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론’ 메뉴밖에 없는 한나라 - 이기명
2004년 3월12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개처럼’ 의사당에서 끌려 나갈 때 박근혜 대표는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되자 한나라 당 의원들은 승리한 독립군처럼 만세를 부르고 환호했다. 병든 사슴을 사냥한 늑대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속으로 외쳤을 것이다.
‘노무현! 너 이제 종 쳤어!! 이제 우리 세상이야.’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 당 의원들이 젖었을 보랏빛 꿈.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도중하차 하고 선거가 다시 치러지면 대통령은 내가 하고 아무개는 국무총리, 당신은 국정원장, 너는 무슨 장관, 무슨 청장 등등 미리미리 제각기 감투를 쓰고 있었겠지. 박근혜 대표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떠 올리지 않았을까.
노무현의 시대는 끝나고 한나라당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을 한나라당 의원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처절한 통곡이 그들에게는 축배의 노래로 들렸으리라. 부어라. 마셔라. 불러라. 불러라. 축배의 노래를…
그러나 바로 그 날 밤. 한나라당 의원들은 눈이 뒤집혔을 것이다. 다음날엔 소름이 끼쳤을 것이다.
어!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운 구름 같은 인파, 기름을 몸에 붓고 분신을 기도하는 시민. 그 때부터 연일 세종로로 노도처럼 밀려드는 노한 시민들, 분노의 함성. 전국을 휩쓰는 탄핵규탄 시위. 한나라당 의원들은 벌벌 떨었을 것이다. 탄핵이 물거품 되는 게 아닌가.
운명의 4월15일.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을 과반수 의석으로 만들어 주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묻는다.
그렇게 될 줄 몰랐는가. 몰랐을 것이다. 알면서 그런 바보짓을 할 멍청이는 없을테니까. 그들이 저지른 멍청한 짓, 바로 그것이 한나라 당의 한계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희망이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연달아 빵빵 지는 것도 바로 그런 멍청이들의 사고가 ‘한 나라 당’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수성찬도 세끼만 먹으면 싫증이 난다. 색깔론이 진수성찬인가. 불량메뉴 중에서도 최악인 색깔론을 노루꼬리 삼년 우려먹듯 하는 한나라당의 수뇌들.
좋다. 나이 먹은 수구들이야 보수색깔론과 지역감정에 매달려 죽을 때까지 국회의원 해 먹으려고 할지 모르지만 앞날이 구만리 같은 창창한 젊은 청치인들은 무슨 꼬락서니란 말인가.
한나라당인들 왜 사람이 없으랴. 이름을 대면 다 아는 이름이지만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인물들이 있다. 어쩌다가 한나라 당에 들어가 죽치고 있는가. 돼지우리 속에 진주라는 생각도 들고 시궁창에 장미라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돼지우리의 진주와 시궁창의 장미가 제 목소리를 내야만 한나라당이 살 수 있다.
지금 열린우리당의 이철우 의원이 ‘색깔론삼중주’의 광풍 앞에서 떨고 있다. 법관을 지냈다는 머리 좋은 세 명의 ‘한나라 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연주되는 ‘색깔론삼중주’. 주영성 김기현 박승환 등 세명이 연주자며 지휘는 주성영이다.
주성영 의원 가라사대, “이철우 의원은 92년 조선노동당에 현지 입당했으며 지금까지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12월8일 국회 본회의 5분 발언)
‘지금까지’ 라는 말은 ‘현재 진행형’이다. 주성영의원의 말은 바로 지금도 이철우 의원이 간첩이라는 것이다. 공안검사 출신의 주성영의원이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자신 있게 발언한 이철우 의원의 간첩 단정발언.
이철우 의원은 도리 없이 간첩이 된 것이다. “정치적 수사”니 “추론을 했다”느니 해명을 하지만 그걸 해명이라고 하는가. 국회의원이 국민들을 앞에 놓고 말장난하자는 것인가.
이철우 의원에 대한 ‘색깔 칠하기’ 작전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는 모르지만 한 한나라 당의 박근혜 대표도 작심한 듯 거들었다.
“(전략)이철우 의원은 과거에 대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속았다는 것인지, 사상전환을 한 것인지 밝혀야한다.”
이철우 의원은 형기를 다 치렀다. 사면도 됐다. 국민의 심판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무슨 얘기를 하란 말인가. 적어도 제1야당의 대표 쯤 되면 금도를 지켜야 한다.
박근혜 대표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 때 공산주의자였다.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이 되었고 유신헌법으로 종신대통령을 꿈꾸다가 김재규에 의해 시해됐다.
그는 자신이 한 때 공산주의자였음을 국민에게 고백하고 사과한 적이 있는가. 남로당원으로서 북한에 대해 당연히 충성을 맹세했을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속았다고 고백을 했으며 진심으로 사상전환을 했다고 했는지 박근혜 대표는 딸로서 아버지로부터 사상전향 사실은 들었거나 직접 확인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참으로 황당하구나. 내가 글을 써 놓고도 스스로 참담해 진다. 박근혜대표도 나처럼 참담한 심정이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이제 박근혜 대표에게 묻는다. 박근혜 대표가 이철우 의원에게 한 요구나 지금 내가 박대표에게 한 요구나 다른 것이 무엇인가.
상대에게 대답을 강요해도 씨가 먹힐 요구를 해야 한다. 도대체 박근혜 대표 곁에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는가. 박근혜 대표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색깔론맹신추종분자’들로부터 해방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바로 보고 정치를 바로 보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 온대로 살아야 한다. 도둑놈이 경찰관처럼 행세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의 원내 대표를 하고 있는 김덕룡 의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머리가 숙여진다. 그의 과거는 민주화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칼바람 같은 유신 독재 밑에서도 흔들림 없이 민주화 투쟁을 했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다.
긴급조치 위반이 무엇인가. 민주인사들에게는 훈장이다. 긴급조치와 국가보안법. 이것이 마치 한 묶음이 되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바로 악법으로서의 반민주적 동질성 때문이다.
김덕룡 의원에게 묻는다.
자신이 걸어 온 길과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은 같은 길인지 다른 길인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자신의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당한 고통과 이철우 의원의 고통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한나라당의 원내 대표란 이유에서 밝히지 못한다면 그의 살아 온 빛나는 인생은 빛이 바래고 위선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내 나이 60이 넘으면 인생의 마무리를 생각해야 한다. 태어날 때야 맘대로 못하지만 철든 뒤 죽음의 선택은 자신이 할 수 있지 않은가. 역사의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국회수첩을 뒤적이다가 한나라 당 의원들의 면면을 보니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어쩌면 이렇게 학력 좋고 경력 좋고 인물 좋은가. 최고다. ‘짱’이다. 그러다가 문득 허탈해 지면서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학벌과 경력이라는 것도 때와 사람을 잘 만나야 되는 것이구나,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총리를 앞에 세워놓고 이죽거리면서,
“총리 맞습니까.” 총리인줄 모르고 불렀나.
“이해찬 선배 나오십시요” 해서 나오게 하고는,
“들어가십시오”
나도 방송에서 밥을 벌어먹었기에 더욱 얼굴이 달아오른다. 부끄럽다. 옆에 개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고진화 의원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과연 그가 있을 자리가 저긴가.
한 사람씩 떼어 놓고 보면 나무랄 데가 없는 것 같은 데 지역주의라는 불치병과 ‘색깔론’으로 중무장한 지도부의 압력 아래서 좋은 머리 짜 내어 만들어 냈다는 것이 이번에도 역시 ‘색깔론’이다. ‘색깔론’이 어느 때 식단인가. 너무 오래 되서 곰팡이가 슬고 개도 안 먹을 메뉴를 국민들에게 먹으라고 강요하니 국민을 썩은 음식이나 먹는 바퀴벌레로 아는가.
하긴 이것이 바로 한나라당이 희망 없는 정당이라는 첫 번째 이유가 되기도 하고 만년 야당을 예고하는 확인서이기도 하다.
큰 소리 빵빵 치다가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씩이나 나가떨어지고 ‘차떼기당’이라는 정치사상 불후의 역사적 기록을 남긴 한 나라 당. 집권 여당과 싸울 무기라고는 낡고 찌든 지역감정과 또 그거냐 하고 진저리를 치는 고색창연한 ‘색깔론’.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이제 완전히 구제불능인가. 집권희망을 포기해야 하는가. 죽었다 깨어난다는 비장한 결심과 각오가 없이는 집권은 무망하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확 뜯어 고쳐야 한다.
훈수 좀 두겠다.
우선 국가보안법 폐기에 앞장을 서야 한다. 박근혜 대표는 국가보안법이 폐기된 후 국민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를 해야 한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대신 사과를 하느냐고 반발하지 말고 사과를 해야 한다. ‘제가 대신 사과 할께요’ 하면서 사과를 해라.
국가보안법과 긴급조치 등등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민주인사들, 그리고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사람들의 가족들,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 당’ 대표로서의 사과, 지역감정을 부추긴 과오, 시도 때도 없이 들먹인 ‘색깔론’ 이런 것들을 모두 사과해야 한다.
박근혜 대표가 사과를 한 후에는 한나라당 전 의원들이 잘못을 빌어야 한다.
각 방송사에 연락을 해서 생중계를 하도록 하고 국회의사당 층계에 모두 서서 대 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 보안법을 껴안고 매달리던 것부터 이철우 의원에 대한 색깔시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발목잡기도 사과해야 하고 앞으로 다시는 ‘색깔론’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대 국민 약속을 엄숙하게 해야 한다.
아마 월드 컵 4강 진출 이상으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것이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으로부터 희망을 볼 것이다. 한나라당은 즉시 여론조사를 해 보라. 아마 열린우리당을 몇 배 차이로 앞 설 것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한나라당은 겁이 나는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엄청난 일이기에 겁도 날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우리 정치사상 초유의 일이다.
컬럼부스의 달걀은 인간 모두에게 교훈이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자. 지금까지 정치인들은 국민을 너무 학대하지 않았는가. 양심도 없는가. 부끄러움도 없는가.
정치인들이 부끄러움을 회복하는 것은 바로 잃어버렸던 인간성의 회복이다.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한단 말인가.
제발 우리 국민도 사람 같은 정치인들이 하는 정치 같은 정치 좀 보고 살게 해 줘라.
<출처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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