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 우리나라에는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요. 권위주의 권력을
청산하고 국민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은
결국 87년 6월항쟁으로 폭발해 불의한 권력을 굴복시키고 마침내 이 나라에
민주화를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렇듯 민주화에 대한 열기가 들끓던 당시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일부 천주교 신부들과 양식있는 목회자들이
그 대열에 동참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극히 소수였을 뿐 기독교는 오로지
침묵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 교회도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요구에 목회자들이 내어놓은 답은 바로 이것이었죠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장 1~2절]
각 교회들은 이 구절을 참 많이도 써먹었습니다. 불의한 권력에 침묵으로 협조하는
자신들의 비겁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이것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말씀(?)은 없을테지요.
(중세시대 백성들을 억압하던 폭군들도 이 구절을 참으로 애용했답니다. 자신들의
왕권신수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었으니까)
그렇게 독재의 시대에 한국 기독교는 속세에 초연(?)한 고결한 자세를 굳건히
견지했지요. 그런데 국민들의 힘으로 정작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교회들은 이상한 방향으로, 그들이 그토록 죄악시했던 “정치에 개입”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난 92년 대선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도가 많다는
S교회 모 목사가 예배시간에 “주여 청와대에 거룩한 찬송가가
울려 퍼지게 해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해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왜 하필 성경이 아니고 개신교의 찬송가가 울려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지는 자명합니다.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상대후보가 바로
성경을 같이 쓰는 카톨릭신자였기 때문이지요.
그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켰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고 결국 우리나라 경제를 말아먹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자 마침내 손에 손에 십자가와
성조기를 들고서 광장에 몰려나옵니다. 그토록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위 로마서 말씀마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말입니다.
결국 그들에게 “위에 있는 권세”는 과거 독재정권들과 미국정부였나 봅니다.
개신교 근본주의 목사들의 모임인 한기총이 주관하는 “나라를 위한
시국기도회”라는 시청앞 집회에 가보니 정말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반정부투사도 그런 반정부투사들이 없더군요.
연단에는 과거 독재정권에 종사하던 야당지도자들이 앉아서
그런 기독인들의 울부짖음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구요.
어째서 예수가 바리새인들더러 “회칠한 무덤” “독사의 새끼”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한국의 기독교.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거창한 기대는 하지 않을 테니
부디 독이 되지는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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