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주사파 출신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위원
"김일성.김정일 생일에 포도주 마시며 축배"
“80년대 민주화운동은 사회주의 운동.”, “우리는 혁명적 사회주의자 그 자체였으며, 소련식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거나 북한식 김일성주의 국가를 세우려 했던 강력한 이념세대였다.”
스스로 자신을 ‘골수 주사파’, ‘김일성 주의자’였다고 거침없이 고백한 최홍재(37)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은 지난달 23일 자유주의연대 창립 기념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히며 “당시 386은 김일성주의자”라고 과감히 폭로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허현준 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위원은 “당시 86번과 90학번의 한총련 중앙간부 45명은 밤마다 모여 주체사상을 공부하고 김일성과 관련된 책과 비디오물을 접하고 나서는 탄복하고 박수쳤다”고도 말해 참석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었다.
최근 1980~1990년대 운동권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인사들이 ‘자유주의연대’를 조직, ‘뉴라이트운동’ 움직임을 보이면서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과거를 고백, 성찰하고 있다.
몇몇 언론들은 이를 ‘좌파 386의 커밍아웃’이라고 하기도 하고 ‘386의 자기성찰’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이 움직임의 한 가운데에 서서 3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에게 ‘자기고백’과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최홍재 운영위원을 8일 오후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나 그의 ‘성찰’과정과 386운동권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시대정신] 편집위원이기도 한 최 위원은 좌파를 버린 대표적 운동권 출신으로, 91년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5개 조국통일위원장, 94년 한통련 조통위원장을 맡는 등 그 당시 운동권의 핵심 활동가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모두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이 북한 김일성.김정일 독재체제에 일조를 했다는 죄책감으로 북한인권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다음은 최홍재 운영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처음 운동을 접하게 된 계기는?
“신입생 신고식 때부터 선배들에 의해 운동이라고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그 당시에는 운동이 자연스러운 일상 같은 것이었다. 오히려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철저히 비주류였다.”
-본격적으로 운동권에 뛰어든 동기가 있다면
“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결심하게 된 날짜는 한창 6월 항쟁이 시작될 때인 87년 6월 15일었다. 그 계기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광주항쟁과 보도지침이었다. 그 당시 정부가 사람을 무고하게 죽이고 대통령이 영구 집권하겠다고 하는데 분노했고, 보도지침을 보고나서 까무러쳤다. 나는 중학교때부터 기자의 꿈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기자가 돼 봐야 (정부가)좋아하는 얘기만 실어줄 수밖에 없다는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내 꿈을 방향전환을 할 정도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6월 거리로 나가서 항쟁을 하다가 구류를 살게 됐다. 막상 감옥에 들어가고 나니까 운동이라는 게 심각한 인생의 문제로 다가오게 됐다.”
-당시 토론회에서 “386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라고 밝혔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대학 때 학회에 들어가면 일단 철학에세이 (맑스주의)를 공부했다. 한총련 중앙간부들이 밤에 모여 주체사상을 공부하고 김일성 관련 책들과 비디오물을 보고 탄복하고 박수쳤다는 지적은 사실이다. 또,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과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에는 포도주 마시며 축배를 들었고, 일부 자제를 못하던 김일성 주사파들은 (생일을 축하하는)플래카드도 내걸곤 했었다.”
-언제부터 김일성주의로 빠지게 됐나?
“1학년 때부터 김일성 주의를 접하지 않는다. 나는 1.2학년 때는 맑스주의를 공부했고, 이후에 주사(主思) 공부를 했다. 김일성을 신격화시키는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사인 「불멸의 역사」를 읽으면 진짜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남쪽은 이미 다 친일파이며, 미국을 등에 업고 있다고 배우게 된다. 당시 운동권에서는 이런 수령관을 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비주사 NL로 분류한다. 이들은 한민전이라는 조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사파가 바라보는 현대사에 대한 시각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운동권의 논리에 따르면, 한 사회에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이 있고 중간계급은 끊임없이 분화해가고 있다. 자본가 계급이라는 것은 조선시대는 특별히 없었는데, 일본제국주의자가 들어와 자본가 계급을 육성한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자는 친일파이며, 해방이후에는 친일 자본가들이 미국을 상전으로 받아들여 미국의 군사력 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세우고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구조로 쭉 흘러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운동권이 현대사를 바라보는 눈이며, 맑스주의의 관점인 동시에 북한의 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 자본가들은 미 제국주의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반미는 곧 해방으로 가는 것으로 본다.”
-운동권 주사파들은 북한과 어떤 식으로 내통했나?
“직접적.조직적으로 연결했는데, ‘한민전’이라는 방송을 통해 북한과 연결을 하기도 했고, 또 민혁당.구국전선 등에 인적.조직적으로 연결됐었다. 한민전 ‘공개소리’를 녹음한 것을 유인물로 만들어 뿌리면 밑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공개토론을 하면서 투쟁방침을 세웠다.”
-전향하게 된 동기는?
“우리는 ‘전향’을 ‘진화’했다고 표현하는데, 진화하게 된 가장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은 90년대에 일어난 북한의 아사사태였다. 그 당시 일어난 대량아사사태를 보면서 ‘아! 저곳은 내가 「항일무장투쟁사」와 「불멸의 역사」 그 외에 수많은 북한홍보물들을 읽으며 생각했던 이상사회가 아니라, 내가 경험하지 못한, 전두환과 비교도 안되는, 아니 비교할 수도 없는, 이조봉건시대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굳이 비교하자면 이집트 파라오체제와 비슷한 절대독재체제와 같은 체제구나’라는 것을 알았고, 지금까지 정말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느꼈다.”
-사고의 혼란이 왔을 것 같다.
“이 사태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나는 직접 독일 베를린에 전대협.한총련 대표들을 보내 평양으로 가게 했는데, 북한에 가서 그 친구들이 했던 행동 하나하나가 어쨌든 김정일 독재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학살의 공범자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데에서 오는 죄책감과 공허감 때문에 그땐 너무 힘들었다. 내가 정말 진실이고 정의라고 믿었기에 기자의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길을 걸어왔는데, ‘내가 뭔 짓을 했던가’라는 생각으로 엄청난 회의가 밀려왔고, (이 길을)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됐다.”
-전향 과정은 어땠나?
“운동권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올 당시, 지금 「시대정신」의 김영환 선배 등이 계속 자기검토를 하고 있었다. 그분들과 얘기를 하면서 북한체제는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체제라고 생각했고, 대한민국과 북한의 역사를 재조명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급론’, ‘계급투쟁론’, ‘계급독재론’…. 이런 것들은 인민을 위한다는 말을 떠벌이지만 사실은 얼마나 인민을 처참하게 만드는 것인가를 이론적으로 검토해가기 시작했다.
북한동포들에게 독재 공범자로 죄를 지었고, 한국국민들에게도 사기를 친 꼴이 됐다. 이런 책임들을 어떻게 져 나갈 것인지, 아니면 회피하고 입을 닫고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러면서 98년도에 전국연합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그런 고민을 하게 됐다.”
-386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386국회의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이것이다. ‘정말 우리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쳤던 계급론, 계급투쟁론, 계급독재론, 국유화론 이런 것에 대해서 당신들은 어떻게 극복했는가? 극복했는가 안했는가? 극복했다면 어떻게 극복했나? 그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국민들은 이것을 물어볼 권리가 있고 그들은 대답해야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한때 과거에…’운운 하면서 이념공세라고 공격하는데,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옛 동료들로부터 공격을 받지는 않나?
“여러 가지 반응이 있다. 공감반 걱정 반으로 생각해주는 친구들도 있고, ‘정말 잘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해야 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아주 소수 있다. 그러나 같이 운동을 했던 동료들(김일성주의나 맑스주의를 깊이 있게 탐구하지 않고, 그런 사상을 주도하지 않은 운동권)은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우리까지 다 맑스주의.김일성주의자라고 할 수 있나’라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자유주의연대에 386의 자기고백을 촉구한 것에 “자기가 어리석은 행동을 해놓고 도로 화를 내면서 남을 욕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바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자기성찰을 하는 게 잘못인가? 유시민 의원이나 386의원이 우리에게 ‘변절한 것이 무슨 자랑이냐’(우리는 그것을 공격이라고 하지 않고 성찰이라고 분명히 얘기한다)며 아무런 근거 없이 공격하고 ‘너희는 우파의 공격수가 된거야’ 라고 몰아붙이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은 상대방의 과거를 공격하면서 자기 과거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것은 이율배반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하지 못하고 아주 나쁜짓이다.”
-어떤 이유 때문에 열린우리당 386 의원들이 북한인권법을 반대하고 국보법 폐지를 주장한다고 생각하나?
“열린우리당 주사파 출신의원들이 아직까지 맑스주의나 김일성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할 정도로 세상물정을 다 아는 사람들인데, 김정일이 좋아서 북한인권법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핵심 지지층은 386이기 때문에, 지지층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본다.”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나도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피해자이기도 하고 응당한 처벌을 받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를 지키는 측면이 있고 인권을 탄압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즉, 위정자 입장에서 자기와 반대되는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서 처벌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측면으로 남용된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 간첩을 잡아내고 북한이 남한을 혁명하려는 것을 법적으로 막아내는 힘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개혁에 대한 공감이 이뤄져야 된다고 본다. 인권을 해치는 조항을 완벽히 없애고, 북한 김정일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활동을 강력하게 제지할 수 있는 대체입법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열린당은 형법대체를 거론하는데, 이 법은 ‘테러방지법’이라는 특별법처럼 최소한 대체입법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386의 장단점을 평가한다면
“그들은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굉장히 많다. 특히 사회약자에 대한 애정이 많고, 항상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책임감이 있다. 그런 것들을 사회가 긍정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면 굉장한 큰 재산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단점은 진짜 ‘빨갱이’가 된 것이다. 맑스주의나 김일성 주의에 따른 사회건설은 이미 다 패망을 했는데도 그런 이념 외에는 다른 이념을 풍부하게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사고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그들의 에너지를 사회가 흡수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그들을 공격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386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흡수하고 싶은 바램인데, 유시민 같이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전향하지 않은 386 의원들에 하고 싶은 말?
“그들은 80년대 운동을 주도했고, 주도이념은 분명히 김일성주의, 맑스주의였다. 그걸로 민주화운동을 전개했고, 그래서 그런 정치성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고민과정과 생각의 흐름과정을 명확히 국민들에게 밝혀야 한다. 이건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분명히 ‘나는 어떤 사상을 갖고 있고 어떤 정책을 펼 것인가’에 대한 자기 정보를 드러내야 한다. 그들은 ‘나는 개혁세력’이라고 외치는데, 그 개혁이라는 잣대도 불분명하다. 사회주의를 개혁하자고 할 때, 사회주의를 지키자는 사람은 보수가 되고 사회주의를 고치자자고 하는 사람은 개혁파가 된다. 따라서 개혁이냐 보수냐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들은 이런 요구에 대해 ‘왜 이념을 자꾸 이야기 하느냐’면서 색깔론으로 매도해버리는데, 정치인은 이념이 핵심이다.”
-자유주의연대는 올드 라이트(Old Right)를 배척하고, 뉴 라이트(New Right)를 지향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올드 라이트는 어떤 것인가?
“그 기준은 사상으로 한다. 과거에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을 자유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그 당시엔 ‘잘 살아보자’는 국가주의와 ‘공산주의는 안돼’라는 반공주가 핵심적 모토였다. 그들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민주주의를 확장시켜야 됐는데, 오버(지나친 것)를 한 것이 큰 과오라고 본다. 자유주의연대는 이런 국가주의와 반공주의를 올드라이트, 자유주의를 뉴라이트로 본다.”
-자유주의연대 창립기념 토론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도 민주주의에 일조했다’고 평가했는데….
“최소한 민주주의가 되려면 글자를 알아야 한다. 50년대 이승만 자유당 시절 때는 문맹률이 높았을 때였기 때문에 그땐 민주주의를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도 노예들이 다 집안 살림을 하니까 시민들의 민주주의가 가능했지 당장 굶어죽을 판에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나? 경제가 받쳐주지 않는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기여를 했으며, 유신이라는 과오가 있지만 80점 정도의 평가를 해주고 싶다.”
-정계에 진출할 생각은 없나?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갖고 있는 신념이 있는데, 난 한번도 선거를 목적으로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는 대단히 안타깝다.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다. 노선이 왔다갔다 하지 않는가. 일관성이 없어도 좋은 쪽으로 바뀌면 되는데 안좋은 쪽으로 바뀌는 것 같다. 요즘에는 북한문제는 정리가 돼가는 것 같다. 親김정일로 말이다. 임기가 끝났을 때 본인 스스로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걱정스럽다. 요즘 김정일을 변호하고 다니는데, 국제사회에서 큰일 났다. 무조건 김정일 살리는데 모든 힘을 다해야하는 상황으로 자기를 몰아넣어버리고 있는데, 김정일은 이미 죽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김정일로부터 북한을 민주화하는 문제에 대해 남한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할 것이다. 특히 386들이 북한의 현실적이고 객관적 실체를 많이 알고 자기성찰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쏟을 생각이다. 한 5년 정도 이런 운동을 하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북한 인권에 대한 노력도 열심히 하고 자유주의연대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힘을 쏟을 것이다.

비씨파크 주식회사, 대표이사 : 박병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박병철
사업자등록번호 : 114-86-19888 |
본사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73길, 42, 1307호
전자우편 : master@bcpark.net |
(전화전 이용문의 게시판 필수)
전화: 02-534-982구(09:00~18:00) |
팩스: 02-535-155구 |
긴급: 010-9774-988삼
ㆍ저작권안내 : 비씨파크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에 보호를 받습니다. 단, 회원들이 작성한 게시물의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비씨파크에 게재된 게시물은 비씨파크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게시, 판매, 대여 또는 상업적 이용시 손해배상의 책임과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ㆍ쇼핑몰안내 : 비씨파크는 통신판매중개자로서 상품 주문, 배송 및 환불의 의무와 책임은 각 판매 업체에 있습니다.
Copyright ⓒ 2000-2026 BCPARK Inc.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