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페미니즘도 상생이다]정유성교사가 보내는 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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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엇보다도 평등을 내세우며 하는 일에서도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성차별에 유난히 화를 내고 불끈했었지. 게다가 가끔은 내게 남아 있는 남성 중심적인 잔재를 질타하고 닦아세우기도 했다. 네게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그러면서 나도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정말 고맙다. 너는 그 뒤 그만큼 힘차고 거세게 세상의 버거운 물살을 헤치고 열심히 살아나갔다. 졸업하고 취업하고 동지였던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네 뜻과 꿈을 좇아 치열하게도 살았지. 직장 다니면서도 집회며 활동이며 밤늦도록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집안 일은 당연히 나누어야 할 텐데, 아직 훈련이 덜 되고 다 자라도록 어리고 모자라기만 한 남편이 속상하다면서도 끈기있게 끌어주고 함께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조금도 식지 않는 네 열정에 가끔은 고단하고 힘겨워 주춤했던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단다. 네가 갓 난 아이를 안고 찾아왔을 때, 이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될 때쯤 우리가 꿈꾸는 사람대접 받는 세상은 와 있으리라 기대도 하고, 그러려면 서로 더 힘내고 애써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 아이 맡기기 어려워 아이를 들쳐 업고, 부둥켜 안고 길길이 뛰면서도 넌 땀에 젖어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옹 다문 입술로 네 뜻을 더욱 세웠다. 그걸 지켜보며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얼마나 대견했던지. 말로만 힘 실어주고 등 두들겨 주면서 난 모자란 제도만 탓하고 못난 관행만 손가락질했지만 넌 생활로 실천으로 그 아픔과 어려움을 다 감내하고 또 견뎌냈구나.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던 너는 아이가 자라 학교에 들어갈 때쯤 되자 변하기 시작했다. 번듯한 세상 만들겠다고 날뛰다가 아이가 학교 들어갈 때까지 아직 읽고 쓸 줄도 모른다고 구박 받고 천방지축 뛰놀기만 좋아한다고 따돌림 받게 했다고 한숨 쉴 때 난 가슴이 철렁했다. 올바르고 큰 뜻 아니면 결코 따르지 않겠다던 넌 어느새 귀가 종잇장처럼 얇아져 온갖 주변 소문과 관행에 흔들리고 쏠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못해준 것 갚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급기야 사교육 시장에 내돌리고, 뒤처진 것 따라잡겠다는 집념마저 휘둘러 그 경쟁놀음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네 아이는 공부는 잘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영혼은 시들고, 네 조종에 놀아나며 말 잘 듣고 순종하는 인형이 되어버렸다. 내 이런 이야기가 고깝다 못해, 그럼 어쩌겠느냐고 대들고 싶겠지? 하지만 우리가 공부한 대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생활 속에서 우리가 꿈꾸는 뜻을 펼치지 못한다면 어디서 펼치겠니? 남편까지는 어떻게 해 보겠지만 네 아이와의 관계, 아니 네 모성만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내가 늘 교육과 양성평등의 일을 하면서 여성해방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교육문제라고 했지? 네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독립하여 홀로 서고 당당히 네 길을 가고 자기만의 방 또한 가졌다고 해도 해방된 것이 아니다. 교육이라는 굴레가 너를 친친 감아 그 모든 독립과 해방을 무산시키지 않더냐? 물론 여전히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극한경쟁으로 내모는 잘못된 제도도 고쳐야 하고, 아이들 교육은 엄마의 몫으로 덮어씌우는 그릇된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네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아이와 네가 함께 독립하고 해방되어야 한다. 마치 교육이 무슨 원죄인 듯 아이와 너를 망가뜨리고 너희 관계를 부수고 있는 것을 바로 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고 핑계대지 말자. 그리고 첫 마음, 첫 뜻으로 돌아가자. 네가 아이를 갓 낳아 처음 품에 보듬었을 때, 내가 처음 너희를 교실에서 만나 사뭇 영혼의 전율을 느꼈을 때로 돌아가자. 아흔 아홉번의 절망 끝에 단 한번의 희망을 노래하던 그 때로 돌아가 가장 가까운 삶 속에서 사람 사이에서 우리 각자 선 자리에서 해방을 실천하자.
고3때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지쳐 집에 돌아가면서 친한친구 3명과 이런 다짐 했던거 생각나네요. "야, 우리는 진짜 자식들한테 이러지 말자. 얼마나 힘든지 우리도 겪어봐서 알잖냐? 우리 자식세대에는 이런 무의미한 고생 제~발 하게 하지 말자. 우리가 참으면, 우리친구들 한테도 동참하자 하고, 그 친구들의 친구들한테도 그러지 말자고 하면, 그러면 좀 변하지 않을까? " 아직까지는 그 다짐대로 살아갈 수 있다 맹세도 할 수 있지만, 닭장같은 아파트 바로 옆사람과 그의 자식들을 보면서도 이런 맹세를 지켜나갈 수 있을런지.... 탐탁치 않은 성적표를 들고오는 아이를 보고 과외며, 학습지며, 학원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 어미가 될 수 있을런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여성이 되고싶다던 처녀적 꿈을 내 딸이 똑같이 가진다면, 난 울 어머니와 달리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내가 변해서, 내 주위사람을 변하게 한다면, 그리고 그 변한 사람이 또 그 주위사람을 설득하게 된다면 정책과 제도가 아니라도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철없을 때의 생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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