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에 '빛'을 창조하셨다.
빛은 하나님께서 '빛'이심을 투사하기 때문에 첫째날에 빛을 창조하셨다고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빛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으셨다"(창1:4)고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시며 '참된 빛'(요1:1-9)이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빛'이시며 그 빛 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빛'으로 성육신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빛'되신 예수님의 은혜가 어둠에 빛추이고(마1:16) 오늘 우리들 심령에 비추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이다.
빛과 어두움은 상대적이지만 '빛'이 비추이면 어두움은 자연적으로 물러가게 된다. 결코 어두움이 빛을 물러가게 할 수는 없다. 빛이 스스로 물러가면 그 틈을 타서 어둠이 주인 행세할지라도 다시 빛이 나타나면 어두움은 스스로 물러가 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시다(시119:105). 어두운 세상에 성경이라는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우리들 양심에 비추어 주시고 있다.
어둠중에 악한 어두움은 우리들 본성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이다. 죄악은 스스로 물러가지 않는다. 죄는 어두움을 좋아하고 어두움을 먹고 산다. 그러나 어느날 말씀의 예리한 빛(히4:12-13)이 양심에 비춰올 때 어두운 죄는 드러나고 죄가 드러나면서 양심은 고통스럽게 된다. 말씀 앞에 드러난 그 죄는 복음의 빛이 들어오면 저절로 물러나 버린다. 아침녁에 뿌연 안개가 앞을 가리고 있다가 찬란한 햇살이 솟아오르면 살며시 물러가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다. 죄가 복음을 물러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죄를 물러가게 하는 힘이 있다.
만물은 빛을 지향하는 생물이 있고, 어둠을 지향하는 생물들이 있는데 자연의 초목은 버섯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빛'을 지향하여 생명을 누린다. 생물들 중에 어둠을 지향하는 두더지나, 쥐들, 바퀴벌레같은 곤충류는 빛을 싫어하며 밝은 빛앞에 드러나면 죽을 수도 있다.
죄인들이 죄속에 깊히 뭍혀 어둠이 체질화되어 버린 자들은 '빛'앞에 견디지를 못하고 빛을 피하거나 충격을 받아 기절할 수도 있다. 빛을 가까이 할 수록 빛에 적응이 되며 동시에 어둠에대한 감각이 예민해진다. 빛을 수용하며 빛을 따라 사는 생리도 변화되가며 결국에는 '빛'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게된다. '빛'이 체질화되어 살게되면 전에는 단순한 그림자로 보이던것까지도 '어두움'으로 보이게 된다.
빛에 적응이 되어버린 영혼은 빛을 소유한 지체들과 교제를 나누고 생리적으로 어둠을 싫어한다. 어둠에 적응이 되어버린 영혼은 어둡고 캄캄한 영혼들과 교제를 좋아하고 빛을 싫어한다(요3:19-21).
그런 영혼은 가능한한 '빛'을 멀리하고 싫어하고 배척하고 급기야는 빛을 박해한다. 그 상황까지 가버리면 빛을 수용할 수가 없게되어 버린다. 최종적으로 '빛'의 그림자도 없는 '지옥'어둠으로(마22:13) 떨어지게 된다. 그곳에서 슬피울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않으려하고 또 떠날 수도 없게되버린다. 왜냐면 그는 결코 빛을 수용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죄로 강팍케됨을 면하라 하였다(히3:13). 그러므로 사람들은 빛되신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필요한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