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약점을 잡아 삥을 뜯어낸 조선일보.
이땅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가장 목청 높여 외쳤던 신문, 틈만나면 민주화 투쟁 인사들에게
색깔론을 제기하고, 사상 시비를 걸어왔던 신문인 조선일보가 박정희의 좌익 경력의 약점을 잡아
돈을 뜯어내 사세를 키워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속된 말로 하면 박정희의 약점을 잡아 삥을 뜯어낸 것이 조선일보였고, 이런 조선일보를 상황에
따라서 당근과 채찍으로 어르고 달래면서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박정희 정권이었다.
요새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이 한참 진행중인데,이렇게 언론과 독재 정권이 필요에 따라서 서로를
이용해 먹으며 권언유착을 통해 이땅의 모순을 심화시켰던 과거 행적에 대해서 조선일보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마땅하다.
조선일보가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에 대해 그렇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렇게
자신들의 감추고 싶은 과거가 밝은 광장으로 나와 낱낱이 밝혀질 것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의 의식
때문에 그런것이 아닌가.
조선일보 독자들도 조선일보의 이러한 부끄러운 과거 행적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조선일보는 마땅히 진상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아래 02년 4월 6일 오마이뉴스 기사중 일부를 인용한다.
( 63년 조선일보 미국특파원 문명자가 박정희의 좌익 활동의 자료를 모아 조선일보에 기사를 보냈으나
당시 조선일보는 이를 보도하기는 커녕, 조선일보 사장 방일영이 문명자가 쓴 박정희 좌익 활동에 관한
기사를 들고 중앙정보부를 찾아가 돈을 뜯어 냈다는 요지의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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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조선일보 미국특파원이었던 문명자씨가 월간 <말> 97년 10월호에 발표한
"박정희 김종필의 좌익전력" 이라는 글은 시사적이다.
1963년 10월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황태성 사건' 등 박정희 사상논쟁이 벌어졌을 때 문명자 씨는 미국 국회도서관에 있던 박정희 관련 자료들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5·16에 반대했다가 미 국방성의 배려로 국방성 장학생으로 워싱턴에 와 있던 강문봉 장군이 그녀에게 귀가 번쩍 뜨일 얘기를 해주었다.
"미군 정보기관인 G2의 비밀정보원 출신으로 한국에 주재하면서 '황태성 사건'을 제일 먼저 알아챘던 래리 베이커라는 사람이 박정희에 의해 추방돼 자기 고향인 네브라스카에 돌아와 있다고 합니다."
강문봉 장군은 과거 자기 군 동료들을 통해 그 같은 정보를 입수한 모양이었다. 래리는 한국군 창설 이후 육군참모총장의 군사고문을 역임하는 등 가장 오래 한국을 담당한 하우스맨 밑에서 일하던 사람인데 한국에서는 한 보험회사의 세일즈맨으로 가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5·16 후 외교관 추방 1호가 그레고리 핸더슨 문정관이고 민간인으로서는 래리가 추방 1호인데, 그 이유는 바로 그가 황태성 사건에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문명자 씨는 강문봉 장군에게 부탁해 래리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 곧 그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래리 베이커는 문 씨의 취재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그래서 문 씨는 그에게 황태성 사건에 대한 질문서를 보냈는데, 곧
다음과 같은 요지의 회답이 왔다.
"황태성과 박상희는 박정희가 남로당에 입당할 때의 신원보증인이다. 5·16 이후 황태성이 박정희와 접촉하기 위해 내려왔을 때 박정희는 김종필에게 그를 만나보도록 했다. 나는 이 정보를 입수해서 상부에 보고했는데 상부에서는 황태성·김종필이 회동하는 반도호텔을 감시하라고 했다.
그때 김종필은 중앙정보부를 조직하느라 반도호텔 한 층을 온통 차지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반도호텔 8층 몇 호실에서 몇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모두 조사해 상부에 보고했다. 황태성이 내려온 목적은 박정희와의 연대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같은 정보를 입수한 미국측은 황태성을 미 정보기관에 인도하라고 박정희에게 계속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황을 인도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끌었고, 오히려 그 사건을 추적하는 나를 한국에서 추방했다."
조선일보, '황태성 기사'로 김형욱에 융자받아
문명자 씨는 래리 베이커의 증언을 즉시 기사화해서 <조선일보> 본사로 타전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기사는 보도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크게 문제의식을 갖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기사만이 아니라 5·16 이후 보낸 기사 중 상당수가 편집국장의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군사정권의 압력을 받아 그렇게 되었거니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 씨는 1971년 뉴욕에서 우연히 만난 김형욱 씨(전 중앙정보부장)로부터 그 이유를 전해듣게 되었다. 다음은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이다.
"문 기자가 보낸 황태성 관련 기사 말이요. 그거 보고 나는 사실 문 여사가 굉장히 무섭게 생긴 여성인 줄
알았소."
"래리 베이커가 증언한 기사 말이죠?"
"맞아요. 그런데 문 여사가 보낸 그 기사 말이요. 그거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었지."
"그게 왜 김 부장한테 갔습니까?"
"방일영씨가 (당시 조선일보 사장) 나한테 왔습디다. 받아서 읽어보니 식은땀이 나더구만.
얼른 비서실장 불러 금고에 넣으라고 하고 '뭘 도와 드릴까요' 했지요"
"그래서요?"
"방일영씨가 '융자 좀 해 달라' 합디다. 그래서 결국 한 3억 해줬지 아마."
( 참고로 63년이면 자장면 한그릇 값이 30~40원 하던 시기였다. 당시 돈 3억이면 지금 시세로 수백억은 족히
될 것이며, 돈이 궁하던 그 시기에 이런 엄청난 돈을 정부에서 낮은 금리로 융자해 주었다는 사실이
엄청난 특혜였던 것이다. )
"뭐라고요?"
문명자 씨는 다음과 같은 사례도 증언했다.
당시 강문봉 장군은 여순사건 무렵 박정희의 정치적 위치에 대해서도 문 씨에게 중요한 증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는 여순사건 당시 남로당 군책으로서 체포돼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장이 5·16 후 미국방성 장학금을 받아 미시간에 와 있던 최석 장군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군 선배인 정일권, 백선엽, 이용문 장군 등이 박정희를 구출하는 데 힘써서 결국 박정희는 3천명에 달하는 국군 내 남로당원 명단과 조직체계를 넘겨주고 자신은 구명 받아 문관으로 군에 복귀할 수 있었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증언해 주었다.
문명자 씨는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당시의 신문과 미군 정보자료 등을 입수해 강문봉 장군의 증언을 보강해 박정희의 전력에 대한 기사를 본사에 보냈는데, 기사의 첫줄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박정희가 여수 순천 반란사건 당시에 남로당 군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 기사는 <조선일보>에 보도되지 않았다. 도리어 문명자 씨는 이 기사 때문에 주미대사관 파티에 참여했다가 '인민재판'을 당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녀는 결국 <조선일보>에 보낸 그 기사가 보도가 되기는커녕
거꾸로 권력측에 제공되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따라서 문명자 씨가 이 글의 말미에서 했던 다음과 같은 발언은 매우 시사적이다.
"박정희 시대와 그 연장인 5~6공 시대에 박정희의 좌익 전력에 대해 침묵하면서 그 밑에서 영화를 누렸던 자들, 그리고 현재까지도 박정희의 망령을 미화하고 있는자들은 색깔론을 시비할 자격이 없읍니다."
출처 : //blog.chosun.com/blog.screen?blogId=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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