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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사설의 역사왜곡

 


 며칠전 식당에 갔다가 거기에 있는 국민일보 사설을 우연이 읽게 되었는데 역사 왜곡을 하는 사설이 있었는데오늘 갑자기 생각 나서 대강 어떤 내용의 역사왜곡이였는지 적어보겠습니다.


 구교의 종교탑압을 피해 미국땅으로 건너온 초기 이민자들 어쩌고 라는 구절이 사설에 있었는데 세계사를 공부했으면 최초의 이민자를 태운 메이플라워호 2년후 영국은 청교도혁명이 일어나서 장로파가 정권을 잡는다는것을 알게될것입니다. 이미 심사율에의해 이 시기 60년전부터 구교인은 영국에서 공직생활을 할수없다는 법률이 정해져있었으며 당시 의회와 군대는 장로파가 국왕과 행정관료는 국교회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구교의 탄압이 아니라 신교인 국교회와 장로파가 같은 신교인 침례,감리,퀘이언,재세례파등을 탄압해서 이주한거라고 해야지 정확하지 않을까여. 그래서 현재 미국의 종교는 위에 언급한교파들이 다수이고 장로파가 소수인 상황지져, 최초 이주 시작한지 2년후 부터 몇십년간 영국은 크롭웰에 의해서 장로파 신정 정치 였는데 초기 이민자들이 구교의 탄압으로 이주 했다는 것은 역사의 왜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국 남북전쟁 상황에서 몇배 우세한 남부의 리장군을 약체인 북군이 링컨의 기도의 힘으로 이겼다는 사설 구절도 있었는데 남부의 리장군이 명장으로 불리게 된것은 몇배나 많은 북군을 수차례 이겼기 때문입니다. 남북전쟁시 군사수 5배 포수 12배 많았던 북군이 어떻게 몇배나 약할수 있는지 전 이해가 안갔습니다.


 기나기 사설에서 단지 2문장이였지만 역사왜곡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끄적여봅니다.



written by 마왕 (cpole)
2004-10-21 03:58:41
1352 번 읽음
  총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유준수 '04.10.21 8:47 AM 신고
    :-)*리장군이 계속 이겨서 북군이 약해졌나보죠~ ↓댓글에댓글
  2. 2. RUPINAS '04.10.21 4:10 PM 신고
    :-)*링컨의 기도땜시 이겼다.. ㅋ 정말 어쩔수없는 예수쟁이들이군.. ↓댓글에댓글
  3. 3. 날쌘거북이 '04.10.21 6:45 PM 신고
    :-P* 종교가 정신을 이상하게 만들었나보네여.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나보지여. 한국것덜만 그러나? ↓댓글에댓글
  4. 4. 유준수 '04.10.23 11:54 AM 신고
    :-)*전쟁이란 언제나 한쪽이 우세 할 수는 없습니다. 이쪽에서 우위를 점하면 다른 쪽에서 병력보강하고~ 뭐 그런식이죠~ 님들 혹시 게티즈버그 전투를 알고 계십니까? 남북전쟁중에 가장 치열한 전투로 꼽히는 전투인데요. 3일간 이어졌고 총병력의 수는 북군8만8천, 남군7만5천이투입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가장 중요했던 첫날전투에서 북군은 만6천5백에서 5천5백으로 남군은 2만에서 1만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북군의 영역이었기때문에 징병도 하고 지원도 오고 해서 결과적으로 최종집계한 숫자는 북군이 앞서지만 중요한 무덤언덕 방어전에서는 북군이 적었던 것 입니다. 이런상황이 있기때문에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집계했을때는 북군이 숫자가 많았지만 모든 전투에서 시종일관 북군이 앞섰던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전쟁이 4년이나 지속되는 장기전으로 가지 않았겠죠. 북군이 무기에서 우위와 병력의 숫자에서 본격적인 우위를 점하기시작한 것은 북군의 해안봉쇄가 효력을 발휘하면서 부터였던 것 같은데요. 그때부터 급속도로 기울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탄압에 대한 것은 결론부터 말쓰드리자면 그것도 오해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이야기를하자면 청교도 혁명에 관한것도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 난감하군요. 그냥이글에 나타난 오해들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구교의 종교탄압에 의해건너온' 이란 것은 절대적으로 사실입니다. 이때 구교라는 것은 쉽게 천주교를 말합니다. 그때당시에 영국의 천주교가 2개로 나뉩니다. 교황의 카톨릭하고 헨리 8세의 영국국교회(성공회) 영국국교회는 교황대신 헨리8세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둘다 청교도들하고는 종교적 이념이 무척 다르죠. 왕이 바뀔때마다 정권이 이둘사이를 한번씩 왔다갔다합니다. 그때마다 정권을 못잡은 쪽은 엄청나게 죽어나가죠. 종교적인 핍박이기때문에 청교도들은 이쪽도 저쪽도 아니므로 어느쪽이 정권을 잡던 죽어나가고요. 그래서 청교도들중의 일부가 해외로 이주를 한 겁니다. 그게 미국의 시작이죠. 님말씀데로 그후에 청교도혁명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대부분알고 있는 것이 1차 혁명입니다. 그 유명한 크롬웰의 등장으로 청교도측이 승리하죠. 하지만 청교도 측의 내분으로 다시 2차 내전이 일어납니다. 독립파와 수평파가 한팀 장로파와 국왕이 한팀, 여기서 독립파쪽이 승리하고 의회에서 장로파를 다 추방합니다. 그래서 잔부의회가 구성되고 이들이 쿵짝쿵짝해서 왕을 죽이고 군주제 귀족원이 폐지되고 영국은 공화정이 됩니다. 여기서 장로파와 기독교의 장로교는 다른 것입니다. 청교도혁명자체가 이민간 다음에 일어난 일이고 그후에도 영국은 내전이 계속되는 상황이지만 청교도들은 초기에 인디언들과 마찰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관계가 나이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다시 돌아올 일은 없었겠죠. 어쩼거나 청교도들의 이민은 구교의 탄압에 의한 것이 맞습니다. 무엇이 거짓말이죠?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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