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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유월절이 니케야회의에서 폐지되었는가

 

안상홍의 증인회(하나님의 교회)는 니케야회의에서 유월절이 폐지되었다고 주장을 한다.


초대교회 기독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켰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의 홈페이지는 교회사적인 문헌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일반적으로 초신자들은 교회사에 어둡기 마련이다.


AD 325년 니케야회의에서 논의가 된 것은 유월절이 아니라, 부활절에 대한 것이었다.

안증회는 왜 교회사까지 조작을 하는가?


초대교회는 이미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

바울은 날과 달과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하는 갈라디아 교회에게 바울 자신의 수고가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며 분노의 서신을 보내고 있었다.

초대교회에서 지킨 것은 유월절이 아니라 부활절이었다. 안증회 교인들은 기독교서점에 가서 교회사책을 조금만 읽어보면 곧 알게 된다.

교회사 책을 볼 시간이 없으면 인터넷에서 “부활절”을 검색하면 수도 없이 많은 자료가 나올 것이다.


동로마교회와 서로마교회는 부활절의 날짜로 서로 대립을 하였다.

동로마교회는 부활절이 유월절 기간이 되어야 하므로 음력(유대력)으로 지키자고 주장하였고, 서로마교회는 예수님이 금요일에 돌아가셨으므로 부활절을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이 두가지의 견해를 절충시킨 것이 바로 니케야회의이다.

즉 유월절이 아니라 부활절에 대한 토론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부활절을 춘분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지키되 특정한 날을 정하지 말고 각자 자유롭게 지키자고 논의하였다.

그러나 동로마교회와 서로마교회의 부활절이 서로 심할 때에는 5주 이상의 차이가 나게 되었고, 이에 대한 수정안으로서 음력과 양력을 서로 절충시켜 3월21일로 고정된 춘분을 기준으로, 첫 만월(보름달) 다음의 일요일을 부활절로 하자고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부활절은 3월21일에서 4월25일 사이의 일요일로 첫 만월 이후의 날로서 해마다 그 날이 바뀌게 된다.


과연 니케야회의에서 유월절이 폐지되었는가?

니케야회의는 삼위일체 신론에 대하여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가 격돌한 회의이며, 부수적인 문제로서 부활절의 날짜를 정한 회의이다.

이미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 유대인들만이 유월절을 지켰다.

유월절의 참 형상이신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으로 승리하셨으며, 율법의 마침을 이루셨는데, 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적인 그림자를 지키는가?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히10:1-2)


안상홍의 증인들은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며, 유월절을 지켜야만 죄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매년 드리는 제사는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유월절이 온전한 제사라면 매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제사로서 그 효과는 영원하며, 두 번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17-22)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


이미 예수님께서 온전하게 이루신 구속과 영생을 감추어 버리고, 유월절을 지켜야만 영생을 이룬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곧 안증회이다.

그것도 식당에 밥을 먹다가 죽은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그 부인 장길자를 하나님어머니로 숭배하는 이단들이 곧 안증회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자칭 하나님이 수십명이 있으며, 안증회(하나님의 교회) 역시 그들 유사종교집단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 문헌적인 증거와 자료를 보자.


## 부활절 축제에 대한 최초의 문자기록은 부활절의 정확한 날짜를 결정하려는 "부활절 논쟁"에 나타나는데, 이는 A.D.154년 서머나(Smyrna)의 감독 폴리갑(Polycarp)과 로마의 감독 안티크투스(Anticetus)사이의 서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Euseb. Hist. V 23-25). 그러므로,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부활절 축제가 기독교회 전체에 걸쳐 일반적으로 지켜지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참고문헌 kcm.co.kr 성서대백과. 기독지혜사)


이 폴리갑과 안티쿠투스의 부활절 논쟁을 안증회(하나님의 교회) 홈페이지는 유월절논쟁이라고 슬그머니 바꾸어 버렸다. 마치 초대교회에서 폴리갑과 안티크투스가 유월절을 지키자고 논쟁을 한 것처럼 교회사를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주후 154년에 이미 부활절을 어느날에 지키느냐는 것에 대해서 로마교회와 서머니교회가 논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당시 전기독교 교회가 154년에 이미 부활절을 지켰다는 증거인 것이다. 다만 날짜만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다음 교회력에 관한 부활절을 살펴보자.... 동로마와 서로마가 갈등한 것이 과연 유월절인지 부활절인지를 말이다.


호남신학교 김충환 교수 (교회력에 관한 고찰 -부활절)


## 이 부활절은 초대 설교자들의 전도 활동의 원동력이었으며 동시에 설교의 핵심이 되었다. 2세기 후기에는 이 부활절을 언제 지키느냐가 논쟁이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세상의 구원이 유대의 절기인 유월절과 연결된 후에, 이것은 기독교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지켜지게 되었다. 즉 오늘날까지 이 부활절은 달력으로는 유대교의 유월절과 연결되어있다. 서아시아에서는 부활절을 유대교의 유월절인 Nisan 유대인들의 월력을 지키고 있다. 이에 따라 매 달은 초승달로 시작된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새해를 Nisan월로 시작하고 있다. 이 Nisan월 14일 즉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에 이들은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 월 14일에 시작하였다. 이에 반해 로마에서는 Nisan월 14일이 지난 후 주일을 부활절로 지켰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날을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부활절이 음력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은 주중의 날에 관계없이 3일 후에 지켜졌다. 이들은 성금요일을 Nisan월 14일이라 믿었다. 이에 따르면 한 예로서 성금요일(Nisan월 14일)이 당해 화요일로 되면 부활절은 목요일에 지켜졌다.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자들은 "Quartodecimans(열 넷째 날장이)"라 불리었다. 이에 반해 서방에서는 부활절이 언제나 일요일 즉 부활일에 지켜져야 하며 십자가 처형은 언제나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고 여기어졌다. 서방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중(週中)의 날이 중요하였고, 동방교회에는 달(月)이 중요시되었다. 이 분쟁은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해결되었다. 여기서는 달과 주중의 날이 다 인정되도록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을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 주일에 지키기로 하였다.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때에 온다는 것과 또 언제나 주일에 온다함을 양측에 확증시켜주었다. 그러나 춘분을 정하는 데에도 난점이 생김에 따라 3월 18일부터 25일 사이의 여러 날자가 사용되어 상이한 부활절을 지켜왔다. A. J. Wegman, Liturgie in der Geschichte des Christentums, 74-76. Josef Andreas Jungmann, Der Gottesdienst der Kirche, 201; Edward T. Horn, {교회력}, 161-162.


이러한 날짜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부활절에 주님께서 고난 가운데서 역사 하시고 또한 부활하심으로 완성하신 그 주님의 구원하심을 감사하며 또한 기리고 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주님의 부활은 그들 생활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 부활절은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까지 지켜졌다. 이와 함께 주님의 부활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자리잡도록 7주간 동안 부활 주간이 계속되었다. 부활절은 토요일저녁 예배로 시작하였다. 이 예배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을 감사하며 밤새 진행되었고, 성서낭독이 있었으며, 세례식과 성찬 성례전이 거행되었고, 아마도 촛불예배로 진행되었다. Horace T. Allen, A Handbook for the Lectionary, 28.



2005-01-09 17:03:48
1496 번 읽음
  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남은자 '05.8.2 6:51 PM 신고
    초대 교회는 유월절을 지키고 있었다
    고전 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

    자꾸 성경에 있는 새언약의 가르침을 이상한 논리로 없애고 부인하려 한다면 대체 누구 편에 선 자입니까? ↓댓글에댓글
    • ㄴ 1. 정말인가? '05.8.6 11:21 PM 신고
      쉽죠?
      마귀 편에 선 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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