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있었는데 이후부터 가톨릭의 성장이 전 세계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가톨릭의 성장이 어떻게 두드러졌을까. 그 이유를 약 3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신학적인 것도 아니고, 다른 어떤 것도, 아무 것도 아닌 사회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인구문제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산아제한을 하지 않습니다. 이 산아제한을 하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한 3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굉장한 차이를 나타내게 되어 있어요. 미국에서도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파가 가톨릭인데 가톨릭교회가 가장 빨리 성장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산아제한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어요. 가톨릭교회 가정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많아요. 부부가 있다고 하면 아이들이 4명 정도 있죠. 개신교 가정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2명이 넘는 집이 거의 없어요. 한 명밖에 없는 집도 있고. 그러니까 처음 아이들을 나았을 때는 별 차이가 없는데 한 세대가 넘으면 두 명밖에 안 낳은 가정은 그냥 두 명밖에 없는데, 네 명을 낳은 가정은 두 명이 네 명으로 바뀌는 거예요. 이게 30년 사이에 두 배로 바뀌는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의 출산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은 회교도들이 빨리 늘어나는 것과도 관련성이 많아요. 그러니까 출산율에 문제가 있어요. 가장 출산을 안 하는 종파가 개신교예요. 어쨌든 첫 번째 중요한 이유는 신학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출산율의 문제와 인구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가톨릭의 선교 정책과 관련이 있는데, 가톨릭교회는 포용주의적인 선교정책을 갖고 있어요. 우리 개신교회는 일반적으로 배타적인 선교정책을 갖고 있는데 반해. 가톨릭의 선교정책은 한 30년 동안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래요. 이 포용적인 선교정책이라는 것은 뭐냐하면 예를 들면 우리의 한국의 가톨릭을 볼 때 바로 나타나는 것인데 제사 문제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제사를 허용해요.
복음의 핵심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문화적인 여러 가지 요소들을 흡수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술․담배뿐만 아니라 제사도 허용하잖아요. 그런 문제로 고민이 되는 분들은 개신교회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로 가게 되어 있어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때 태동한 이 선교정책이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전 세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될 선교정책적인 어떤 문제가 걸려 있어요.
마지막 문제는 가톨릭교회의 이웃에 대한 책임, 사회 참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 안에서 가톨릭교회가 발전한 핵심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가톨릭이 이웃과 함께하고 있다'는 인식입니다. '가톨릭이 세상에서 책임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가톨릭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장애인과 함께하고 있다, 가톨릭은 민주주의와 정의의 상징이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 이것으로 상징되는 가톨릭은, 그야말로 한국에 무언의 설교를 하는 어떤 힘을 갖고 있어요. 그 핵심은 무엇인가 하면 이웃사랑, 이웃과 이 세상에 대한 책임과 관련되어 있어요. 제가 볼 때 가톨릭의 거의 모든 것은 우리 개신교에 비해서 열등합니다. 교리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가톨릭은 여러 가지 문제를 갖고 있어요.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의 장점 중의 하나는 이웃과 함께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 개신교회도 가톨릭교회를 배워야 할 점이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원래 가톨릭은 이웃과 함께하는 종교가 아니었어요. 가톨릭은 어디든지 가면 지배계층과 결탁했습니다. 왕권과 결탁하든지, 지배계층과 결탁하든지, 가톨릭교회는 원래 지배계층과 결탁하는 종교였지 가난한 백성들에 관심이 있었던 종교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 2차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해서 가톨릭교회 정신에 일대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저는 이 공의회를 주도했던 교황 요한 23세가 위대한 가톨릭의 교황이었다 생각합니다. 이 분의 정신이 가톨릭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 때부터 전 세계의 가톨릭은 사제들과 수녀들과 신부님들이 가난한 백성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백성들과 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가톨릭은 사회 속에서 신망을 얻게 되었어요.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 한국의 개신교회는 위대한 개신교의 전통을 이어받음과 함께 이웃과 함께하는 이 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원래 이 이웃과 함께 하는 정신은 가톨릭의 정신이 아니고 우리 개신교의 정신입니다. 우리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한 번 봐요. 우리 나라 일제 시대 때 누가 한국 민족의 아픔을 함께했는가? 우리 개신교 신자들입니다. 우리 개신교 지도자들이었어요. 3. 1 독립선언문의 민족 지도자 33인 가운데 절반이 개신교 지도자들 아닙니까? 가톨릭교회는 우리보다 100년이나 먼저 선교를 했지만 33인의 민족 지도자 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단 한 사람이나 있었느냐 그 말이에요.
해방 이후에도 가톨릭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일제 시대의 긴 세월을 흐르면서 해방이 되고 난 우리 대한민국에 사람들은 다 개신교회로 몰려 왔지 가톨릭 교회로 가지 않았어요. 우리 민족의 아픔과 함께하고 우리 민족을 살리는 종교가 개신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다 그래요. 우리는 원래 그런 위대한 전통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어느새 우리가 그 위대한 전통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전통을 지금 가톨릭 교회가 가져갔다 그 말이에요. 21세기에 들어선 한국교회는 우리의 위대한 전통을 다시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민족과 이 역사 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개신교회를 만들어가야 할 줄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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