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들어 최대 반(反)정부 시위라는 서울 시청 앞 집회를 두고 조그만 기업을 경영하는 한 친구는 “나도 그 자리에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IMF 땐 죽는 놈은 죽었지만, 사는 놈은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몇몇 잘나가는 대기업들 빼놓고는 모두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면서 “기업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데모하러 나서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시청 앞 집회를 휩쓴 구호는 ‘국가보안법 사수(死守)’였다.
이 친구는 그러나 “난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제발 먹고사는 일 좀 챙겨달라고 외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 나라에 보안법 문제에 목매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허구한 날 이런 문제로 콩 볶듯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안보 걱정에 밤잠을 설치다 시청 앞으로 달려간 이들이 들으면 자다가 벌떡 일어날 얘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 사회 저변의 무시할 수 없는 민심의 큰 줄기이다. 시청 앞을 가득 메운 이들은 1980년대에 흔히 보던 학생들이 아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른들이 많았다.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은 물대포를 쏴댔다. 이런 광경을 보고도 서울의 서방외교관들조차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갈 정부임을 이들도 이미 눈치챈 것이다. 외국인들 입장에서 한국 사회가 두 동강 나느냐 세 조각으로 쪼개지느냐는 ‘네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 ‘내 일’은 내정(內政)에서 보여주는 이 정부의 오기(傲氣)와 집착이 한국의 경제와 대외 정책에 미칠 영향뿐이다. 요즘 이들이 부쩍 많이 묻는 것은 북핵에 대한 한국 정부의 궁극적인 생각이다.
한국 정부는 과연 북핵을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북핵을 막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 일본과 공조할 것인가? 미국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탓에 더 궁금한 모양이다.
어쨌든 자꾸 묻는다는 건 무언가 의심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이렇게도 묻는다. 한국 정부는 결국 협상하다가 안되면 “전쟁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면서 북한의 핵 보유를 결과로서 받아들이고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하는 쪽으로 나아가려는 것은 아닌가? 우리 정부는 우리 연구원들의 핵물질 실험을 별것 아니라고 말해왔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국제사회는 난리법석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핵을 용인한 연후에 여차하면 “우리도 핵을 갖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여기에도 숨어있는 것이다.
미국이 그리는 최악의 상황은 북한 핵이 알 카에다의 손에 들어가 미국에 날아드는 경우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더욱더 절실하게 북한 핵 저지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미국의 의회가 당파를 뛰어넘어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켰는데, “북한을 자극한다”고 ‘자주적’ 비난을 하는 게 이 나라 집권당이다. 그것도 북핵이 이 나라 경제의 신용등급을 좌지우지한다고 스스로 말해온 사람들이 말이다.
정권이 내부의 경보음에 코웃음 치건 말건, 그건 그들의 자유다. 10만명이 모여 떠들어봤자 우리 편이 그보다 더 많다, 좌우로 나누어 싸우면 다음 선거도 이긴다, 이렇게 믿는 왼쪽 확신범들이 정권 안에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판단하든 말든 이 역시 그들의 몫이다. 다만 알아야 할 것은 한국은 이미 바깥세계와 하나가 돼 있는 경제이고 안보체제란 사실이다. 안에서는 다소의 무지와 오기를 견뎌줄 인내심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엄혹한 국제사회에는 그런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존재하지 않는다.
안의 비판이 정 듣기 싫으면 밖으로부터의 경보음이라도 제때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왼쪽 경보음만 골라 듣는 철 지난 시계, 고장난 자명종(自鳴鐘)부터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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