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파’는 1984년 처음 등장, 대학가에 뿌리를 내린 후 1986년
구국학생연맹(구학련)사건으로 서울대 등에서 100여명이 구속된 것을 비롯,
1989년 전대협의 평양 한민족축전 대표 파견 한국사회에 주이슈로 부각되다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사건으로 김영환씨 등 주사파 이론가들이 대거
구속되면서 일단락됐다. 그 이후 주사파는 ‘뉴스’에서는 사라졌다.
홍진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에 따르면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주체사상에 대해 나름대로 공감했던 부분이 북한체제와의 엄청난 괴리,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의 몰락 등으로 인해 무너지면서
주사파 인물들이 대거 전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주사파의
‘틀’을 떠나지 못한 인물들은 그 이후 일어난 정권 교체 등의 조건을
타고 한국 사회의 주요 포스트로 속속 진입했다. 일각에서는 주사파의
진출 범위가 범민련 등 일부 재야 단체와 정당에 국한돼 있다고 말하지만
노동·시민단체에도 진출했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9월 초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가
일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에서 주체사상이 포함된 과정도 주사파의
사회 진출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노조측이 사용자에 대해 평등과 자주를
요구하는 과정에 주사파 주장이 묻혀 들어갈 빈틈이 많다”는 해석이다.
물론 전공노는 12일 “우리는 박세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직위원장
강의가 주체사상에 대한 것인지 진짜 몰랐다”고 말하고, 박 조직위원장 역시
“강의 중 일부 단어나 문맥이 유사하다고 주체사상을 강연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내 장딴지가 돼지 뒷다리 닮았다고 나를 돼지로 모는 행태와 다를 바 없다”며
본인이 비(非)주사파임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정치권을 비롯해 각계에
퍼진 주사파 세력이 생각보다 광범위하다고 말한다. 한때 한총련 정책위원을
지낸 이광백(李光白)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자주(自主)라는
개념은 주사파가 아니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민주주의와 통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잘 적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성호(諸成鎬)
중앙대 법대 교수는 주사파 부활의 시점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 이후 세(勢)를 서서히 확산해오다 말기부터 노골화됐다”며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들어서고 대북 유화론이 힘을 얻어가고, 386세대가
기성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주체사상 세력이 더 확산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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