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과 연결되어 있다.
* 그러면 이 두 지식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가?
거울 없는 하루를 상상해보십시오. 이집트에서는 BC 3000년경부터 이미 여성들이 화장을 즐겼답니다. 거울 없는 화장을 생각할 수 없지요. 거울도 이미 상당 수준으로 발달해 있었습니다. 중세에 와서는 거울이 훨씬 작아지고 휴대하기에 편리해졌습니다. 그러나 역시 거울 역사에 혁명을 가져온 것은 유리 거울의 탄생입니다.
르네상스시대에 유리 제작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에서는 16세기 초 유리판 뒷면에 주석박(朱錫箔)을 붙이는 기술을 발명했습니다. 유리 거울이 무거운 청동제 거울을 대신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아직 거울은 너무 비싸 왕후나 귀족들의 독점물이었습니다. 그러다 17세기에 대형 판유리가 출현하면서 값이 대폭 싸졌고, 덕분에 서민들도 자기 거울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세기에 들어 유리는 대량생산되었고, 도은법(鍍銀法)이 발명되어 거울은 일반 가정에까지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현대에는 수많은 거울들이 온 세상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거울의 역사는 사람이 제 모습을 더 잘 보기 위해 몸부림친 발자취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을 보는 거울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보는 거울도 있습니다.
제1절 첫째 거울 : 자신을 보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우리의 참되며 건전한 모든 지혜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 두 지식은 서로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먼저이며, 또 어느 것이 그 다른 쪽을 생산해내는지도 쉽게 알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샘의 근원에 도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받아 누리는 수많은 은사들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그 모든 은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은사의 거울).
또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지를 깨달아야 하나님의 선하심과 온전하심과 풍성하심을 갈망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동안, 즉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동안에는 결코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겸손에 눈이 뜨이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향해서도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이지요(겸손의 거울).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우리를 일깨워 하나님을 찾게 해줍니다.
제2절 둘째 거울 : 하나님을 보면 자신이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밝히 본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명백하고 온전한 기준을 모르면 사람은 결코 자신의 불의와 더러움과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충분히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교만이란 눈가리개를 쓰고, 위선이란 가면을 쓰고 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한 사람은 항상 자신을 어느 정도 괜찮은 존재로 여기게 되고, 가면 같은 거짓 의(義)를 얼굴에 쓰고 자신도 그 가면에 속아 스스로를 만족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온통 부패해 있고 더럽혀져 있지만, 좌우에 있는 사람끼리 비교할 때는 남보다 조금 더 나은 거룩 때문에 흥분하고 즐거워합니다. 마치 그것은 만날 검은 색만 보던 사람이 조금 희끄무레한 색을 보고는 너무 하얗다고 놀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항상 자신을 거의 신적인 존재로 착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땅만 바라보며 제 시력을 자랑하던 사람도 태양을 보면 그 시력을 잃게 되는 것처럼, 죄 아래 있는 인간이 제 아무리 자랑하는 거룩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그것에 비하면 곧 그 자체가 죄요 사악한 것이 됩니다.
제3절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선 인간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던 성도들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거의 죽을 만큼 두려워하고 놀랐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자랑하던 지혜와 의(義)와 거룩을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비교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기의 모든 것이 얼마나 비천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란 말을 자주 했고, 욥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선 인간이 아무것도 아님을 강력한 논증으로 선포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에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자신이 ‘티끌과 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엘리야도 자기 얼굴을 겉옷으로 가리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심을 감당하지 못했고, 하늘의 그룹 천사들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얼굴을 가리고서야 그 두려움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광채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던 광채들도 그 빛을 잃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을 먼저 논의하고, 그 다음 사람에 관한 지식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순서일 것입니다.
# 간추린 말씀
인류가 갖고 있는 지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입니다. 그런데 그 두 지식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고, 우리 자신에 대한 거울(은사의 거울, 겸손의 거울)은 하나님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거울을 자주 봅시다. 거울을 자주 볼수록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 디지털 기독교 강요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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