 무용을 배운 제자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은 최근 최승희의 묘를 애국열사릉으로 이장해 정치적으로 복권시켰지만, 최승희가 죽은 장소는 평남 북창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입니다. 남편 안막(安漠)과 딸 안성희도 강제노동과 영양실조로 처참한 말로를 맞이했지요.”

김 할머니는 최승희 인생의 감춰진 이야기들도 털어놓았다. 최승희 무용 시작 31주년을 맞아 북한무용가동맹 오몽희 위원장이 닭 31마리를 잡아 연회를 벌이려다 ‘개인우상화’를 했다 하여 잡혀가 죽은 일도 있다고 김 할머니는 전했다. 최승희가 북창수용소로 끌려가야 할 이유는 많았다. 그가 연출한 연극에 ‘중’들이 등장했다든가, 그의 무용이 사회주의 현실에 맞지 않게 퇴폐적이라든가 등등.

“1960년대 말은 김일성 우상화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로 김일성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 되어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짓던 그런 시대였지요. 최승희 같은 자유분방한 예술인이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가 광적으로 벌어지는 북한에서 견뎌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김 할머니 자신도 작은 ‘말 실수’ 하나로 1970년 10월 요덕수용소로 끌려가 8년간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다. 사람들과 얘기 도중 예술학교 시절 절친했던 성혜림에 대해 잠깐 입에 올린 것이 화근이 됐다. 당시 작가 이기영의 며느리였던 성혜림은 정치적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던 김정일과 동거를 시작했었다. 수용소에 들어가 보니 성혜림과 관련한 말실수로 끌려온 사람이 김 할머니 말고도 15명이나 되었다.

“가혹한 노동과 영양실조로 제 부모님과 막내아들을 수용소에 묻었지요.”

김 할머니는 광복 직후 혼란기에 명성을 떨쳤던 만담가 신불출에 대한 소식도 들려줬다.

“월북자와 납북어부 등을 안심시키기 위해 신불출이 자주 동원돼 만담을 공연했어요. 그러다 신불출이 말을 잘못해 요덕수용소에 끌려왔고요. 그도 1976년쯤 요덕수용소 구읍지구에서 영양실조에 걸려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김 할머니는 요덕수용소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솟는 울분을 가눌 길이 없다고 했다.

“나이 들어 한국에 오니 사회에 기여할 일도 없고…. 얼마 남지 않았겠지만 여생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바칠 생각입니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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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0 20:5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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