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소련’이라는 나라가 존재할 때, 그 국민들 사이에 이런 유머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한 공장에서 세 사람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항상 출근이 항상 10분이 늦었고, 또 한 사람은 항상 10분이 빨랐으며, 한 명은 칼같은 정시 출근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모두 KGB에 잡혀 갔습니다. 맨 먼저 잡혀간 사람은 물론 지각생이었습니다.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나태함은 있을 수 없었다는 이유였죠. 그런데 갑자기 항상 10분 먼저 와서 일을 준비했던 사람이 잡혀 갑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없는 공장에 항상 일찍 나온 것은 제국주의의 스파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정시 칼출근자는 도대체 어떤 혐의로 잡혀갔을까? 그것은 “제국주의 물품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련제 중에서 그렇게 정확한 시계가 존재할 리 없다는 것이 KGB의 주장이었죠. 그리고 그 쓴웃음이 끝나기 전 하나의 질문이 더 덧붙여집니다. 그 세 사람이 잡혀간 진짜 이유는? 그 답은 “ KGB가 사상이 불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유머를 들은 후 잠깐 킬킬거리다 보면 소련 체제 하에서 소련 사람들이 풍자했던 것이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물론 KGB의 횡포도 미웠겠지만, 그 어떠한 구실이든 순식간에 선량한 노동자를 제국주의의 앞잡이요 반혁명분자로 몰아갈 수 있었던 사회 그 자체를 증오하고 풍자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KGB의 의심을 받으면” 무슨 구실이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사람들을 때려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걸 소련의 ‘법’이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모 방송국 효과음악으로 ‘적기가’가 사용되었다고 하여 일부 언론이 난리 부루스를 춘 적이 있습니다. 결국 외국 유학생 출신으로 실미도 OST에서 음악을 골라 썼다가 재수없게 적기가를 골랐다는 음악 감독은 경찰의 소환을 당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수구의 원로 이철승씨는 “KBS 사장을 파면하라”고 우겼고 언론들은 “대체 어느나라 방송이냐”면서 팔뚝을 걷어부쳤지요. 여기서 경찰이 한 말이 재미있습니다. “김씨가 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이같은 문제에 대해 무딘 면이 있고 고의성은 없어 보인다”면서 “고의성이 증명될 경우 국가보안법 7조 5항에 의거 처벌하겠다.”는 거지요. 즉, 죄를 묻고 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적기가를 틀었다 안틀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유학파 음악감독이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물론 원래는 적기가를 공공장소에 울리는 자체가 범죄였는데 그나마 91년 국가보안법 개정 당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대목이 들어가서 바뀐 겁니다마는........ 그런데 제가 참 궁금한 것은 그 사람이 '알았는지' '몰랐는지'를 경찰이 어떻게 판단하냐는 겁니다. 관심법 쓰는 궁예를 스카우트해오지도 못하고, 계룡산 도인을 국가보안법 전담반으로 배치하지 않는 다음에야 말입니다. 경찰의 노고는 계속됩니다. 경찰은 음악감독이 소리바다에서 그 음악을 다운받았을 뿐이라고 하자 소리바다 운영자를 추궁했고 소리바다 운영자는 어떤 네티즌의 홈페이지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고 하자 그 네티즌의 아이피를 추적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찾으면 또 물어 보겠죠. “너 알고 그랬니? 모르고 그랬니?” 그리고 그 네티즌이 “실미도 OST에서 따온 건데요.”라고 이야기하면 이번에는 실미도 음악 감독을 찾아갈지도 모릅니다. “당신 똑바로 말해! 알고 그랬어? 모르고 그랬어?” 영화 ‘실미도’에 적기가를 등장시킨 것만을 두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악을 쓰는 희귀한 분들이 계시긴 합니다만,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픽 하고 코웃음을 칠 단계에 접어듭니다. 하지만 코웃음을 칠 수만은 없지요. 우리나라 경찰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운나쁜 외주 음악 감독이나 네티즌, 소리바다 운영자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가택 수색을 벌였을 때,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나 박노해의 ‘참된 시작’이 발견된다면 그는 이적표현물을 ‘소지 탐독’해 온 자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목적으로 공중파 방송에 적기가를 틀어 댄 이적표현물 배포 및 이적단체 고무 찬양 혐의로 얼마든지 엮일 수 있습니다. 전향한(?) 박노해의 ‘참된 시작’이 무슨 이적표현물이냐, 유신 시대 이야기로 거짓 선전하지 마라고 주장하실 분들에겐 죄송합니다만, 2002년 현역 군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증거로 제시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대통령이 송두율 교수에 대한 관용을 이야기하고, 법무부 장관이 국가보안법 필요없다고 하는 ‘빨갱이 세상’이라 이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것이라 비분강개하는 사람들이 있고,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정부-여당의 이념적 색깔로 도배질한 채 막무가내로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같은 KBS"(조선일보)를 두들기는 절호의 기회로 보는 언론들이 있는상황에서, 법의 집행자가 바뀌었을 때, 그 불운한 외주 음악 감독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관객 1000만명의 시대를 열었던 영화 ‘실미도’에서 사용돼 논란이 일었다......그런 적기가의 멜로디를 모르고 내보냈다니 말이 되는가?”(문화일보 사설)라는 살기어린 추궁을 받으며 ‘방송가에 암약하고 있는 좌경세력’의 일원으로 콩밥은 기본으로 먹을 일입니다. 그리고 ‘국보법 위반자’로서 대공 요시찰 인물로 등재되겠지요. 대개 법의 여신상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한 손에 저울, 그리고 한 손에 칼, 그리고 가려진 눈입니다. 저울은 형평성, 칼이 법 집행의 엄격성을 의미한다면 스스로 장님이 된 뜻은 법 집행에 있어 일체의 편견이나 주관적 해석을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즉, 사람을 판단할 때 판단자 개인의 편견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아니된다는 것, 즉 판단자의 제3자적 입장(객관성)을 강조하는 것이 법 정신이라는 것이지요. 어떤 법이 범죄 사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위반자, 더 정확히는 집행자의 머릿 속에 의해 결정되고, 위반자의 가슴 속을 알아낼 수 있다고 우기며, 그 법 집행자의 의도와 ‘시국’에 맞게 그 법에 대한 응징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되풀이하면서 사람들을 옭아매거나 목을 친다면, 이미 그 법은 법의 여신의 자식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법의 여신 아스트라이아가 전쟁의 신 아레스의 아들인 공포의 신 데이모스에게 강간당해 낳은 아들일 수는 있겠지요. 전쟁과 그 전쟁을 이용한 공포로 인해 만들어진 법이되 법 아닌 법이며, 법일 수 없는 법이되 법이라고 우겨지니 말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KGB 관련 유머에서 KGB 관리는 어떤 공장에 근무하는 세 사람 모두 ‘사상이 불순하다’는 의심을 품었고, 그 의심을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의심을 합리화시킵니다. 즉 KGB는 마음만 먹으면 그 관할 하의 모든 시민들을 범죄자로, 제국주의의 오열로, 반혁명분자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국가보안법처럼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국가보안법은 개줄에 묶여 힘없이 개집 앞에 앉아 있을지언정 (그래도 간혹 지나는 사람을 물긴 합니다만) 그 주인이 바뀌고 개줄이 풀리면 언제든지 애매한 사람을 물어뜯을 수 있는 맹견이며, 여러 번 사람을 물어 죽였던 살인견입니다. 그리고 그 개가 물어뜯을 상대를 정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그 주인의 ‘의도’일 뿐이지요. 이 개같지도 않은 개, 개만도 못한 개를 지난 복날이 끝나기 전에 해치우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마는 그 맹견을 애완견으로 굳이 길러야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아연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맹견의 살성(殺性)을 익히 보아 왔으면서도 굳이 도둑 들까 무서우니 좀 훈련시켜 (개정시켜) 보자는 분들도 딱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그 맹견이 잡았던 건 도둑보다는 자기 식구들이 훨씬 더 많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저 개는 누구든 개줄을 잡은 사람의 명을 따라 누구든 물어뜯을 터인데 말입니다. 2004-09-03 15: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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