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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광복 60년이 지나도록 저항의 강도가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여튼 그 애비들도 징한 인간들이었지만, 새끼들도 애비 못지 않게 참으로 집요하다. 처벌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진상만 밝히자는데 저 난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수 신문에는 친일 진상 규명에 반대하는 오만 가지 논리가 난무하고 있다. 발상도 기발하고,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그 논리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다 지난 문제를 왜 이제 와서 끄집어내느냐?’ 요즘 보수층 사이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느냐고? 아, 그게 궁금했구나. 아주 좋은 질문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그 동안 당신들이 수적 우위를 무기로 이 문제를 꺼내지도 못하게 막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광복 후 60년 동안 시민 사회는 줄기차게 친일 잔재 청산을 요구해 왔다. 그 요구를 억지로 눌러왔던 것은 바로 당신들이었다.
‘이미 25년 전 총탄에 맞아 숨진 이를 21세기의 무대로 불러내 이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조선일보의 사설이다. 몇년 전 이 신문은 이미 20년 전 총탄에 맞아 숨진 이를 ‘21세기의 무대로 불러내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면 통째로 연재를 해가며 박정희를 민족의 구세주로 만들어놓더니, 그 빛나는 역사에 왜 그렇게 자신 없어 하는 걸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아멘, 은혜로운 주장이다. 만약 그 여인이 정신대 할머니라면 물론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다. 하지만 그 여인이 친일파라면? 제자들에게 정신대 나가라고 설치던 김활란이라면? 그때는 그리스도라도 가만 있지 않을 게다. 그도 아버지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는 채찍을 들었다. 민족사의 성전을 더럽힌 자들도 마찬가지로 대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인간성이 그리스도만큼 좋을 수는 없잖은가.
‘경제가 어려운데 웬 과거사 타령이냐?’ 보수 언론이 즐겨 부르는 레퍼토리다.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다. 이런 문제 좀 조용히 처리하면 안 되나? 경제도 어려운데 이런 문제로 사설과 칼럼과 외부 기고까지 동원해 굳이 ‘전면전’을 벌여야 쓰겠는가? 그렇게 경제가 걱정되면, 자기들이나 신문 지면을 온통 경제 문제로 도배할 일이다. 경제가 이처럼 어려운데 기껏 귀한 지면 위에서 웬 과거사 타령들이나 하는지….
‘조사하는 김에 친북 용공도 함께 조사하자.’ 박근혜 대표, 물귀신이 되기로 했다. 이 분,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멀쩡한 사람도 간첩이 되는 판에 어디 친북 용공 하고도 무사한 사람이 있었던가? 친북 용공을 하고도 영화를 누린 가문은 대한민국에 딱 하나. 남로당 군책을 아버지로 두고, 대구 폭동 주동자를 큰아버지로 둔 박씨 가문뿐이다. 친북 용공 분자를 가족으로 둔 이들이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지내신 이문열씨한테 물어보시라.
박정희가 너무 부풀려졌다. 사실 박정희는 수많은 조사 대상 중의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그의 행적에서 주요한 부분은 이미 드러날 만큼 드러났다. 박근혜 대표는 자신만 책임지면 된다. 그가 걱정해야 할 것은 아버지의 일제하 행적이 아니다. 3공 시절 자기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했던 일, 앞으로 그 부분을 검증받으면 된다. 그러니 정치적 엘렉트라라는 콤플렉스는 이제 벗어도 된다.
사실 이 문제, 박근혜 대표와 보수 언론의 사주 가문만 잠잠하면 조용히 처리될 일이다. 광복된 지 어언 60년, 친일했던 이들 대부분이 죽어 땅에 묻혔다. 부관참시를 할 것도 아니고 진상만 규명하겠다는데 왜 이렇게 결사적인지 모르겠다. ‘공인’이라면 사적인 가족사와 공적인 민족사쯤은 구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문제, 이제 털자. 아해야, 제발 청산(淸算) 좀 가자.
-시사저널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