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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선교사 알렌 (펌)

 
알렌 - 장로교 전파  1884년


미국의 조선에 대한 이권 개입의 첨병은 의료 선교사로 파견된 알렌 이었다 

알렌은1884년 9월 조선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였다 . 그는 박해를 피해 처음에는 선교사란 신분을 속이고, 미국 공사관 소속의 의사로 입국했다 . 알렌은 그해 12월 일어난 갑신정변 때 개화파의 거두  민영익을 완치시켜준 공로로, 일약 왕실 의사 겸 정치 고문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알렌은 선교사라는 신분에 걸 맞지 않게 경제적 이해득실에 밝은 자 였다 . 그는 고종의 신임을 얻은데 이어 이완용 등 조선 정부의 실력자의 도움을 받아 , 막대한 경제적 이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경인 철도 부설권을 따낼 수 있었다 .

알렌 자신의 친구이자 무역 브로커인 모오스에게 부설권을 넘겨 주면서 거액의 커미션을 챙겼다

그는 이어 당시 서구 각국이 눈독을 들이던 운산 금광 채굴권을 이완용 명성황후 등에게서 로비하여 따냈다. 신미양요 때부터 미국이 조선에 진출하려 했던 주요한 이유는 바로 풍부한 금을 캐기 위해서였다 .

알렌은 채굴권을 커미션을 받고 모오스에게 넘겼고 , 모오스는 미국인 사업가 헌트에게 3만달러에 팔았다 . 헌트는 고종이 가지고 있던 금광 이익의 25% 마저 10만 달러에 사들인 뒤 금광 개발에 손을 대, 40여 년간 1,5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벌어들였다 . 지금의 달러 가치로 보면 2억 5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돈이다 .


 대한제국이 돈을 들여 만든 광혜원,자혜원 등의 학교와 병원에서 단지 고문을 맡은 알렌은 이후 그가 가르친목사들에 의해 오히려 천사표 선교사로 묘사되어지고 광혜원등의 병원을 알렌이 만듯것 처럼 포장되어진다. 한국의 토지,금,등을 수탈해가고도 오히려 위인이 된 알렌의 제자 목사들은 이후 1936년 장로회 총회에서 하나님을 받들듯이 천황을 모시자고 결의하며 부일했건만 해방이후 오히려 기득권층이 되어 자신들의 부일행적은 언급안하구 오히려 존경까지 받구 있다.




written by 마왕 (cpole)
2004-09-18 03: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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