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토종물고기들의 씨를 말리는 베스와 블루길이라는 외래물고기가 있지요.
언제인가 친구놈하고 충주호로 낚시를 하러 갔는데
물라는 붕어는 안오고 때로 몰려다니는 블루길들의 간사한 입질만 이어져서
낚시광인 친구놈은 연신 불평을 하더군요.
"아.. 어떤 XX넘이 이런 물고기를 들여왔을까? 정말 욕나오네..."
그 넘이 평소에 박정희를 영웅처럼 떠받드는 넘이라는 걸 아는 나는
놀려줄 겸해서 한마디 던졌지요.
"블루길? 그거 육영수여사가 들여온거야. 베스랑 향어도 마찬가지이고. 몰랐어?"
그놈 표정이 참 가관이더군요. ㅎㅎㅎ.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언젠가 육영수여사가 박정희대통령을 따라 미국을 방문할 때였습니다.
저녁만찬때 육여사는 참 맛있는 물고기요리를 대접받았고
그 요리가 맛이 있었던지 근처에 있던 비서관에게 물었답니다.
"이 물고기 이름이 뭔가요?"
"그 물고기는 베스라고 미국의 민물에서 사는 물고기입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나라 강이나 저수지에서도 잘 살겠네요?"
"기후가 비슷하니 아마 그럴겁니다."
"그럼 이 물고기를 우리나라 강에 풀어 키우면 우리 국민들도 맛있는 생선요리를 맘껏 먹을 수 있겠네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 후에 대충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하시겠죠?
귀국하는 길에 육여사는 박대통령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박대통령은 즉시 수산관계자들을 불러 베스는 물론 우리나라 하천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요리용 물고기들을 선정해 들여오라 지시했답니다.
누구의 명인데 이의를 달고 머뭇거리고 거스를까요?
전광석화처럼 베스,불루길,향어등이 즉시 하천과 댐등에 이식되었지요.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요?
육영수여사의 애초 의도대로 그 물고기들 잡아서 포식들 하시고 계십니까?
그러기는 커녕 도리어 그것들이 우리나라 토종생태계를 전멸시키고
환경단체들의 골칫거리가 되어 매년 엄청난 퇴치비용만 낭비하고 있지요?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육영수여사와 박정희대통령은 보다 더 좋은 것을 국민에게 먹이고 싶어하는,
그야말로 선한 지도자의 마음으로 그것을 결정했고
지도자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충성스런 공무원들이 벌인 일이
왜 그런 결과가 나와서 결국 후손들에게 나쁜 부담을 남겨주어야 했을까요?
바로 여기에 소위 박정희식 리더십의 한계와 문제점이 상징적으로 드러납니다.
비록 대통령의 지시라하여도 그것을 실행하는데 부작용과 문제점은 없나
검토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박대통령이 지시하는데 누군가 만약 그 물고기들이 들어오면 우리나라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으니 좀더 신중해야 한다고 건의했다면 아마 그 사람은 날벼락을 맞는 봉변을 당했을게 뻔합니다.)
자 그러면, 이런 시행착오가 없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1. 아주 능력이 뛰어나 그런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통달한 사람이 지도자를 해야 한다.
2. 정책을 실행하기전에 해당 기관의 조언과 검토를 경청하는 열린 마인드의 사람이 지도자를 해야 한다.
정답은 뻔한 것입니다. (1번을 고른다면 대략 낭패)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박대통령의 지방순시때 기차를 타고 동행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적어놓은 것인데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어느 역인가 지나가는데 가로수의 가지치기 방법이
맘에 안들었던지 잠시 가로수 모양이 저게 뭐야 하며
인상을 찌푸리던 박대통령이 비서에게 이렇게 지시하더랍니다.
"저 가로수 가지치기한 책임자가 누군지 당장 알아봐!"
불쌍한 그 가로수 관리 책임자는 대통령의 취향을 몰랐던 죄로 아마 묵사발 났겠지요.
유신은 그런 시대였습니다.
모든 공무원들이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기보다는 대통령이 어떻게 지시했는지를
연구하던 시대였지요. 일국의 대통령이 지방 역의 가로수 가지치기까지
이래라 저래라 참견했으니 안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에서 당 간부들이 말끝마다 "위대한 수령님 장군님이 이렇게 지시하셨다 어쩌구"
하면서 일한다고 한다던데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박정희식 리더십은 후진국의 산업화와 경제개발에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하더군요. 강력한 카리스마와 뒤돌아보지 않는 추진력...
그러나 당시보다 수백배는 더 덩치가 커지고 복잡해진 대한민국에 그런 리더십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요?
박정희 향수에 젖어서 사시는 건 좋은데
부디 그런 리더십을 현실에 부활시키려 애쓰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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