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정통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로써 자신을 "과학적 창조론"이라고 부르는 "창조론"이라는 믿음 체계가 존재한다. 이 경우에 있어서, 훌륭하고 칭찬하고픈 형용사를 이렇게 사용한 것이 어째서 수치스러운 사기에 지나지 않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과학이란 사고의 과정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것은 다른 시간에 다른 방식으로 다른 장비를 쓴 다른 사람들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관찰들을 모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렇게 확인된 관찰들로부터, 일반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논리적인 방식에 의해 결과와 결론이 논리적으로 도출된다. 이러한 결과와 결론들은 임시적인 것이고, 그 분야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논쟁의 거리가 될 수 있으며, 만일 추가적인, 혹은 보다 치밀한 관찰이 이루어지면, 수정되거나 완전히 변화될 수도 있다. 그러한 관찰과 결론에 앞설 수 있는 믿음은, 관찰이 행해질 수 있으며, 결과와 결론이 추론될 수 있고, 우주가, 최소한 어느 정도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이 가정이 사실이 아니라면, 정신을 사용할 방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에 반해서, 창조론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이 글자 그대로의 진리이며 틀릴 수가 없다는 취지의, 강하고도 확고부동한 신앙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관찰과 논리의 기능은 성경에 나오는 말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확인하는 것에 제한된다. 그러한 말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떠한 관찰, 혹은 어떠한 논리의 전개도 반드시 거짓이며 버려져야만 한다. 그러한 말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떠한 과학적 결론들도 역시 거짓이며 버려져야만 한다. 전적으로 독단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는 핑계를 찾기 위해, 창조론자들은 과학적 발견들을 왜곡하고, 과학자들의 말을 잘못 인용하며, 자신들의 순수한 추종자들의 감정과 편견을 이용해 먹는다. 그렇다면, 창조론이 무엇이든,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상호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많은 관찰들의 조직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한 조직화를 "이론"이라 부르며, 이것은 상호 연관을 설명하고, 관찰에 의미를 부여하며, 매우 많은 경우에, 아직까지는 행해지지 않았던 관찰을 예언한다. 그러한 이론은 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그 이론에 들어맞는 관찰을 하게 될수록 보다 타당성을 부여받는다. 그러한 이론은, 물론, 아무리 타당성 있게 보였는가에 상관없이, 언제나 수정과 그것 이상으로의 일반화가 가능하다. 그렇게 수정되고 일반화된 이론들은 항상, 새롭게 도입된 것으로 인해, 보다 강력하고 훨씬 더 타당성 있게 된다. 진화 이론은 극단적으로 강력하며, 다윈의 시대 이후로 도입된 수정들은 그것을 훨씬 더 강력하게 할 뿐이어서, 이제 그것은 생물학의 가장 근간이 된 나머지, 그것을 빼고는 생물학은 전혀 말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생물학은 진화 이론이 도입되기 전에는 전혀 말이 되지 않았던 잡다한 관찰들로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에 반해서, 창조론자들은, 어떠한 이론도 없으며, 이는 그들이 성서에 나오는 글자 그대로의 말들만을 진실로써 받아들이기 때문인데, 그 말들은 서로를 지지하지 않고, 때로는 서로에 모순되기까지 한 잡다한 진술들로 기술되어져 있다. 그들이 진화에 대한 것과 같은 과학적 이론들을 버리는 수단은, 주로, 이론을, 제멋대로 그리고 무식하게, "추측"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론에는 과학적인 것이 눈꼽만큼도 없다.
과학은 지적 시장의 결정에 따른다. 그것의 모든 관찰들, 그것의 모든 결론들, 그것의 모든 이론들은, 공개적으로 발표되고 연구되고 논쟁된다. 때로는 오랜 세월 동안 해결되지 않기도 하는 논의와 논쟁들이 있다. 심지어 때로는 (과학자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된 관찰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옳지 않은 결론이 내려지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조만간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는데, 이는 개방된 조사라는 과학 체계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사기를 치는 것이 어렵고, 심지어는 불가능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창조론은, 그 근본이 질문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지적 시장을 견뎌낼 수가 없다. 성경에 나오는 글자 그대로의 말은 처음부터 진실인 것으로 단언된다. 그러니 어떻게 어떠한 질문, 어떠한 주장, 어떠한 논쟁도 있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이것은 비과학적인 헛소리이다. 이렇게 피할 수 없이 버려지는 것에 맞서기 위해, 창조론은 국가의 힘을 빌어 과학으로써 가르쳐지게 되려 한다. 그것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무지에 눌려, 혹은 자신들의 선거권자들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과학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정의하려 하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정치인들이 이렇게 한다면, 그들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정의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모든 자유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정치적 활동을 요구함으로써, 창조론은 스스로 정치력으로 변질되는 것이며, 이는 과학적인 것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엄청난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이다.
- 아이작 아시모프 ( 이학 박사(화학), SF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