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판에서 국보법폐지를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실소를 머금는 것은
마치 국보법이 자신의 삶과는 전혀 상관 없는,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줄 착각할 때입니다.
심지어 그분들은 "선량하게 사는 사람은 국보법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 법은 일부 불순분자들의
망동을 막기 위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법을 없애서 도리어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과연 누가 보상할 것인가?" 라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과연 그럴까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그 분께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직장에서 당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분노하지 마시기 바라며,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같은 것은 행여 머릿속에라도 떠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재수 없으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당신의 사상을 의심 받게 됩니다.)
혹시라도 집안에 내용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책들, 심지어 태백산맥같은 것이 있거들랑 치우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사상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게 됩니다.)
혹시라도 조카뻘되는 대학생이 집에 놀러와 이상한 소리를 하거들랑 의심의 눈초리를 번득이시고
여차하면 경찰에 신고하셔야 합니다.
(어느날 곤히 자다가 한밤중에 불고지죄로 끌려 갈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당신이 아주 어이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이 놈의 나라는 북한보다 더 해!"같은 소리는
술김에라도, 특히 경찰이 듣는 장소에서는 절대 하셔서는 안됩니다.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죄가 가차없이 적용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급하게 돈 좀 빌려달라고 해도 매몰차게 거절하셔야 합니다.
(아주 재수없는 경우 당신은 "편의제공"을 한 공범이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낯선 노래나 글, 사진등을 접할 때 그것이 "북한"과 관련있는 것이 아닌가
돌다리도 두들기듯 의심하며 확인 또 확인 하셔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당신은 "이적표현물" 소지,탐독으로 잡혀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선량(?)하게 평생을 산다면 당신은 아마 안전할 지도 모릅니다.
국보법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선량하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니까요.
그러나 이렇게 산다고 하여도 절대 안전은 보장 못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철저하게 방어운전을 하더라도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음주운전차에는 대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지요.
얼마전, KBS 다큐를 외주제작하던 회사의 "무식한" 젊은 음악감독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유인즉슨 프로그램에 북한의 "적기가"의 멜로디를 삽입했다는 이유이지요.
그 음악감독은 소리바다에서 "군가"로 검색해 나온 노래중에
"실미도 OST"라는 음악을 다운 받았고 그 멜로디를 따서 음악으로 썼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그는 물론 "모르고" 그랬다고 진술했고 "북한의 체제를 어찌 생각하느냐"
"김정일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통일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등의 사상검증에
자신의 머릿속을 열어 보여주는 노력을 열심히 했기에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나서서
정부와 kbs를 친북좌경으로 매도하는 난리법석이 있었지만
여하튼 그는 구사일생으로 국보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법의 집행자가 지금의 노무현정부가 아닌 이회창정부였다해도 그가 무사했을까요?
만약 그의 집을 수사관들이 가택 수색했을 때
학창시절 호기심에 읽어 본 박노해의 시집이나 심지어 태백산맥같은 소설책이 있었다면,
더욱 재수가 없어 친척동생이 놀러왔다 두고 간 "맑스"관련 서적을 미처 돌려주지 못하고 있었다면.
더더욱 재수가 없어 직계나 친족중에 북한과 관련된 사람이나 과거 운동권하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렇게 재판에 회부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방치했었다면,
그는 절대 무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북한의 "적기가"가 뭔지 미리 공부(?)하지 않고 무식했다는 죄 하나 때문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빨갱이의 낙인이 찍히게 되고 마는 운명를 결코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저 다수의 안보를 위해 희생된 극소수(?)의 어쩔 수 없는 피해자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경력으로 나중에 그는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만은 국보법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주장하신다면
그것은 당신이 절대 선량해서가 아니라 지금이 멍충이같은
노무현정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번에도 국보법이 멀쩡히 살아남아서
그 법의 올바른(?) 집행과 역할을 갈망하는 한나라당이 집권하였을 때에도
당신과 당신의 가족, 친구들이 국보법의 그물과 같은 마수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약삭빠르니 걱정하지 말라구요? 다행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쩌죠? 저는 그저 선량할 뿐 약삭빠르지 못한데 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한나라당의 정아무개같은 사람이 국정원장이 되면
저는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 같다는 두려운 생각이 드네요.
벌써 제가 이곳 비팍게시판에 별별 소리를 다 써놓았는데,
나중에 그것이 증거가 되어 저를 곤란하게 만들 것 같거든요.
하긴 이곳의 어떤 분은 아예 저를 김정일의 하수인쯤 되는 사람으로 여기더이다.
(노무현은 김정일의 지령을 받는 빨갱이, 때문에 노빠스러운 너 역시 빨갱이^^)
부디 그분이 정권 바뀌기만을 벼르고 있는 국정원 요원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래야죠.
혹시라도 그 분이 나중에 저를 기억해내고서 괘씸해하면 정말 큰일이잖아요?
아무래도 그분의 비위를 조금 맞추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국가보안법으로부터 안전하려면 뭐 별 수 있나요?
오늘 생각난김에 제 집 책꽂이에 "국보법"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만한 책이 있나
다시 한번 꼼꼼이 살펴봐야겠습니다.
요즘 들어 친해진 어떤 사람이 있는데 혹시라도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아닌지
지나가는 말처럼 이것 저것 캐물어 봐야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선량하게 살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안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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