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곳에 틀린 부분 수정했습니다. 내용이 아니라 문맥이니 큰 차이 없습니다.ㅋㅋ
가톨릭과 개신교... 개신교가 가톨릭에게서 갈라져 나온 관계로 많은 점에서 유사한 점이 있지만, 그 시작이 적대적인 반발에서 비롯되어 유사점 만큼 차이점도 있는 정말, 복잡 미묘한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ㅡㅡa
중세 가톨릭에게서 루터가 반발해 나올 시기에 이미 가톨릭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었습니다. 그것이 루터의 행위로 좀더 가속된것은 사실이고, 마르크스라는 걸출한 공산주의 학자의 자본주의에 대한 집요한 비판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끝없이 개선, 보완되며 발전해 온 것과 같이 가톨릭도 개선 보완되며 2000년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개신교 측은 조금 다른 역사를 지니게 되는군요.
우선 분파되어 나왔다는 점에서 '정통성'과 '역사', 그리고 개인적,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신학적 연구의 깊이 부재'라는 점에서 오는 일종의 컴플렉스들로 인해, 자신들의 장점을 돋보이기 보다는 다른 종교의 단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자신들의 우월함을 증명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플갱어'들이 서로 마주쳤을 때 자신과 유사한 존재를 죽여버림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불교나 이슬람에 대한 것보다, 개신교와 유사한 가톨릭에 대해서는 특히 공격적인 태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ㅡㅡ;
저 또한 외부인입니다. 내부인이 아니기에 이렇다 저렇다 확실히 정의내릴 입장은 아니지만, '확실히' 몇 몇 소수의 개신교 신자분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어이없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뭐, 독실한 신앙 생활 하시면서 개인적인 영혼의 구원이나, 사회적인 구원에 혼신을 다하시는 종교인들을 볼때면 이 시대의 '聖人'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엿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교계시판에 올라오는 몇분의 글들을 보면, 확실히 신학적 연구라기 보다는 개인이 지니고 있는 성경에대한 조금의 지식과 '증오'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적대감으로 사실이 아닌, '작위적'인 이론으로 가톨릭을 '비난'하는 성격의 글들이 대다수인 것 같습니다.(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끝이 없기 때문에 평소엔 별로 시작하는 일이 없었는데, 게시판에 이단이 어쩌구..이런 글로 도배되는게 열받아서 쓰는 글이니, 그분들 쬐~끔 열좀 받으시라고 쓰는 글입니다~. ㅋㅋ)
뭐, 애초에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단지 8글자의 단순하고 파시즘적인 '공포'와 '강요'로 유지되는 종교라면 그곳에서 주장하는 교리 역시 그다지 믿음은 가지 않지만,
( 개신교적 측면이 잘 드러나는 일례가 바로 '하나님'이란 단어입니다. '하나님'... 기존의 '하느님'이라는 우리나라의 단어가 있음에도 그놈의 자존심,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문법 조차도 자신들의 신앙이 기준이 되어 새로운 신조어- 국어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해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하나님'이란 단어의 구성 원리는 지금의 '새내기' 나 '얼짱'이라는 잘못된 신조어와 별반 차이 없습니다. ㅡㅡ; 를 만들어 냈습니다. 무슨 인터넷에 올리는 단어도 아니고... 거참..결국 '신앙'이라는 총칼로 세상의 다른 것은 다 무시해버리는... 중세 가톨릭적인 작명 센스입니다.ㅋㅋ)
과연 무슨 근거로 시작된 비난인가에 대해 조금 관심은 갖게 되었고,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직접 자료를 찾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개신교 측에서 가톨릭을 공격하는 주된 '레파토리'(라고 밖에 할 수 없군요. 교회 다니는 분들은 마치 앵무새와 같이 이 부분들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떠들며 '우리가 가톨릭보다 좋아~'라고 광고해 대니까요...ㅋㅋ)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조금 적어 보겠습니다. 참고들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전에...
지금의 개신교와 같이, 실질적 사회의 복음화는 차후로 하고, 오직 율법과 규칙을 '강요'하며 신앙활동을 통해 '나는 남들과 다르다'식의 우월함에 젖어 다른 신앙들을 강력히 비난했던 사람들은 지금 뿐만이 아니라 바로 그 '성경' 속에도 '율법학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해 왔음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래에...온갖 계시판에 '가톨릭은 이단이다~'라며 이런저런 유언비어 퍼뜨리며, 득의양양한 글을 올리시던 분들...
가톨릭이 이단이라면 개신교의 종교적 장점에 대해 드러내야지... 지금의 개신교 선교는 확실히! 골때린다고 밖에 할 수 없군요. t(-_-t) (개인적으로는 끊임없는 광고로 종교를 홈쑈핑 상품 쯤으로 '팔고'있는 개신교 보다는 꾸준히 사회참여활동을 하며 조용히 보여줌으로써 동참하게 하는 가톨릭의 모습이 더 보기 좋더군요. 음... 그래도 결국은... 산 속에서 무한히 자신의 내면으로 빠져들어 새로운 자아(成佛)로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불교가... 제일 끌리지만요...ㅋㅋ)
참고로 저보고 무슨 가톨릭 알바니 빠돌이니 뭐 이런 시덥잖은 말씀 하실 분들은... 즐~입니다.ㅋㅋ 이름이 '성경'이지만, '誠'자 돌림이라 '그냥' 지은 이름입니다..ㅋㅋ
워낙 개신교 분들이 가톨릭을 '까대서' 답글 식으로 가톨릭에 대해 올립니다.
뭐하시면 '불교' 나 '이슬람' 쪽 설명으로 해드릴 수 있습니다.(헉! 너 개강했잖아!? ...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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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놈을 죽여야 내가 뜬다!'
개신교의 가톨릭 까대기 주요 레파토리 입니다.
1. 성서
2. 성모 공경
3. 성화와 성상
4. 구원
뭐...몇가지 더 있지만... 귀차니즘으로 패스..ㅋㅋ 일단 여기에 올라왔던 글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개신교에서도 교리시간에 주로 여기까지만 가르치는 것 같더군요...ㅋㅋ
1. 성서
개신교 측의 가장 큰 착각은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종교인들에게도 오직 자신들만의 이론으로 설득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성경(가톨릭 측 자료에 '성서'라고 나오니...앞으로 '성서'라고 적겠습니다.^^; 왠지, '구교'가 정통파...로 보여서...ㅋㅋ)에 대한 관점의 차이입니다.
1) 성서의 권 수
우선, 가톨릭의 성서는 구약 46권, 신약 27권으로 모두 73권을 성서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개신교는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모두 66권만을 성서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는 '오직 성서'(sola scriptura)라는 루터의 말을 따라 성서만을 모든 계시의 원천으로 인정하지만, 가톨릭은 '성전'(traditio-성서 밖에서 이어져오는 거룩한 전통들) 또한 계시의 한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내용상의 차이가 아닌 '성서의 어느 부분까지 경전으로 인정하느냐' 에 대한 관점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쓰고 있는 성서는 지금과 같이 한권의 책이 아니었고, 382년 교황 다마소1세의 명에 의해 정리된 'Vulgata'성서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이 책 이후로 한권의 책에 모든 내용이 담기게 됩니다. 이 중 가톨릭 측에서 '제2경전'이라고 부르고 있는 7권은 그 내용이 신비성이 강하고, 이후의 연구에 의해 작자가 사도들이 아님이 밝혀짐으로써 성서의 해독에 신중을 기해야 할 어려움을 담고 있었습니다. 결국 오랜 주저와 토론을 통해 '불가타' 성서 이후 계속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성전'을 인정하는 가톨릭 측에서는 이들을 포함한 총 73권의 성서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신교 측에서는 이것들이 모두 '예언의 영이 떠난 시기에 저술되었고, 전설과 우화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역사적 신빙성이 부족하며, 지리학적, 역사적, 연대적 오류가 발견되며, 다른 경전들에 위배되는 내용들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외경'(外經)이라 부르며 제외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뭐 외부인이 보기에는...어차피 기존의 '정경'들도 정말 사도들이 썼는지 알 수도 없는 일이고...ㅡㅡ; 뭐, 이해 안돼는 일이죠..ㅋㅋ
2) 성서 읽기 및 해석
루터는 성서에 대한 가톨릭의 엄격한 제한에 대해 불만을 느꼈습니다. 당시의 성서는 오직 라틴어로 쓰여있었고, 독일이나 여타 국가들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은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라틴어는 요즘의 '영어'와 같은 언어였습니다. 라틴어라는 것이 특별히 제한된 언어가 아니었단 이야기이며, 개신교 측에서 주장하는 신자들과 성서를 괴리시키는 가톨릭의 부패한 모습이라는 비난은...그다지...ㅋㅋ
그렇기에 성서는 주로 가톨릭 내부의 신학자들에 의해 읽혀지고 해석되었으며, 신자들은 그것을 전달받는 입장에 놓여있었습니다. 하지만 급진적 성격의 루터는 이러한 당시 가톨릭의 방식에 찬성할 수 없었습니다.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모든 진리는 오직 성서에 담겨있고, 그것은 각자가 성령을 받아 해석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성서가 그리스도인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성서는 독일어로 번역이 시작되었고, 신자들이 좀더 편하게 성서와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가톨릭 또한 성서를 라틴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큰 발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루터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성서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난무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셀 수도 없이 무수히 많은 개신교의 종파라 할 수 있겠죠.(앞에서는 친척이라도 되는 양 친한 척 하다가도, 없는 자리에서는 서로들 거북해 한다는...ㅡㅡ;)
가톨릭의 경우 성서와 성전을 함께 중시해 왔지만, 가톨릭 역시 성전보다 성서의 가치를 더욱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부터 이어져온, 개인이 혼자 읽는 것 보다는 미사 등의 교회활동 참여 중에 접하는 성서와 해석에 익숙해져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읽는 경우가 적어서 계속적으로 가톨릭 교회측에서도 성서를 읽을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사는 성서 속 말씀을 나눔과 성서 속, 예수와 사도들의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여 그 의미를 이어감에 핵심이 있고, 미사에 4년간 꾸준히 참석하게 되면 성서를 한번 완독하게 되는 것임을 통해 가톨릭이 성서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 대해 기본적 이해도 채 이루어지지 않은 외부인이 보기에는 '가톨릭은 성서를 안본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가톨릭은 성서를 옛날 이야기나 동화 쯤으로 여긴다...'는 어느 열성 개신교 신자분의 '가톨릭 소개'글은... 정말 본심으로 쓰신 글이라면...
풉~ ^^;
웃음과 한숨이 같이 나오지만, 이 정도는 基督敎(중국어 '기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친, '그리스도교'를 의미합니다.)를 믿는 분들이라면 누구라도 웃어넘길 만큼 무지한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2. 성모 공경
성서 지상주의자 루터는 '신.구약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동시에 인간에게 나타난 진리의 궁극적인 규범이고,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기에 개신교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성전)을 거부하면서 성서에 '성모 공경'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음을 근거로 가톨릭 교회를 '마리아 교'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가톨릭에 대한 긍정적 이해에 앞서 끊임없이 주입된 가톨릭에 대한 적대감에 근거한 오해라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에 대해 '그리스도의 어머니'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의 이해가 시작됩니다.
개신교 측에서도 '성지'의 개념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스라엘 등의 성지에 교회를 짓고 순례를 하는 일은 개신교 측에서도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나자렛을 성지로 정한 것은 바로 그곳이 예수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고, 골고타 언덕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참회의 기도를 드리는 이유도 그곳이 예수가 죽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수가 매달려 죽은 '십자가'를 그들의 신앙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정작 그들이 그렇게 중시하는 성서에는 '십자가'를 신앙의 상징으로 삼으라는 말씀은 없었는데, 초기 교회의 신자들이 예수의 죽음이후 십자가를 '물고기'와 같은 상징으로 삼던, 가톨릭 '성전'(traditio)을 따른다는 것은 아이러니 하군요...ㅋㅋ)
하물며, 예수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남'으로써 완벽한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 신의 아들이 인간이 되었다는 무한히 파격적인 예언이 실현된 의미의 중대함을 알기에 그 여인, 마리아에 대해 특별함을 부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전에 소수의 선지자들이 직접 신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마리아의 경우, 예수(신)를 자신의 몸 안에 잉태함으로써 '인류 구원'의 시작을 알렸고, 인간과 신이 살과 피로 이어졌다는 놀라운 체험은 이전, 이후로도 없었습니다.
결국 마리아에 대한 공경은 예수와 관련된 성지에 대한 공경이 극대화 된 경우라 봐도 무방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묵주의 기도나 '성모송'을 두고, '저것이 마리아 교라는 결정적 증거다!'라는 개신교 분들... 답답합니다.
개신교 교회의 신자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목사나 전도사를 찾아갑니다. 그리곤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 합니다.
'이런 이런 일이 있으니 기도 좀 많이 해 주세요~'
이걸 보고 누가 우상 숭배라고 욕 합니까? 목사가 무당도 아닌데 왜 고민을 이야기해서 기도로 해결하려 하냐며 욕하는 분 있습니까? 그것은 분명 그분의 신앙(하느님과의 친밀함)을 인정하고 함께 기도하길 부탁한 것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위의 의식들도 같은 의미 입니다. 개신교 신자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성서에도 마리아가 부탁하자 예수가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보입니다. 그만큼 마리아의 간청이 남다른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그리고 가톨릭에서는 지금도 마리아가 예수와 함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자신들의 바램을 예수에게 함께 부탁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묵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읊는 것입니다. 절대 마리아, 한 여성이 '신'이 된 것은 아님을 명심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3. 성화와 성상
개신교 신학자들은
'마리아이든 각종 여러 가지 성인이든 그들이 살아 있을 때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들이 죽은 다음에 숭배의 대상이 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거나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는 것은 분명히 십계명, 제 1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고유의 무속 신앙에서 그 유사성을 찾아 볼 수 있는데, 무당들이 점을 치거나 푸닥거리를 할 때 흔히 '관우장군' 이나 '최영장군' 등의 신을 들먹거리고, 가족 중의 죽은 사람들의 혼을 들먹거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천주교도 기독교인가? p.280/유선호 著/숭문출판사)
고 주장합니다. 즉... 마리아, 사도들...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성인들을 성상으로 만들어 교회에 모신 것을 '우상숭배'라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상에 대해서도 같은 의견입니다. '성인'과 '성화'...'성상'...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아봅시다.
1)성인
개신교에서는 성인 공경을 두고, 사람을 하느님과 예수와 동급의 신으로 숭배한다며 공격합니다. 하지만, 각 시대, 각 문화, 각 종교가 제시하는 이상적 인간상을 우리는 '성자'라 합니다. 가톨릭의 '성인'도 이러한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내용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12사도들, 신, 구약을 통해 나타난 신앙적 인물들, 그리고 성서 시대 이후에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고자 일생을 바쳐 노력한 훌륭한 이들을 가톨릭에서는 '성인'이라 부릅니다.
'성인'은 거룩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그 거룩함의 원천과 본질이 '하느님'이라는 점에서 일반적 '성자'와는 근원적 구분이 됩니다. 그들은 신앙에서 비롯된 덕을 실천하고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영웅적이리만큼 충실하게 또한 기꺼운 마음으로 훌륭히 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성인이 된 것이며, 이들을 공경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공경 자체가 아닌, 그것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영광을 드리기 위함인 것입니다.
구해놓은 자료는 많은데 전문 용어도 많고 이해 안돼는 개념이 많아 대충 넘어가겠습니다. ^^;
2)왜 성인에게 기도하는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만일 타인을 위해 바친 기도가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천상 성인들의 애덕이 완전하면 완전할수록 기도로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상의 신자들을 위하여 그들이 더 많이 기도 할 것임을 확신하며, 그들이 하느님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의 간구는 더욱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에서 어째서 가톨릭은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기도하는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차원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죽은 자와 산 자는 서로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공을 초월한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같은 자녀(1요한 3,1)일 뿐이고,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1고린 12,12-13)입니다. 즉 성인들과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거나 유명을 달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앞서 마리아를 설명함에 있어 예로 든... 목사의 기도(?)를 통해 왜 성인들에게 기도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의 성인 공경은 성인 자체가 아닌 성인을 통하여 하느님을 체험하고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길입니다. 공자의 '仁'을 체득하기 위해선 공자 뿐만 아니라 공자의 제자들과 맹자 등 이들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더 쉽게 다가가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하물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성인'을 공경하며 본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성인'의 상을 보며, 그 성인을 떠올리고, 그들의 뜨거운 신앙을 느껴 이어받고, 그 성인에게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것이 가톨릭 교회의 성인상에 대해 기도를 하는 의미입니다.
3)'성화'와 '성상'
'聖畵'나 聖像'은 교회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예식적 객체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만찬' 성화를 접하고, '피에타' 성상을 접하며 신앙적 감흥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성화와 성상은 하나의 신앙적 예술로 또한 교회 안에서의 신앙적 전통으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증거로 그리스도 교회는 카타콤바 시기부터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사도들, 그리고 순교자들의 얼굴, 또는 성서 속의 상징물이나 사물 등으로 지하 교회 내부를 장식해 왔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4)개신교의 비난
성서에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우상을 모시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는 구절은 개신교에서 모든 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가톨릭에서는 이 구절을 '어떤 상의 신격화를 금하는 계명'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상을 만드는 행위'자체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그 상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계명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하지만, 개신교의 이러한 주장은 모순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 여러 곳에 이를 금지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제작을 명하였으니 절대 금지란 말은 아닌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순금으로 거룹 상을 둘 만들라고 하셨고(출애 25,18) 모세에게는 구리 뱀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매달아 두면 뱀에 물린 자라도 그것을 보면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민수 21,8)
여기서 '거룹'은 하늘의 천사이며, 뱀은 땅에 사는 동물로(물뱀은 물에 살죠...ㅋㅋ) 이 금상과 동상은 하늘의 천사와 땅과 물에 사는 뱀을 만든 것이므로 개신교의 절대적 상의 제작 금지라는 해석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성서 구절입니다. 즉... 만약에 개신교의 해석이 맞다면, 자신들 스스로가 첫째 계명을 어긴 죄인이 될 것입니다.
개신교는 가톨릭을 우상 숭배자라는 선입견을 신자들에게 꾸준히 주입하고 있나봅니다.
성당 안이나, 길에서 성상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사진까지 찍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며 '과연 가톨릭 신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며 선전합니다. 하지만 우선 이런 착각을 하기 전에 과연 그들이 어떤 정신으로 기도를 하는가에 대해선 왜 궁금해 하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5)십자가 상에 대한 경배
'오베데돔의 집에 하느님의 궤를 모셔 두었기 때문에...다윗왕은 너무나도 기뻐 하느님의 궤를 오베데돔의 집에서 자기 도성으로 모시고 올라왔다...다윗은 살진 황소를 잡아 바쳤다'(2사무 6,12-13)
'솔로몬 왕은 자기에게 모여 온 이스라엘 회중을 이끌고, 궤 앞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과 소를 제물로 잡아 바쳤다.'(2역대 5,6)
이 두 명을 성서 속에서 너무나도 뻔뻔하게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솔로몬과 다윗이 그 물체가 표상하는 하느님께 경배하지 않고 그 특정 물체에 경배, 즉 우상 숭배를 하였다고 단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예수의 성상 앞에서, 십자가 상 앞에서 기도와 경배 행위를 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우상숭배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어이 없을 따름입니다.
6)성상과 성화가 주는 이로움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성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힙니다.
'그리스도의 성상과 그 동정 성모와 성인들의 성상을 모시며, 특히 성당 내에 모시는 것이 옳다. 또 모든 성상에 경의를 표하여야 한다. 이는 성상 '자체'에 무슨 신성이나 권능이 있어서가 아니며, 또 성물 자체에 무슨 기도를 드리려 해서가 아니다-중략-다만 성상이 상징하는 대상에게 존경의 뜻을 표시할 뿐이다. 즉 우리가 성상에 입맞추거나 그 앞에서 모자를 벗거나 무릎을 꿇는 것은 그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숭배하고, 성모와 여러 성인들을 공경하는 것이다.'
가톨릭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우상숭배와 성상을 모시는 것의 기본적 차이조차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개념조차 없는 이들이 보았을 때 그것이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개신교 측은 '야스퍼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상징주의란 끊임없이 미신이나, 비유, 유미주의나 교조주의 마술로 전락된다.'
미신과 미술이 성상숭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인간이 원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상징을 조작할 때 마술이 생기고 상징은 타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올바른 신앙을 지닌 가톨릭 신자들 중 어느 한명도, 성상에 기도를 함에 있어서, '성상이여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木石이여 당신께 기도하나이다~'라고 기도하는 자는 없을 것이며,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미친자가 아니고서야....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
성상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느끼게 되는 사람의 내적 심상은, 하나의 표지로서 '하느님',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 느끼게 되는 내적 심상과 동일한 것입니다.
4.구원
개신교가 가톨릭에게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신학적 연구의 기간 및 깊이, 그리고 내적 충실함에 있어 상대적인 콤플렉스를 지닐 수밖에 없는 관계이지만,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느끼는 한 가지 우월함은 바로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가끔 신, 구교의 신자들이 모인 곳이 있으면 개신교의 신자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 중에 구원을 확신하시는 분 계십니까?!'
이때 손드는 사람들은 거의 다 개신교 신자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거만한 표정으로 '아니 그렇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까?'라며 거들먹댑니다. 사실...그런 질문을 하고 자신 있게 손드는 것 자체가 가증스럽지만, 이 또한 구원에 대한 신앙적 기준의 차이를 이용한 말장난일 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개신교의 구원이론은 딱 여덟 글자로 정리하면 '예수천당, 불신지옥'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교회에 나가고 예수를 믿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구원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 마치 자신들이 착해진 듯, 구원 받았다는 듯이 믿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하며, 신앙에 그릇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이 개신교 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써의 책임을 다 했을 때 따르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위에서 예로든 질문은... 말 그대로 상대방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어리석은 질문인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개신교의 사상은 가장 기본적인 반문을 들게 합니다.
'그럼 예수를 모르고 살다 죽은 사람들, '간디'나 '공자'는 싹 다 지옥 갔다는 거냐?!'
가톨릭 쪽에서는 구원과 그리스도 신앙에 대해 구별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가장 훌륭한 길이라 권합니다. 하지만, 그 개인이나 사회가 하느님을 알 수 없는 상황이며, 접할 수 없는 처지였다면, 그들의 삶 속에서 얼마나 충실히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회 밖의 구원'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흑... 더이상 귀찮아서 쓰기 싫습니다.ㅋㅋ
개신교 신자분들... 가톨릭에 대해서 신학적 지식 대결로 이겨보는 것을 무슨 여흥 쯤으로 생각하십니까? 워낙 개신교 신자분들이 이곳 저곳 쑤셔대며 이단이 어떻구 저렇구 올려논 글이 많은데 가톨릭 신자분들은 반론글 같은걸 별로 안다시는 것 같아서 제가 홧김에 올려봅니다~
아우~ 제발 점 개신교 신자분덜... 정신좀 차리세요. 원하는게 뭡니까? 다른 종교는 지구상에서 싹 쓸어버릴 또 한번의 '십자군 전쟁'과 '마녀 사냥'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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