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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종(2)

 



4. 목사의 의식구조


목사란 매우 어려운 직업이다. 복음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따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니 우리는 이들을 존경하여 마지않는다. 그러니 목사에게는 일반인의 윤리적 기준보다 차원이 높은 윤리적 기준이 더 요구된다는 점은, 일반인은 물론 목사 자신도 모두 이의가 없을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목사에 대한 존경은 목사 스스로가 약속한 십자가의 길을 오롯이 걸을 때 합당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들이 과연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지, 교인들에게는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서 자신은 교인들이 진 십자가에 걸터앉지는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목사는 교회의 지도자이다. 그러므로 목사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어떻게 목회를 하는가에 따라 평신도의 신앙생활은 물론 교회의 진실성마저도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의 의식구조를 몇 가지 면에서 검토해 본다.


1). 목사의 직업윤리


[퍼온글]


[ S교회의 담임목사였던 A목사는 80년대 초에 C장로에게서 $100,000를 무이자로 빌어 집을 샀다. 그 집의 은행 융자금은 주택수당으로 교회가 지급했다. 곧 그 집이 A목사의 재산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일에 죄의식을 갖는 목사는 몇 명이나 있을까 싶다. ]


오히려 목사에 대한 이와 같은 "대접"은 일반적으로 목사들에 의해 "하나님의 종에 대한 극진한 대접"으로 칭찬받을 사례로 불리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만약 학교 교사가 학부형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어 집을 사거나 투자를 한다면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수년 전 자민련의 이건개 의원은 정덕진 씨에게서 무이자로 수억을 빌어 쓴 것이 뇌물로 인정되어 실형을 언도받고 복역한 사실이 있다. 공직자에게는 뇌물이 될 수 있는 일이, 즉 일반인들에게 지탄받을 일이 어떻게 목사에게는 극히 칭찬받을 일이 되는지 아무리 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목사들의 윤리의식을 잘 드러내 주는 예가 있다. 문민정부가 집권한 지 얼마 후에 신문에 난 일이다. 개신교 목사들이 모여 소득세를 내는 것이 옳은지 안 내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세금을 낼 것인지 말 것인지를 법이 아니라 자신들이 정한다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우리나라 개신교의 목사들이 대부분 갑근세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일부 양심있는 목회자들에 의해 이런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얼마 후에 다시 비슷한 일로 가톨릭 사제들의 회의가 있었고 여기서는 이론없이 세금을 낼 것을 결의했다는 기사가 났었다. 또 다시 얼마 후 비슷한 일에 대해 기자들이 조계종 총무원에 문의를 한 바 불교 측의 대답은 승려란 소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승려에게는 재산도 없고 소득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금 낼 일이 있겠는가 하는 대답이었다. 불교에 일부 돈 많은 주지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교단의 원칙을 벗어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총무원의 답변은 그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그러나 목사의 경우는 다르다. 신문에 난 것을 보면 그날 목사들은 갑론을박 하다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세금을 안 내도 된다는 측의 주장은 교회의 돈은 하나님의 것인데 왜 세속정부에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논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설령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여 헌금이 하나님의 돈이라고 해도 그것이 한국은행의 발행권이고, 또 그들이 아무리 성직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에 주소를 갖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 아무리 목사들의 양심상 세금을 안 내는 것이 정당하다 해도 일단 실정법에 대한 의무로라도 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라 하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같이 갑론을박 하다 만 것은 왜일까? 솔직히 말해 지금껏 안 내던 세금을 이제 와서 내자니 돈이 아까웠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목사들의 경우, 실제로 일반 직장의 봉급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봉급을 받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것이 현재 성직자라고 하는 우리나라 목사님들의 윤리의식의 현주소다.


우리 주위에 목사의 자제로서 유학을 간 사람들을 많이 본다. 목사의 자제라고 유학하지 말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70년대, 혹은 80년대 초까지 유학을 시도해 본 사람이면 다 알 수 있듯이 당시 유학이란 것이 어지간한 경제력을 가지더라도 어려운 일이라 일반인은 도무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목사의 봉급으로 유학을 시킬 수 있었을까 하고 의심한다면 잘못된 일인가? 우리는 공직자들이 많은 재산이 있을 경우, 그들이 어떻게 박봉이라는 공무원 월급으로 그와 같은 재산을 모았는가 하고 의심의 눈으로 보게 마련이다.


[ 지방에서 감독까지 하셨다는 K목사님은 아들이 이곳 북가주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자주 오신다. 이분은 아들을 유학시켰을 뿐 아니라 그 아들의 사업자금을 대 주셨다. 한번은 이 목사님이 우리교회에서 설교를 하신 적이 있는데 설교에서 자기 아들의 사업자금을 충분히 대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교회는 목회자에 대해 더 좋은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분은 그렇기 때문에 실일조는 최소의 의무이고 그 이상 소득의 20%, 혹은 30% 정도는 헌금해야 된다고 강조하셨다. 이분은 골프도 보기 플레이 이상의 수준이다. 아들을 유학시키고, 미국에서 사업을 하도록 아들에게 자금까지 대 주고, 또 한국에서는 아직도 상류층의 운동인 골프를 즐기기 위해 평신도로부터 소득의 20-30%를 헌금으로 거두어들인다고 한다면 좀 지나친 일이 아닌가? ]


2) 목사의 교만


[ 1996년 A목사는 예배시간에 광고하기를 "담임목사가 매우 바빠 교인을 일일이 심방할 수 없으니 목사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교회 입구에 비치한 목사 면담신청서를 기록하여 면담을 신청해 달라"고 강조했다. A목사는 같은 광고를 그 다음 주, 또 그 다음 주에도 계속하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교회는 교인이 약 300명 정도였다. 300명 정도의 신도를 가진 교회의 목사는 면담신청서를 작성하여 면담을 요청해야 할 만큼 바쁘고 대단한 분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중략) ]


내 중학교 때의 동창 중에 신학을 공부하고 오지에서 전도사로서 목회활동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이야기 하는 도중 내게 하는 말이 어떤 미국영화(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는 영화로 어떤 아이가 갑자기 자신의 위에 서서 명령을 내리게 되는 상황...) 를 예를 들며 지금은 너와 내가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이 내게 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느끼는 교회에 대해, 내가 만난 많은 사람에 대해, 타종교에 관해 이야기했고 함께 이야기하고자했으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너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며 자신의 기준으로는 나의 마음에 믿음이나 신앙이라고 보이는 최소한의 건덕지도 없다, 믿음을 더 키운 다음에 나를 찾아오라는 이야기만 했고 자신은 다만 나에게 걸어가는 방향을 제시해 줄 뿐 이라면서 교회나 목사들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자 너는 친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상당히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가 세상사람 들에게 배운다는 생각보다는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고 명령을 내린다는 생각, 자신이 학교에서 몇 년 동안 공부한 성경과 신학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그 외의 것은 무가치하게 단정 짓고 있는, 내가 가진 주장이나 생각이 틀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면서 머리로만 아는 교리, 마음으로 전하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신앙.. 과연 그 친구가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삶은 어느 쪽이었으며 그가 사람들에게 심어 주고 있는 것이 어느 쪽일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마음이 착잡해 져갔다.


위의 경우만이 아니라도 일반적으로 목사들은 자신이 교인들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자처하며 상당히 교만한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은 자신이 그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평신도는 목사들의 교육이나 지적 수준이 높아서 목사를 존중해 드리는 것이 아니다. 평신도는 자신보다 조금은 더 예수를 닮은 모습을 목사에게서 기대하는 것이다. 목사들은 그들의 말대로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존경해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겸손을 몸소 실천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의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이 남보다 겸손하지는 못할망정 교만하다면 이는 예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처사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겸손은 미덕일지 모르나 목사에게 겸손은 사명이다.


목사의 교만은 우리 평신도에게 실망을 넘어 신앙 그 자체에 대한 회의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목사 같은 성직이 아닌 초등학교 교사라도 제자들의 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를 실족케 하려거든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까지 강경히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나는 목사는 교만하게 처신하느니 차라리 목회를 그만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3) 목사들의 세자랑, 줄서기


[퍼온글]


[ 1994년으로 기억한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근처에 있는 한 호텔에서 한국의 모교단의 선교대회가 열렸던 적이 있다. A목사는 수 개월 전부터 이 대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인들에게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 목사가 워낙 중요하게 강조하고 참여를 독려하므로 성가대원은 몇 달 전부터 연습하고, 일부 교직자는 아예 회사에 휴가를 내고 이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하루 시간을 내어 여기에 참석했었다. 목사님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한 번쯤 참석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서였다.


대회 내용은 한국의 그 교단에서 세계에 파견된 많은 선교사들과 또 그 교단의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선교사들의 여러 가지 사례나 문제점 등을 발표하고 또 지원을 다짐하는 대회로 일종의 워크샵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남아는 물론 아프리카, 남미의 오지 등으로부터 온 많은 선교사들이 참석했으며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교회의 목사들과 교회의 대표들도 많은 교직자와 성도들을 대동하고 대규모로 참석했다.


아무튼 목요일 저녁 이 대회에 참석했던 나는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회는 그 호텔 일층에 있는 연회실 여러 개를 터서 족히 일천여 명 이상이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연회장에서 일 주일 동안 진행되는 것이었다. 한국의 재벌그룹에 간부로서 여러 해 근무했던 나는 회사의 경영관계로 간부직원을 교육하거나 경영지침을 준비하는 대회에 여러 번 참석했던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의 규모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관계된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같은 대회의 경우 수십만 달러가 소요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대회를 보는 나의 마음은 착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같은 성격의 대회라면 선교 추진의 본거지인 한국에서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소규모로도 효과적인 대회를 얼마든지 치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 있는 교단이 그들의 대회를 굳이 이곳 미국에 와서 해야 하는가, 또 왜 그 같이 대규모로 해야 하는 것일까? 이 대회는 한마디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의 세자랑, 돈자랑이었다. 한국의 목사님은 모두 성도들이 정성껏 바치는 헌금으로 부부가 여행왔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교회의 헌금이 하나님의 돈이라 소득세도 낼 수 없다는 목사님들이 하나님의 돈을 이렇게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가?


또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이곳 미국 현지의 목사들의 태도였다. 엄격히 말하면 한국의 교단과 미국의 교단은 같은 교파라도 별개의 교단이며, 직접적 관계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곳의 여러 목사님들은 헌신적으로 이 대회를 도와주고 특히 A목사 같은 분은 거의 온 교회를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협조를 한 것이다. 돕고, 협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다 알다시피 이곳 미국의 이민생활이란 대부분 부부가 맞벌이하는 경우가 많으며 또 많은 교포가 소규모 소매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시간을 낸다는 일이 쉽지 않다. 왜 생업에 바쁜 교포들을 거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여 이같이 많은 사람을 참석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


미국의 한인 목사들은 이 "능력 있는" 한국의 목사님들과 교분을 두터이 할 좋을 기회이니 교인들을 동원하여 그들 앞에서 능력발휘를 하는, 말하자면 일종의 줄서기인 것이다. 물론 목사도 직업이니 더러 줄서기가 필요할 수 있겠다고 인간적으로 이해해 주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은 개인적으로 할 일이지 왜 무고한 교인들을 동원하여 들러리를 세우는가?


4) 목사들의 사회적 지위


[ A목사는 96년 서울에 전통 있는 S교회이 담임목사로 "영전"했다. 그 후 A목사의 부인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한국에서는 목사에 대한 대우는 미국보다 나은 것 같으나 목사의 사회적 지위는 미국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한다. A목사의 의식구조가 충분히 짐작가는 대목이다 .]


목사들 중에 설교를 통해 정치인을 한두 번 비난한 적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감리교나 장로교나 할 것 없이 개신교의 선거를 보면 세속의 국회의원 선거보다 더한 것 같다. 몇 년 전 서울에서는 교단장의 자리를 놓고 형제 목사가 혈전을 벌인 적이 있다. 이 선거가 돈 선거였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최소한 선거자금에 대한 법이라도 있어 더러 통제라도 되지만 목사는 그런 것도 없는 것 같다.


[퍼온글]


[ 내가 한국에 있을 때니까 16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1982년으로 기억) 나의 상관이었던 B전무는 장로교 목사의 아들이었다. 그 아버지는 지방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B전무가 한탄하는 것은 대 그룹의 전무로서 아버지를 노회장 한번 시켜드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내용인 즉 그 아버지가 노회장을 한 번 해보고 싶어하시는데 선거에 당시로 1억 5천만 원 정도의 경비가 드는데 이를 감당할 능력이 자기에게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수원에서 1,600만 원으로 25평 아파트를 샀으니까 대략 이 아파트 9채 값이 있어야 노회장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목사의 아버지는 아들이 사장이 된 후에야 비로소 노회장이 될 수 있었다. 이 B전무의 아버지는 그래도 잘난 아들 덕분에 노회장이 되었지만 다른 노회장이나 감독들도 모두 잘난 아들의 덕택으로 출세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


내가 이슬람을 선택한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기독교나 불교와 같이 그 어떤 사제계급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는 중간에 그 어떠한 매개체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이슬람에서 말하는 교리이기 때문이다.
 



5. 왜곡된 교회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왜곡되어 가고 있다. 기복신앙은 아주 일반화되어 가고 있고, 교회의 기업화는 이미 그 한계를 넘었다는 느낌이다. 교세 확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같이 달리기만 한다. 전도나 선교, 혹은 하나님 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는 어떤 행위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있다.


이슬람의 코란에서는 진리나 신앙은 권유하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예배당을 절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깨끗한 상태에서 신을 경배 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느 장소가 되었든 그것이 곧 사원(예배당)이 되는 것이다.
시장터, 산과 계곡, 배의 갑판, 비행기내, 식당, 길거리, 다방 등 지구 전체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교회가 된다. 하나님께 예배보는 장소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슬람의 영광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손에 세워진 교회에서만 예배를 근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세계 어느 장소에서든지 예배를 실천 할 수 있는 것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경우 생활상황이 다른 만큼 그에 맞게 배려를 해 놓았다.
이슬람에서는 예배를 혼자서, 어느 장소 에서나 볼 수 있다.
물론 남자의 경우 합동으로 여럿이 보는 예배가 더 가치가 높다고 하나 여자의 경우는 집안일이나 그 밖의 상황을 고려해서 굳이 합동예배를 안 나오고 집에서 개인예배를 봐도 상관없게끔 해 놓았다.
예수께서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는 것이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을 무하마드는 잘 실천토록 해 놓은 것이다.


이슬람세(자카트)는 연말정산에서 개인비용, 가족부양비와 용돈, 필요경비를 빼고는 부채가 있을 경우에는 부채를 상환한 후 남은 순수한 이익금잔액이 15불이상 상용하는 재산을 소유한 무슬림(이슬람신자)이면 남녀를 막론하고 최소한 그 금액의2.5%를 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기독교의 십일조의 경우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수익에서 무조건 10%이다 보니 가난한 자들에게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는 반면 이슬람에서는 그만큼 형편에 따라 낼 수 있도록 잘 배려가 되어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누진세의 시초가 되는 제도이다.
중요한 것은 자카트는 의무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나 기독교의 헌금과 십일조와는 달리 교회나 사원을 거치지 않아도 되게끔 장치되어 있다.
가령 내 옆집의 사람이 병원비가 없거나 등록금이 모잘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면 내가 모은 자카트를 그 사람에게 희사하면 하나님께 의무를 다 하는 것이다.


도움받는 사람이 무슬림이 아니라도 괜찮다.
왜냐하면 이슬람의 하나님은 부자에게나 가난한자에게나 선한사람에게나 악한사람에게나 무슬림이나 비무슬림이나 공평하게 대해 주시기 때문이며 이는 기독교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에서 1000년이 넘도록 해결할 수 없는 성직자의 절대성, 교회의 절대성, 완벽하다는 교리에 따른 문제, 그로인한 세속화들이 이슬람에서는 잘 수정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일반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도 조금도 나을 것이 없으며 솔직히 말해서 어떤 경우는 교회의 운영이 기업보다 훨씬 비리를 많이 갖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단의 감투에 수억의 돈을 척척 쓰질 않나, 공공연히 교회를 매매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목사들은 이것도 모두 전도를 위한 것이니 궁극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교회가 앞장서서 이렇게 타락하니 교인들이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목사님들은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몸과 같이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윤리적 기준은 그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설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조그만 구멍이 댐을 허물 듯이 교회가 작은 것에 스스로 엄격하지 못하면 결국 교회의 매매와 같은 엄청난 일에도 무감각해지고 마는 것이다. 왜곡된 교회의 모습을 몇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본다.


1) 아전인수격 성경해석


목사들이 곧잘 인용하는 성서 말씀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는 구절이 있다. 목사들은 이것을 흔히 교회에서는 순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한다. 이 말은 사울이 아말렉족과 그 재산을 다 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귀중한 것을 제사를 드린다는 명목으로 남긴 것에 대해 사무엘이 꾸짖은 말로 하나님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제사보다 더 원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요즘말로 바꾸자면 하나님은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을 예배보다 더 좋아하신다는 말이 되겠다. 복음(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것이 교회에서 예배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도 되겠다. 그러나 이 말이 목사들에게는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믿음 생활의 요체라는 의미로 둔갑해 버린다.


예수께서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 라고 하셨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결교회에서는 그 뒤에 ‘주 안에서만’ 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한 술 더 떠서 교회 안에서, 기독교(개신교)신자들끼리만 사랑하라는 뜻으로 둔갑시켰다.
마치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나오는 스타일과 같다.


“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구절의 경우도 그 전체적인 문맥상으로는 옳지 못한 것에 물들거나 따르지 말라는 말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교회에서는 “악하다” 는 것을 자신들과 다른 모든 것으로 해석하면서 기독교 이외의 것은 볼 가치도 들을 가치도 없다는 쪽으로 가르치고 있고 자신들의 말만 무조건적으로 믿으라는 그 저의 속에는 교회의 일을 의심하지 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자신들의 부정부패, 교세확장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조차도 주님의 뜻이고 사업이라는 뜻으로까지 연결이 되는 것이다.


[퍼온글]


[ B목사는 성경공부시간에 말하기를 "기독교인이 임의로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일 뿐이다. 교인은 마땅히 그럴 돈이 있으면 교회에 바쳐 교회가 구제사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S교회는 교인이 현재 500명 정도인데 교인이 1500명이 넘는 이곳의 가톨릭 성당보다 2배 이상의 헌금을 거둬들인다. 그런데 실제 구제 사업에 대한 노력은 성당에 훨씬 못 미친다. 이 목사는 다른 자리에서 어떤 교인이 왜 교회가 구제사업에 소극적이냐고 묻자 교회는 복음 전도가 그 주임무이지 구제사업이 주임무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


복음의 본질에 있고자 노력해도 쉬운 일이 아닐 턴데, 성경 말씀이나 복음을 이렇게 목사들 편한 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갖다 붙이니 교회와 평신도의 신앙이 왜곡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2) 헌금과 기복신앙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교인의 신앙의 의무 내지는 미덕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전서 어디를 보아도 십일조를 하라는 말은 찾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십일조에 대한 신약의 근거로 유일하게 마태복음 23장 23절을 제시하고 있다. 옹색한 설명이다. 이 구절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이 십일조를 지킨 것으로 율법을 모두 지킨 것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율법에 더 중요한 바 의와 인을 잊어 버린 것을 예수께서 경계하여 꾸짖은 부분이다.


십일조란 구약에서 유대인들에게 요구되던 율법이다. 구약의 율법이라도 성경에 있으니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구약에 있는 그 많은 율법사항 중에 왜 하필 십일조만 지켜야 하는 것일까? 안식일도 지켜야 하고, 돼지고기도 먹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도대체 이런 식으로 구약의 율법으로 돌아간다면 복음은 어디 갔는가?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교파는 아니지 않는가?


사실 교회에서는 헌금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법이 동원되고 있다. 나는 목사님들이 "십일조를 한 번 해 봐라!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지 안 주시는지" 하며 십일조를 권장하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나는 십일조 잘 해서 재벌이 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많은 목사들이 자신은 헌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헌금을 많이 하는 교인을 그만큼 대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다. 실제 헌금이 권사, 장로 등의 "진급" 심사의 중요한 기준인 것이 사실이다.


개신교에서는 추수감사절 행사가 대단히 크다. 일반적으로 목사님들은 추수감사절을 기독교의 큰 절기로 강조한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은 단지 미국의 명절일 뿐, 2000년의 오랜 기독교 전통을 가진 유럽 개신교 국가에는 이 행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기야 한국의 개신교가 주로 미국에서 전도되었으니 그 영향을 받았을 수는 있겠지만 왜 하필 미국의 명절을 그토록 지키려고 노력할까? 그 이유는 검사헌금을 걷기 위한 것과 얼마나 무관한 일일까? 본래적 신앙의 의미를 지키고 있는가?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목사님들이 많을 줄 안다. 비록 미국의 명절이더라도 좋은 것을 따른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는가 하고... 그러면 맥추감사절은 왜 있는가? 나는 현재 15년째 미국에 살지만 미국에 맥추감사절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맥추감사절이란 것도 있어서 어려운 보릿고개에 또 한번 감사헌금을 거둬들인다. 그러니 감사절이란 감사헌금을 위해 미국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말해도 변명할 말은 없을 것이다. 감사절에 일년 예산의 반이 들어와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목사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것을 없는 자와 나누기를 원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십일조를 하면 복 받는다는 식의 논리는 하나님 장사다. 개신교는 가톨릭이 면죄부를 판 것이 빌미가 되어 개혁했다고 하지만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하나님을 통째로 팔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3) 직분


[퍼온글]


나는 직업상 서울 출장이 잦다. 내가 서울에 갔다오면 목사에게 무슨 선물을 사다 주었느냐고 묻는 교인이 많았다. 얼마 전 C장로님은 나에게 좀더 목사와 좋은 관계를 갖도록 노력하라고 충고하신 적이 있다. 그래야 권사로 진급도 되고 교회생활이 원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솔직한 충고였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한국의 개신교가 대부분 그렇듯이 감리교회에도 소위 집사, 권사, 장로라는 직분이 있다. 그런데 감리교의 원류인 미국 연합감리교회에는 이런 직분이 없다. 왜 본 고장 미국에도 없는 이 같은 제도가 한국교회에만 있는 것일까? 이는 신분의식이 강한 한국사람의 정서와 교인들을 직분제도를 통해 장악하려는 목사들의 현실적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대표적인 예라고 본다.


한국사람들은 신분의식이 매우 강하다. 남의 집 머슴을 살아도 명함만은 커야 한다는 것이 한국 사람이다. 월급보다도 직급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 한국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이다. 그러니 교회에 와서도 집사니, 권사니, 장로니 하는 계급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교인들은 집사가 권사가 되고, 권사가 장로가 되는 것을 진급으로 받아들인다. 기독교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에서는 교인들의 신앙적 뿌리가 짧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교회에서까지 사회적 정서가 연장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목사들은 이런 정서에 적당히 편승하여 교인들의 진급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통해 교인들을 장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진급을 원하는 사람은 자연히 목사에게 충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교인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목사는 이를 반갑게 이용하는 것이다.


직분의 난맥상은 교포 교회가 더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교포들은 별달리 사회적 지위가 없다 보니 교회의 직분에 더 집착하는 것 같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 K집사는 부목사가 잘 봤다고 소문이 나더니 이듬해 젊은 나이에 권사가 되고, 또 다른 K집사는 사모가 거듭났다고 몇 달 소문을 내더니 권사가 됐다. S권사는 S교회에 온 지 1년만에 집사도 거치지 않고 바로 권사가 되었다. 이분은 전에 미국감리교회에 계셨기 때문에 집사, 권사가 뭔지도 몰라 내게 그게 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 몇 달 후 권사가 된 것이다. 이분은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목사님의 아들이다.


돈이 많다고 소문이 자자한 L씨는 S교회로 온 지 1년만에 부부가 다 한꺼번에 권사로 진급하셨다. K장로는 S교회에 온 지 일 년만에 다른 사람은 20년을 다녀도 되기 힘든 장로가 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K장로는 한 달에 $4,000 정도의 헌금을 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고, 또한 S교회가 특별히 잘못된 것도 아니다. 내가 S교회에 다녔으니 이 교회의 예를 들은 것뿐이다. 다른 교회도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급을 시키니 권사나 장로의 수준도 문제가 된다. K권사는 1992년에 권사가 된 사람인데 1998년 성경공부시간에 말하기를 자기는 기독교의교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솔직한 것은 좋으나 나는 그가 어떤 기준에 의해 권사가 됐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떤 장로님은 하박국을 신약에서 찾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


교회 안에 이와 같은 계급을 만들어 놓고 교인들 상호간에 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목사들은 성경이 어떻고 초대교회가 어떻고 하며 이런 직분제도를 대단한 것으로 포장하려 한다. 그러나 무슨 말로 변명을 하더라도 교인간에 경쟁을 유도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교회란 반구조적이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노력을 해야 할 사명이 있고, 하나님 나라에는 신분이나 귀천의 차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소한 교회에서는 이런 사회의 구조 내지는 계급을 부정하고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무릎에 안길 수 있는 곳이 천국임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도 이 땅에 건물을 짓고 운영되고 있는 세속의 조직 중의 하나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최소한 그 기준이라도 공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인간에 경쟁을 유발하지 않도록 개선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교회 직분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엄격히 적용된다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4) 교회의 기업화


오늘날 교회는 도대체 기업인지 교회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는 술집 광고와 나란히 있는 교회의 광고를 보면서 착잡한 기분을 아니 느낄 수 없다.



[퍼온글]


[ B목사는 S교회에 부임하자 팜플렛을 만들었다. 여기에 보면 인사말 초대합니다와 함께 교회의 사진, 목사의 사진과 약력, 각종 예배시간 안내, 교회 각종 행사의 사진, 약도 등이 총 천연색으로 멋지게 인쇄되어 있다. 일반 기업체의 선전 브로셔와 전혀 다를 게 없다. 그러니 B목사가 부임하자 왜 로고를 현상 모집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개신교라도 미국교회는 좀 다르다. 나는 1973년 처음으로 미국에 출장 온 적이 있었다. 당시 미국교회를 빌어 예배보는 한인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곤 했는데 미국교회에도 이런 브로셔가 있어 유심히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전혀 달라서 경제적으로 어려워 학교를 못 간다든가, 가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라든가, 미혼모가 되었다든가 하는 사람에 대한 위로와 찾아달라는 목사의 전화와 주소 등이 적혀 있었을 뿐이었다. 왜 이런 것은 배우지 못하는가?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목사들은 이렇게 교회가 기업화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교회가 계속 기업화마다 보니 심지어 교회의 매매에도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내 친구 중에 K라는 목사가 있는데 80년대 말에 이곳 북가주에 와서 개척교회를 하여 유학을 하다 돌아간 적이 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갈 때가 되어 준비를 하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분당에서 교회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 교회를 8.000만원에 팔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 교회목사는 늦게 목사가 되어 분당에 개척교회를 세워 현재 교인이 70명 정도 되는데, 강단과 의자, 전세금 등 들어간 돈이 약 8,000만원이 되니 이 가격에 넘기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목사는 이 돈으로 유학을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이다.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말로 변명을 해도 명백한 교회 매매이다. 한국에서 공공연히 교회가 매매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


이같은 교회 매매에 대해 교단차원에서 어떤 제동이 있었다는 얘기를 나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비록 모양새는 좋지 않지만 전도와 선교를 위한 것이며, 하나님을 위한 것이니 궁극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자세이다. 살인자도 용서하라는 예수께서 성전 안의 장사꾼을 채찍을 들어 내어쫓지 않으셨던가? 그 당시의 성전의 장사꾼들도 다 제사드리는 성도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교회가 경계해야 할 바에 대한 명백한 교훈이 아니겠는가?


맺는말


개신교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기여한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골목골목에 세워진 십자가를 볼 때마다 착찹한 기분을 느낀다. 교회란 올바른 복음 위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개신교가 진정 올바른 복음 위에 기초했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평신도에게는 신학적 이론이나 교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목사님들이 교회에서 훌륭한 이론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천국에 대해 설교한다고 하더라도 목사와 교회가 스스로 복음의 원칙적 자세로 돌아가지 않으면, 평신도에게는 오히려 더 큰 실망만을 주게 될 뿐이다. 개신교 교회가 말만 예수를 앞세우고 자신은 예수의 길에 서 있지 않다면 JMS나 만민중앙교회와 같이 사이비 종교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는 중병에 걸린 환자와 같다. 너무 병이 깊어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조차 느낄 수 없는 정도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교회가 기업화되고 타락했다면 모든 교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싫든 좋든 교회의 지도자는 목사들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잘못되었다면 그 주된 책임은 어차피 목사들의 몫이다. 또 교회를 바로 잡아야 할 책임 역시 목사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그 때로 돌아가서 마음을 비우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오늘 이 순간에도 교회가 바로 복음의 원칙에 충실했는가를 항상 반성하고 돌이켜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나 교회가 하나님께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이 바로 목사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도 못 가고 남들까지 못가게 천국문을 막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누구도 목사가 되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다. 자신의 말대로 목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아닌가?


내가 너무 목사와 교회의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아직 교회에는 훌륭한 목회자들도 많다고 나도 믿는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개신교는 큰 흐름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의 수가 감옥 안에 있는 죄수의 수보다 많다고 하여 그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목사라면 당연히 걸어야 할 성직자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인 분들이 특별한 목사가 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며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울트라뽛
2004-09-19 08:55:52
1187 번 읽음
  총 2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장미아빠 '04.9.19 12:31 PM 신고
    :-)*장문에 글 잘 읽었읍니다.

    예컨대 자신은 예수를 잘 믿고 말씀대로 행하려 했지만,....................
    주변의 변변치 못한 사람들로 환멸를 느끼고 그로 인해 종교를 개종했다는 말씀이군요.

    님께서 진리를 알고 변화되어 완전히 실천하셨으면 이 나라뿐 아니라 온 세상이 변했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 않탁깝네요.

    또한 님께서 올리신 성경[바울서신] 말씀은 개종한 이스람교를 위해 부정적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 같아 자못 마음이 씁쓸했읍니다. 웨스트 민스터 신앙 고백서 인용 부분도 그러고
    말입니다.[잘난척 한다 할 것 같아 왜곡 부분은 생략하겠읍니다.]

    그래도 교회를 다녔다고 하시니 이 말은 하고 싶네요.
    믿음과 행함에 있어서 한마디만 하겠읍니다.

    믿음은 사람을 속일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으며, 믿음이 없는 행함은
    사람에게는 유익은 되어도 하나님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의 영광이라고요.
    이러한 상관관계는 신앙인의 행복한 고민이요 평생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와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이고,........
    의의 회복인 믿음과 선한 행위는 뗄래야 뗄 수없는 관계입니다. ↓댓글에댓글
  2. 2. A마데우스 '04.9.19 3:07 PM 신고
    :-)*장미아빠님의 글은 너무 터무니없고 기독교인의 말중에 젤 많이 듣는 말로 들립니다.
    헌금 사용내용을 밝히십시오 그중에서 50%이상을 불쌍한사람 혹은 어려운 사람에게 썼다면
    저는 제가 번돈의 10%내겠습니다. ↓댓글에댓글
  3. 3. 브랜단 '04.9.19 11:22 PM 신고
    :-)*쯧쯧.. 저런 10같은 목사들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사들도 몇 안되지만 있긴 있습니다. 열몇명쯤 되려나.. 한가지 알려드릴게요. 십일조는 절대 내지 마세요. 그런교회도 절대 다니지 마시구요. 그런교회가 어디있냐고 반문하시겠지만 분명있습니다. 광주에도 하나있고 서울 영등포에도 하나 있습니다. 그러니 상심마세요. 언제나 스마일.. 웃는모습이 아름답네요. ↓댓글에댓글
  4. 4. 울트라뽛 '04.9.20 8:17 AM 신고
    :-)*장미아빠님의 말씀중에
    '결론적으로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와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이고,........
    의의 회복인 믿음과 선한 행위는 뗄래야 뗄 수없는 관계입니다.' 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사이에 있는 수 많은 관계들은 어떻게 정의 내려야하나요??
    대한민국 사회와 기독교 그리고 수 많은 개개인의 신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기독교의 신인 야훼와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가 될 수 없음을
    장담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죠...
    "교회 믿으세요..."
    이 말 하나에 많은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에댓글
  5. 5. 유준수 '04.9.21 9:35 AM 신고
    :-)*이곳에서도 가슴 아픈 말을 많이 듣게 되는 군요.
    울트라뽛님. 교회에서 굉장히 안 좋은 면을 많이 보신 것 같군요.전 기독교인입니다.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님이 하신 말씀도 없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교회들이 타락했지요. 정말 교회에서 말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교회들이 더 많지요. 극동방송을 들어도 정말 나와야 하는 이야기 보다 아무작에도 쓸모없는 것들이 더 많더군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그분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교회에서 해야 할 말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이차삼차적인 말입니다.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은 선행도 아니고 율법도 아니고 헌금도 아닙니다. 물론 교회나 목사님에 대한 충성도 아닙니다. 포인트가 다릅니다. 님. 교회다니면서 한번이라도 이런 말씀을 들어 보셨습니까? 아니라면 그 교회가 잘못된 교회든지 님이 잘못된 신자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것은 교회에 다니시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같다기 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친분 그런 것을 위해서 가신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 받으신 느낌도 들고요.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다면서 저럴수있지?' 그 생각이 님을 개종하게 하셨겠죠. 하지만 사람이란 월래 그렇습니다. 기쁨을 얻기 보다 실망을 얻기가 쉽죠. 기쁨은 하나님 안에서 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을 들어 보셨습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교회에 다니면 많이 듣는 성경구절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구절을 보고 시험당하고 어떤 사람은 이말씀을 듣고 한 없이 기뻐하지요. 그차이는 내가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의 차이입니다. 내가 하기는 힘이듭니다. '항상 기뻐하라-슬퍼도 기뻐하란 말인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쉬지말고 기도하라-일도 하지 말고 기도하란 말이야 뭐야?, 범사에 감사하라-으아~또 감사 헌금하라는 말이구만' 그단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들로 힘들어하지요. 하지만 기뻐하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라-하나님 안에서 항상 기쁘게 하시겠단 말이구나. 쉬지말고 기도하라-하나님께서 쉬지않고 언제든지 내가 기도만 하면 응답하시겠다는 말이구나. 범사에 감사하라-하나님께서 작은일에도 은혜를 배푸시겠다는 말이구나.' 이것이 차이입니다. 님께서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을 알고 계십니까. 사람이 하는 일을 믿지 마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으십시오. ↓댓글에댓글
  6. 6. 목인 '04.9.21 5:43 PM 신고
    :-)*저 역시 가슴이 미치도록 아픕니다.
    역사의 진실은 모르고 예수에만 미쳐 예수만 부르짖는 자들이 이렇게 많은지?
    자기의 뿌리를 부정하고 할렐루야만 찾는 민족 혼과 얼이 빠진 얼간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조상님들이 땅을 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이 나라 이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눈물 흘려 통곡합니다.
    뿌리를 부정하면 이번에 모두 죽음의 길로 가게 됨을 알기에 ... 그 영원한 죽음의 길로...
    연어는 죽기 전에 자기가 자란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 죽을 힘을 다해 굽이쳐 흘러 내려오는 거센 물결과 싸우는데 사람이란 영물이 연어보다도 더 못하니...
    먹고 살려고 껄떡거리다 모두다 허망하게 죽어갈 것을 생각하니 슬프기 이를데 없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예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믿어 천당간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과연 천당에 갈 수 있을까요?
    왜 사람들이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줄 아세요?
    지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자연재앙이 예전의 하늘과 땅이 하는 것과 다릅니다.
    자연의 이치는 냉정합니다.
    사람의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누굴 믿고 안믿고를 따지지 않습니다.
    자연이란 시간은 때가 되면 꼭 그렇게 되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내일이 오지 말라고 해서 안옵니까?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오면 다시 또 봄이 오는 것이 자연이치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우주변화 이치를 말하고 있습니까?
    성경이 이런 자연변화를 말하고 있습니까?

    사랑하고 봉사하고 서로 믿으며 기뻐하라.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러시아 인질 사태를 보세요.
    그것이 사랑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체첸공화국은 2백만명정도 밖에 안되는 소수 민족국가 입니다.
    그런 민족이 2억 정도 되는 러시아와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왜 그렇까요?
    그리고 이스라엘 이라크 이란 등 중동 국가들은 왜 형제끼리 아직도 싸우고 있을까요?
    모든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왜곡한 일부적인 진리로 인해 서로 분열되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있습니다.
    그것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자연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자연의 산물로 살아가고 그 은혜로 지금까지 번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구는 지금 많이 병들어 있습니다.
    정화를 하지 않으면 안될 그런 위험한 순간에 와 있기에 자연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새로운 삶을 위해 옷을 벗습니다. 단지 열매를 맺어 모든 진액을 그곳에 저장한 다음 낙엽이 되어 버리는 것이 자연의 순수한 이치이며 본성입니다.
    지금 인간은 진정한 자신의 본성을 저버리고 타아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참 자아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신성이 열릴 것이고 진리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뜨일 것입니다.
    배를 골아 본 사람 만이 빵의 고마움을 압니다.
    낙엽이 되기 전에 그 자연의 고마운 이치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곧 개벽이 닥칩니다.
    우주는 말없으나 세상이 다 말하고 있습니다.
    투모로우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조금만 늦게 개봉했으면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될 뻔 했다" 라고... ↓댓글에댓글
  7. 7. 유준수 '04.9.21 9:29 PM 신고
    :-)*님도 어디에나 보이지만 어디에도 그럴듯한 이유는 없군요. 연어가 돌아오는 이유는 알을 낳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그것은 그 생물의 습성일뿐이잖아. 글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그게 연어가 고향을 그리워해서 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과학자들은 절대 습성이상의 것을 증명 할 수 없지...
    자연의 이치는 하나님께서 만드셨지. 그리고 필요에 의해서 이세상을 하루 멈추셨던 적이 잊지. 여호수아가 기도했을 때, 천문학자들이 이래저래 계산해도 지구의 자전이 하루가 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 예수 믿어 천당간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천당 갈수 있냐고? 그의 영접이 진실이라면 간다니까~ 영접하면 그 전에 무슨 지랄을 하던 그 후에 지랄을 하던 간다고~ 살인 강간을 해도 간다 했잖아~ 자살이 대수야? 칭찬도 세번 이상하면 욕이래~ 같으말 또하고 또하고 또하니까 지겹잖아~ 조금 변화를 주어야지~ 그렇다고 내용을 고칠 수는 없잖아~ 말투라도 바꿔야지~ 내가 언제 '예수님께서 사랑하고 봉사하고 서로 믿으며 기뻐하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삽시다' 라고 한적있나?? 어디서 나온 말이야? '중동국가 들이 싸우는 이유는 모든 것은 진리가 아니기때문입니다' 이게 당신이 보기에는 논리적인가? 이유와 결과가 제대로 이어진거냐고? 당신말고 누가 또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중학생 때도 이런글을 보고 '아~ 그렇구나' 라고 하지는 않았겠다. ↓댓글에댓글
  8. 8. 목인 '04.9.22 2:26 AM 신고
    :-)*ㅋㅋ
    아직도 하나님 타령이시네요.
    하나님은 자연의 이치를 내가 만들었다라는 그런 말씀 하신적이 없다고 하시네요.
    혹시 진공에너지라고 들어보셨나요.
    과학자들이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만든 가장 작은 단위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진공실험을 했다고 하네요.
    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는 입자라는 것이 있는데 극진공상태로 만들어 모든 입자들을 없애면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 관찰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현상이 생겼는지 궁금하시죠?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는 무입자의 완전진공상태에서 갑자기 어디선가 빛이 나오면서 새로운 형태의 입자들이 생겨났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무위이화라 하셨습니다.
    즉. 자연은 말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창조론에 틀 박힌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우실 것입니다.
    참고로 하나님은 분명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形於天地하여 生人하나니
    형어천지하여 생인하나니
    萬物之中에 唯人이 最貴也니라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야니라
    --
    하늘과 땅을 형상하여 사람이 생겨났나니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니라."
    --
    "天地生人하여 用人하나니
    천지생인하여 용인하나니
    不參於天地用人之時면 何可曰人生乎아
    불참어천지용인지시면 하가왈인생호아
    --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 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
    --

    제가 말씀드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궁금하시죠?
    정답을 가르쳐 드리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옥황상제님이 곧 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거나 말거나 ~~
    상제님은 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서 내려 보냈느니라"
    역시 믿거나 말거나...
    다음 기회에 좀더 많은 이야기를 해 드리기로 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댓글에댓글
  9. 9. 울트라뽛 '04.9.22 9:15 AM 신고
    :-O*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이성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병자들이 자신이 실존한다고 믿는 세계관을 타인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하기에 정신병자가 아닐까요??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그 세계에선 자신만이 존재할 뿐이지요...

    무조건적인 믿음은 강요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은 협박이고요...
    인류의 평화를 해치는 배타적인 교리...
    인류에게 평화와 사랑을 전해주는 종교의 기본자세가 이러면 안되겠지요...

    여하튼 이러저러 하여... 기독교란 종교는
    인류발전에 걸림돌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댓글에댓글
  10. 10. 울트라뽛 '04.9.22 9:27 AM 신고
    :-)*아... 그리고 목인님...
    제가 과학에 많은 관심이 있는데
    진공에너지란 말이 저런 뜻인지는 처음 알았는데요???
    목인님께서 말씀하시는 실험을 언제 어디서 누가 했는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과학의 권위를 자신들의 종교에 이용하는 일을 종종
    보아왔거든요... ↓댓글에댓글
  11. 11. 울트라뽛 '04.9.22 9:31 AM 신고
    :-)*목인님은 증산도를 비팍에서 전도하고자하시는 분이시군요...
    인터넷 검색하니 바로 뜨네요...^^ ↓댓글에댓글
  12. 12. 유준수 '04.9.22 9:43 AM 신고
    :-)*울트라뽛님 무조건적인 믿음은 강요입니다. - 라는 말은 조금 억지입니다. 님은 어떤사람을 믿을때 조건이있습니까? 저사람은 어떤행동을 했고 어떤말을 해서 믿으십니까? 믿음에 조건이라는 말이 붙을 수 없습니다. 강요라는 것은 막무가네로 믿어라 이것이 진리다 왜 안믿는거야 믿으라니까! 하면서 강경하게 나와야 강요라는 말을 쓸 수 있는거죠. 그리고 믿지않으면 지옥간다는 말이 협박이 되려면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지않으면 지옥가다는 것을 님도 인정한다는 말이지요. 그렇제 않다면 그말이 협박이 될리 없죠. 그냥 '또 뻥치시네'하고 넘어 가면 되니까요.
    그리고 기독교에서 배타시 하는 것은 다른 종교지 다른 종교인이 아닙니다. 인류의 평화를 해치기까지 하겠습니까~ ↓댓글에댓글
  13. 13. 울트라뽛 '04.9.22 11:02 AM 신고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말이 불신자들에게는 협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천국에 이를 수 없다'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죠??
    기독교의 믿음에는 '천국'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평생 지옥불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협박으로
    믿음을 강요하는것... 그것 또한 기독교의 부정할 수 없는 일면 아니겠습니까?
    인간이란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원초적인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죽어도 영원한 고통이 따른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군요....

    기독교에서 배타시하는 것은 다른 종교라고요??
    성경에도 나와있지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우리의 야훼신께서는 어찌하였죠???
    역사 상에서도 십자군전쟁...
    신의 이름으로 행한 전쟁이었죠???
    이교도들을 몰살한다며...

    이라크전쟁도 보셨죠???
    부시가 신의 이름으로 이라크국민을
    고통의 도가니에 몰아넣은것 보셨죠??

    우리 주위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 모인 기독교인들의 시국집회 보셨죠???
    증오와 광분의 언행들이 오고가는 그 모습들을요...
    분명히 이런 모습들도
    기독교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입니다.


    좋은 점이 있다고 해서
    나쁜 점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정할건 인정하고
    고칠건 고치고해서
    기독교에서 잘 쓰는 말로
    거듭나야 합니다... ↓댓글에댓글
  14. 14. 유준수 '04.9.22 2:57 PM 신고
    :-)*십자군 전쟁은 교황의 승인아래 성지 회복이라는 명목으로 시작한 전쟁이지요. 하나님이 바라셨던 전쟁은 아닙니다. 이라크전도 마찬가지지요. 부시 대통령이 테러집단의 뿌리를 뽑겠다고 시작한 전쟁이지요. 그리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석유 전쟁이고요. 하나님이 시키신 일은 아니죠. 기독교인들의 시국집회는 TV에서 본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봐도 어이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별로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기이익을 부르짓던 같던데요. 나쁜점은 그들의 욕망을 기독교로 포장했다는 것이지 기독교나 하나님의 뜻이 그런것은 아닙니다. 대상과 문제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시지요. ↓댓글에댓글
  15. 15. 울트라뽛 '04.9.23 8:22 AM 신고
    :-)*기독교가 낳는 여러가지 병폐들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교리자체에 그것을 이용할 수 없도록 만들면 되는것 아닙니까...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편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의 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중요한건 문제의 제공자가 누구이냐... 이것이지요... ↓댓글에댓글
  16. 16. 목인 '04.9.23 10:01 AM 신고
    :-)*울트라뽛님 진공에너지에 대한 자세한 자료가 영상으로 나와 있습니다.
    Space Mileninum 시리즈 중 8편에 보면 우주의 팽창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인력에 반발하는 그 어떤 힘의 존재를 확인하는 실험에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원인모르는 입자의 출현을 발견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cd 1장 분량인데 내용이 너무 좋습니다.
    제가 여기서 설명하는 것 보다 직접 보시는 것이 더 이해하시기 쉬울 것 같습니다.
    --
    전 종교를 싫어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과학이 곧 신이고 종교라고 믿고 생활 해왔던 실증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과학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서 직접 체험을 통해 진실을 알려고 무진 애를 썼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초능력이나 기(氣)와 같은 알 수 없는 그 어떤 존재의 힘이 가능한가에 대해 탐구하고 경험하기 위해 초현상과학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 영혼과 신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일명 심령과학이라고도 하는 분야를 접하면서 인간심리를 다루는 심리학서적들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과학이라는 것도 공부하면서 영화 스타트랙에서 나오는 워프(공간이동)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며 단전호흡단체에 들어가 수년간 수행과 수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느끼고 체험하면서 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고 장풍까지는 쏘지 못하지만 기를 만지고 느끼면서 아픈 사람을 직접 접촉없이 기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항상 왜(why)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고 속시원하게 해답을 제시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우주가 왜 생겼으며 인간은 넓고 넓은 이 우주에서 티끌도 되지 않는 존재로 태어나 살고 죽고를 반복해야만 하는지 우주와 인간의 관계는 이렇고 이래서 인간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또 다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명쾌한 진리의 해답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 속에는 우주탄생의 이치와 목적이 없고 논리적으로도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으며 불교는 마음을 닦으라고 하나 실제로 도통했다는 스님은 보기 드물고 현실적으로도 앉아서 참선과 수행만 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또한 역시 우주변화의 원리를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불교나 기독교는 이삼천년전의 진리이지만 최첨단 초과학문명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아니러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깨어있는 사람들은 한 마디씩 합니다.
    지금은 새로운 시대이며 거기에 걸맞는 새로운 진리가 나와야 할 때라고...
    세상의 모든 문제를 돌아켜보면서 지금까지 나와 있는 모든 종교, 철학, 과학,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등으로는 도저히 해답을 구하기 힘들다고 판단이 되었기에 전혀 다른 새로운 진리가 나와야 된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인간문제만 해도 너무나 복잡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 하나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둥글어 가는 것 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사설이 너무 긴 것 같네요....
    요점을 말하고 끝내겠습니다.
    저 자신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였고 최고로 완벽한 진리를 결국 찾았다는 것입니다.
    님들은 간단히 증산도라는 새로운 종교단체로 쉽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증산도는 종교가 아닙니다.
    교(敎)가 아닌 도(道)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세상에 맞는 새로운 진리가 나왔는데 혼자 알고 도통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정상이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믿든 안믿든 진실은 밝히고 거짓은 없애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강요는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만약 제가 님이라면 무조건 벽부터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막연히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방어적 수동적 자세로 나쁘게 보려고만 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진리의 바다에 한번 빠져보고자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진리를 알고자 하는 공부하는 자의 자세가 아닌가 봅니다. ↓댓글에댓글
  17. 17. 유준수 '04.9.23 11:58 AM 신고
    :-)*울트라뽛님. 기독교본질의 문제이기 보다는 기독교인 각자의 문제이지요. 법으로 정해 놓아도 범죄자가 생기는 것처럼 아무리 교리를 바꾼다 한들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일 것입니다. 다단계도 불법이 아니라는 것을 아세요? 법의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업체죠. 다만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 모두가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지요. 그들의 잘못은 다단계를 하는 사람에게 그것으로 당신도 이것으로 돈을 잘 벌수 있다고 설득했을 뿐이지. 거짓으로 또는 억지로 판것이 아니기 떄문에 불법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말하지 않습니까? 억울하면 신고하라고... 그사람들 말에 혹한 사람만 불쌍하지요. 그들을 못하게 할 수 있는 법적조치를 만들 수 있을까요? 아마 그것을 가려내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더 빠를 것 입니다.
    목인님 결국 당신은 당신이 믿는 증산도가 진리라고 이야기 하기 위해서 다른 종교를 비방하는 우를 범하고 있어. 당신이 그렇게 기독교인들에게 잘못이라고 말하던 우를 당신도 범하고 있는거야 그렇지 않으려면 그냥 증산도의 기본원리와 개념들만 설명했어야지. 물론 당신이 증산도라서 다 틀렸다는 것이 아니야. 나도 기가 존재한다고 믿어. 수련을 통해서 기를 조절하고 다룰수 있을지도 모르지. 당신이 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증산도의 모든 것이 다 진리라는 것인가? 그렇게 말해도 기본적인 설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군... 결국 당신의 글에는 증산도로 우주의 탄생원리를 설명하고 있지안잖아?? 하나님이 이세상을 창조 하셨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벼락맞을 소리를 했으면 당신이 생각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말해줘야 할꺼아니야 거기서 왜 또 갑자기 민생고로 넘어가는 거야?? 새로운 진리가 나와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그이유나 쓰시지. 당신의 말을 쉽게 풀이하면 기독교와 불교는 오래된 것이니 없어져야 하고 증산도는 새로운 것이니 믿어야 한다는 식이잖아? 당신이 보기에는 내가 벽을 쌓고 무조건적으로 '아~ 증산도 그거 나쁜거야~' 이렇게 말하고 있나??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말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확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주길 바래 혼잣말이라면 이런식으로 리플에 달지말고. ↓댓글에댓글
  18. 18. 목인 '04.9.23 5:28 PM 신고
    :-)*준수님은 세상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가 힘든 타입이군요.
    모든 사람들과 대화에서 논리적으로 절대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님의 잘못된 종교관을 바꿔줄려고 했던 저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아이가 밥 달라고 울고 있으면 밥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네요.
    준수님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이야기 하고 더이상 답변을 안하도록 하겠습니다.
    "도(道)는 스스로 구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증산도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직접 찾아서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 단지 문제의식을 일깨워 주고 답을 찾는 방향만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http://blue7.net
    http://www.jsd.or.kr
    http://choonggyuk.com
    http://www.whatgb.com
    위 사이트를 방문하셔서 그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댓글에댓글
  19. 19. 유준수 '04.9.24 8:52 AM 신고
    :-)*ㅋㅋㅋ 이젠 나를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군~ 당신이 나를 본것도 아닌데 참으로 아무말이나 갖다 붙이고 있다고 생각하지않아?? 난 당신 생각보다 친구들도 많고 모르는 사람들하고도 쉽게 친해지는 편이데~ 항상 밝고 명랑하이까~ 난 언제나 타당한 이유에 대해서 수용하려고 노력해 분명 나도 모르는 편견이나 선입견등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한번도 '당신이 증산도이기 때문에 뭐한다 증산도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한다' 이렇게 말한적은 없는 것 같은데?? 다만 난 당신이 당신의 주장에 같다붙이는 근거들이 너무 터무니 없고 연결도 안된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야. 그리고 나를 자꾸 어린아이로 비유하는데 그런 수준 낮은 도발은 씨도 안먹힌다는 점을 알아뒀으면 해. 그리고 당신과 내글을 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가 어린아이 같이 자기가 할 말이 없으니 남탓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꺼야. 끝까지 내 질문에 이해할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나 기억하라고. 도? 도는 스스로 구하겠지. 누구에게나 자기길이있으니까. 하지만 꼭 가보지않아도 그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알 수있는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지. 이를 테면 그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말이지~ 당신과의 대화는 무척 수준이 낮아서 기억 할 만한 가치도 없군 그래... ↓댓글에댓글
  20. 20. 유준수 '04.9.24 1:48 PM 신고
    :-)*ㅋㅋㅋ 목인님 당신이 알려준 싸이트에서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했는데 당신은 봤는지 모르겠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상제님께서는 ‘도를 잘 닦는 자’와, ‘도를 잘 닦지 않는 자’로 구분하여, 명쾌하게 이분법으로 말씀하셨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증산도에서 쓰면 명쾌한 이분법이고 기독교에서 쓰면 단순무식한 이분법적 흑백논리인가?ㅋㅋㅋ
    '내가하면 로멘스 남이하면 불륜~~'ㅋㅋㅋ 이말은 이런때쓰는거야~~ ↓댓글에댓글
  21. 21. 목인 '04.9.24 3:10 PM 신고
  22. 22. 목인 '04.9.24 3:23 PM 신고
    :-)*칠성경

    칠성여래 대제군 북두구진 중천대신
    상조금궐 하부곤륜 조리강기 통제건곤
    대괴탐랑 문곡거문 녹존염정 무곡파군
    고상옥황 자미제군 대주천제 세입미진
    하재불멸 하복부진 원황정기 내합아신
    천강소지 주야상륜 속거소인 유준수 호도구령
    원견존의 영보장생 삼태허정 육순곡생
    생아 양아 호아 형아 허신형
    괴작관행 화보표 존제급급 여율령 ↓댓글에댓글
  23. 23. 유준수 '04.9.24 4:51 PM 신고
    :-)*뭔소리요? 내 이름 석자 밖에 못알아보겠네~ ↓댓글에댓글
  24. 24. 울트라뽛 '04.9.24 6:35 PM 신고
    :-)*음...
    두분이서 엠에스엔에서 함 만나보심이...
    저두 대화에 끼고 싶으나 낄틈이 없네요^^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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