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國寶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제법 된대요?
경향신문에서 퍼왔는데, 꽤 잘 쓴 글 같대요.
너의 문화유산 답사기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평가할 만한 발언이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개혁을 위해 다수의석을 달라”고 호소했고, 시민들은 그 호소에 응답하여 다수의석을 주었다. 조선일보마저 국보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민주개혁”이란 당연히 이 악법의 완전한 폐지를 의미해야 할 것이다.
최근 사법부에서 이 문제에 관해 보수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헌법재판소는 “고무찬양죄”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은 입법부를 향해 국보법을 존치하라는 주제넘은 요구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보법을 “박물관”으로 보내겠다고 한 것은 최근 헌재와 대법원이 내린 보수적 판결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적어도 국가보안법에 관한 한, 사법부는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밝힐 주제가 못 된다. 그 동안 그 법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수많은 인권유린의 주범이 바로 사법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법부는 일단 그 법을 휘둘러 자신들이 시민에게 가했던 폭력에 대해 사죄와 반성부터 해야 한다. 사법부에서 국방에 관심을 갖는 게 후진국 현상이다. 사법부에서 안보의 사명을 지고 나서면,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누가 한단 말인가? 국방부에 맡길까?
반공의 가을 국보법은 “유물”이 될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벌써부터 보수언론의 문화유산답사가 시작되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 대통령의 발언은 “결국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야만국가라는 말과 한 가지”라고 썼다. 이번엔 정확하게 요약했다. 바로 그 얘기다. 그리고 그게 대통령만이 아니라 국제연합과 국제인권단체의 주장이기도 하다.
“정말 국보법이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이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 왔다고 주장하려면 그 통계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런 자료는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히 제시되어 있으니, 좀 찾아서 읽도록 해라. 명색이 언론사라면서 이런 거 취재하는 것까지 대통령에게 맡겨서야 쓰겠는가?
“대통령이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법 없이도 대한민국이 북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조선일보도 맛이 많이 갔나 보다. 국보법이 있다고 어디 북이 대한민국을 위협하지 않는단 말인가? 국보법이 있으나 없으나 북은 늘 대한민국을 위협한다고 주장해야 조선일보답지 않은가. 그 뜨거운 반공의 여름도 다 지난 모양이다.
언론자유 연동제중앙일보는 “대통령이 보안법 혼선 부채질”한다고 썼다. 사실, 혼선을 일으키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다. 대통령은 보수적인 사법부의 정치적 판결로 비롯된 혼선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중이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보안법 개정과 폐지 사이에서 혼선을 보이던 열린우리당의 입장이 분명해 질 것이고, 아울러 국회 내에서 폐지론자들의 세력도 공고해질 것이다.
“보안법이 역대 정권에 의해 악용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를 보위하는 순기능을 해왔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보안법이 무슨 순기능을 해왔는지 모르겠지만, 악기능과 순기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많았을까? 악기능이 더 많았다는 것은 아마 자기들도 인정할 것이다. 어떤 물건이든지, 순기능보다 악기능이 더 많으면 안 쓰고 버리는 게 상식이다.
“아직 북한은 남측을 해방하겠다는 노동당 규약을 손댈 생각도 않고 있다.” 이것처럼 멍청한 논리도 없다. 그러는 남한은 헌법에 북한을 수복해야 할 땅으로 규정해 놓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남한 시민들이 누리는 인권의 수준을 굳이 북한 인민의 인권 수준에 연동시켜야겠는가? 그렇다면 보수언론들께서 지금 누리고 계신 자유도 북한의 언론자유 수준에 준해 조정해야 할 것이다.
계속되는 사상무장동아일보도 비슷한 논리를 편다. 북이 노동당 규약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일방적 무장해제에 해당하는 국가보안법의 완전한 폐지는 위험하다”는 재판부의 견해에 동의를 표하고 있다. 문제는 동아일보가 동의를 표하는 그 대법원의 인식이 얼마나 현실적이냐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 판결을 읽고 박장대소를 했다. 주사파들이 통일전선을 결성해 폭력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피해망상, 입원가료를 요하는 수준이다.
동아일보 사설은 대법원이 판결의 취지를 입법과정에 반영하라고 주문한 것을 변호한다. “법관이 판결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적용 법률에 대해 의견 개진을 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다만 그 동안 무고한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낸 수많은 판결이 있었지만, 어디 “적용법률에 대해 의견 개진”을 한 판사가 하나라도 있었던가? 그래서 저 왕성한 욕구가 난데없이 느껴지는 것이다.
너의 문화유산“헌법 지켜야 할 대통령이 법리 안 지키다니…”. 조선일보 기사의 제목이다. 과연 남다르다. 대통령이 “너무 법리에 구애받지 말고…”라고 했더니,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대통령은 졸지에 법을 무시하는 무법자가 된다. 보수언론에서 갑자기 “법리”를 좋아하기로 결심했으니 이 참에 법리를 한번 따져 보자.
위헌판결이 난 법률은 반드시 없애(거나 고쳐)야 한다. 반면 합헌판결이 난 판결을 반드시 존치하라는 법은 없다. 따라서 헌재가 ‘찬양-고무죄’가 합헌이라 판결해도, 입법부에서 반드시 그 판단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아울러 국가보안법이 존치되었으면 하는 대법원의 염원이 절실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입법부가 그 소원을 들어줘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어떻게 될까? 정말 저들의 주장대로 폭력혁명의 위험이 현실화될까? 아니면 그 법이 없어도 국가의 안보와 사회의 안정에 별 문제가 없을까? 만약에 집 한 채 걸고 내기를 한다면, 보수언론에 사설 쓰는 분들도 아마 전자에 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은 이제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라. 그거 보고 싶은 사람은 박물관으로 “너의 문화유산 답사”를 떠나면 될 일이다.
진중권 / 문화비평가
입력: 2004년 09월 06일 15:01:12 / 최종 편집: 2004년 09월 06일 15: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