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은 동지였다. 동지는 24 절기 중 하나로 일 년 중 밤이 가장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밤이 가장 길다고 하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새해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동지를 '작은 설'이라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설날에 떡국을 먹듯 동지에는 '팥죽'이라는 특별한 음식을 먹는다. 동지에 팥죽을 쑤어 차례를 지내고, 나쁜 것과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광과 마루에 팥죽을 떠다 놓거나 집 안 곳곳에 뿌리기도 했다.
귀신이 팥죽 색깔인 붉은 색을 가장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또 부적을 새겨 귀신을 쫓기도 했는데, 보통 뱀 사(蛇) 자를 써서 기둥에 거꾸로 붙였다. 동지에는 새해에 필요한 달력을 만들어 신하에게 나눠 주던 좋은 풍습도 있었다. 이 날에는 또 웃어른에게 새로 지은 목이 긴 버선을 바쳤는데, 이는 동지부터 해가 토끼 꼬리만큼 길어진다고 하여 동지의 기운을 받고 건강하게 사시라는 뜻이 담긴 것이었다.
우리의 동지와 비슷한 유럽의 명절은 크리스마스다. 유럽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예수가 탄생한 날로 여겨 어느 행사보다 즐겁게 지낸다. 사실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기록상 정확히 알 수 없으니, 크리스마스와 예수 탄생일은 거리가 있는 셈이다. 다만 초기 기독교인들이 다른 지역의 동지 축제와 태양 숭배(崇拜) 신앙을 받아들여 동지를 예수의 탄생일로 삼고 축하했던 것이다.
또 농경 민족이었던 로마 사람들은 농사 신을 위한 축제를 해마다 12월21일부터 31일까지 벌였는데, 축제 기간의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25일을 '태양이 부활하는 날'이라 생각하여 더욱 크게 기념하였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바로 이런 풍습들을 이어받은 서양의 풍속이다.
우리 나라의 동지나 서양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모두 새해를 맞이하는 풍속에서 비롯됐지만, 서양의 도전(挑戰) 문화와 동양의 순응(順應) 문화의 만남에서 크리스마스는 더욱 큰 축제로 변하고 우리의 동지 민속은 사라지고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우리 것은 소중하지 않고 남의 것만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지 풍속 하나만을 두고 볼 때도 우리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동지가 지나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어린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낸 것도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겨 달라는 당부의 뜻인 것이다.
이종철 국립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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