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정권은 주사파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좌파정권이다.” 신지호 박사의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주사파의 영향력”이 그렇게 강하게 작용해 고작 미국 가서 “미국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고 했겠는가? 노무현 정권이 그 동안 펼친 정책 중에 도대체 좌파적인 것이 뭐가 있던가? 감세정책, 비정규직 확대, 이라크 파병, FTA 강행, 방폐장 건설, 새만금…. 정치학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나, 노무현 정권은 우파에 속한다.
한국정치학회에 한번 물어 보시라. 박사로서 갖기에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신지호 교수는 이제라도 정치이념에 대해 초/보/적/인/ 이해를 갖출 필요가 있겠다.
사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서로 달라야 얼마나 다른가? 서로 부딪히는 의제들을 보자.
행정수도 이전? 그거야 조선일보가 일찍이 90년대에 주장하던 것이고, 한나라당도 국회에서 승인했던 것이다. 이게 좌파정책인가?
역사청산 문제를 보자. ‘민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요구는 정치학적으로는 우파적 과제에 속한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원래 이런 일은 우파가 나서서 해야 하는 거다.
국보법 폐지? 그거야 유엔이 재촉하고, 심지어 미국 대사까지 권고하는 바가 아닌가? 유엔이 코민테른이고, 미국이 소비에트냐?
노무현 정권이 좌파라는 얘기는, 심지어 그 말을 하는 한나라당 사람들도 실은 안 믿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좌파정권”이라는 말은 기술적(descriptive) 표현이 아니라 경멸적(pejorative) 표현이다. 하지만 고명하신 교수님께서 “좌파정권”이라는 말을 설마 경멸어로 사용하지는 않으셨으리라.
정치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실없이 신문지면에서 경멸이나 하고 앉았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나는 그가 “좌파정권”이라는 표현을 기술적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라 추론한다.
‘노정권=좌파정권’이라는 명제를 신박사처럼 기술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조갑제 사장과 서정갑 대령, 정형근 의원과 김용갑 의원, 군복 입고 나와 살벌한 시위를 벌이는 노인들.
정치학을 전공하셨으니, 신지호 박사님은 정치의 스펙트럼 속에서 이 분들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잘 알게다. 저 분들보다 더 오른 쪽에 누가 있을까? 아무도 없다. 거기가 오른 쪽 극단이다. 박사 학위까지 받으시고 강의씩이나 하시는 분의 정치의식이 딱 이들 수준이라는 것은 조국의 장래를 위해 심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 운동권이었다고 주사파 얘기했던가? 나도 주사파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주사파 출신들한테 바라는 게 딱 하나가 있다. 합법정당에 들어왔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 들어간 친구들만큼만 하라는 것.
내로라하는 주사파 출신도 어차피 보수정당에 들어가면 그렇게 착할 수가 없다. 절대 말썽 안 부린다. 너무 말을 잘 들어서 기성 정치인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가령 NL이건 PD건 한나라당 운동권 출신들을 보라. 그들에게서 어디 아직도 운동권 냄새가 나던가?
보수정당은 고래다. NL이든 PD든 그 안에 들어간 운동권은 새우다. 새우가 고래 뱃속에 들어가는 것을, 고래가 새우가 됐다고 표현하는가? 고래에게 새우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하는가? 가령 짜장면이 신지호 박사님의 위에 들어간다고 신지호 박사님이 짜장면이 되는가?
하루 세끼를 매일 짜장면으로 때워도, 그리하여 위장과 대장과 소장이 온통 짜장면으로 채워져도, 신박사가 ‘짜파’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짜장면도 우파 교수님의 뱃속에서는 우동과 다름없어지는 것이다.
덩치가 작은 진보정당이라면 혹 주사파 따위가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거기서도 주사파가 주도권을 잡은 것은 아니다. 역사적 전망을 잃은 자들이 대체 무슨 수로 정책정당을 주도한단 말인가?
행여 주사파가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전사회적인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정당의 운영상의 문제다.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을 보아도, 정작 주사파 출신들의 ‘사상’이 아니라, 그들의 낡은 ‘싸가지’가 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정치학 박사 쯤 되셨으면 한국 정치판의 상황에 대해 좀 현/실/적/인/ 이해를 하셨으면 한다.
전향 좌파 내세워 진보를 공격하는 것이야 조선일보가 즐겨 쓰는 수법이니 별로 새로울 게 없다. 대충 ‘좌파, 내가 해 봐서 잘 안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 전향문학이 바로 조선일보 특유의 정치적 신춘문예라 할 수 있다.
다 망해가는 보수, 가능성 있는 신인을 발굴해서 키우겠다는 의욕은 평가할 만한데, 솔직히 2004년 신춘문예 당선작은 함량이 많이 떨어진다. “1등” 좋아하는 신문에서 인터뷰 기사까지 동원하여 애써 띄워주는 “1등” 선수의 기량이 고작 이 수준이라니, 정말 대한민국의 보수문단, 위기에 처한 모양이다.
“우리나라 좌파의 시대착오”를 말하는 신지호 교수. 좌파에 대한 자신의 이해야말로 “시대착오”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한다.
좌파들이 진보정당 만들어서 의회에 진출하여,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을 놓고 싸우고 있는 판에, 언젯적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아울러 “한국 좌파는 가장 후진적인 외눈박이”라고 했는데, 사실 가장 후진적인 것은 외려 조선일보를 비롯한 우파다.
가령 “30만”이 모였다고 조선일보가 부풀린 시청앞 데모를 보라. 면도날로 배 가르고, 라이터로 불태우고, 반동 주며 군가 부르고, 성령으로 할렐루야, 육갑을 떠는 것이 정확히 70년대 5·16 광장 분위기다. 요즘은 “가장 후진적인” 좌파들도 데모, 그렇게 후지게 안 한다.
조선일보에서야 늘 연례행사처럼 하는 일이지만, 정치학 전공하는 서강대 신지호 교수도 아시겠지만, 사람 ‘전향’ 시키고, 정치적 ‘고해’ 시켜서 이념 선전에 써먹는 문화는 정치학적으로 매우 후진적 현상이다. 그 자체가 실은 인권유린이다.
이 낡은 귀순용사 문화를 21세기가 되도록 여전히 붙들고 늘어지다니, 웬 복고취향이 이토록 집요한지 모르겠다.
조선일보, 웬만하면 그냥 신문질만 해라. 왜 쓸데 없이 이런 짓 하는지 모르겠다. 안쓰럽게….
70년대던가? 어느 귀순용사는 기자회견장에서 “배고파서 왔시요!”라고 외치며 찬합을 들이밀었다. 남조선에 행여 찬합이 없을까봐, 그는 사선을 넘으면서도 그 번거로운 깡통을 들고 왔다.
과거에 북에서 온 사람들을 우리는 ‘귀순용사’라 불렀다. 성대한 환영식을 베풀어주는 대신 용사들은 ‘이념’의 도구로 소용되었다. 최근에는 북에서 온 사람들을 그냥 ‘탈북자’라 부른다.
우리 사회는 이제 그들을 이념이 아닌 인도주의의 눈으로 본다. 조선일보여, 이념이 아닌 인도주의의 관점에서, 우리 신 교수님 찬합에 밥 좀 듬뿍 담아주시라.
진중권 / 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