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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시스템’ 확립도 개혁이다

 
친구들 사이에 돈을 걷어야 할 일이 생겼다. 1년에 한번 만나기도 어려울 정도로 소원한 친구가 전화를 하더니 대뜸 “너, 한 30만원쯤 내야 되겠다”라고 했다.
내가 “지금 운전 중이니까 이따가 집에 가서 내가 전화할게. 그때 계좌번호 알려주면 인터넷뱅킹으로 바로 입금하마”라고 선선히 답했더니, 그 친구는 깜짝 놀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2003년 11월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 현장검증에 나선 서울지검 직원들이 승용차에 돈상자를 싣고 있다.

/김대진기자

너는 어떻게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냐? 내가 요즘 며칠 동안 사람들한테 돈 내라고 전화하다가 아주 인생관이 바뀌어버렸다. 술 마실 때는 그렇게 많이 나오던 놈들이 돈 좀 내라니까 선선히 내겠다는 놈이 없는 거야. 자기가 왜 돈을 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라는 놈들도 있는데 이건 지금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냐?”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운동권은 돈 내는 데에 익숙하거든. 우리는 예전부터 후배들이 찾아와서 ‘징역 좀 가겠다는데 화염병 값 좀 못 보태주냐? 수배된 친구들이 길을 헤매다 철길을 베고 잠을 자야 하는 형편인데 라면값 좀 못 보내주냐?’고 할 때마다 여러 번 내고 살았거든. 지금도 전○○기념사업회, 노○○교육센타, 진보○○… 내가 굳이 헤아려보지 않았지만 아마 열 군데쯤은 내고 있을 거다. 그게 다 푼돈에 불과하지만…. 나는 운동권에서는 그래도 좀 버는 편에 속하거든.”

내친 김에 나는 전화통에 대고 친구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너 미국 같은 나라에도 그런 ‘기부문화’라는 게 있다는 거 아냐? 가난하지만 끼니 굶지 않을 만큼 사는 사람들이 자선단체나 시민단체에 돈 한푼 내지 않고 살면 아주 몰상식하고 무식하고 천박하고 상종할 수 없는 인간 취급당하는 그런 정서가 있어. 부시 같은 놈이 대통령을 해도 그 사회가 지탱되는 힘은 어찌 보면 그런 데에서 나오는 거야.”

기부문화나 나눔운동은 사실 사회 진보를 막는 측면이 없지 않다.
엄청난 재해가 발생하면 그 재해를 당한 사람들을 돕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런 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의 제도와 구조를 정비하고 마련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해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철저하게 추궁하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하는데, 대대적인 모금운동 분위기 뒤편에 책임에 대한 추궁이 슬그머니 숨어버리는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TV에서 수재민 돕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 카메라 앞에 줄 선 사람들이 모금함에 돈을 넣게 하거나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의 집을 고쳐주면서 감동받게 하는 프로그램들을 “고도의 감성 사기극”이라고 혹평하기까지 한다.

미국과 달리 유럽의 나라들에서는 기부문화보다 제도의 문제를 더욱 중요시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돕는 것보다 그 사람들을 위한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마련되는 것을 중요시한다. 사람들에게 이웃돕기 성금을 내라고 독려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연대, 조세 정의, 분배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나라에 활발하게 모금운동이 벌어지는 뉴스를 보면서도 “응, 저건 미국식 문화야. 저렇게 하는 것보다 저런 좋은 뜻을 제도화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는 거야.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일 것이 아니라 평소에 일상적으로 고통을 분담하는 제도를 정착시켜야 하는 거야. 기부나 나눔은 사회적 연대나 제도가 만들어진 다음의 일이지”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나 우리 사회에 일상적 기부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은 유럽 선진국처럼 사회 문제에 대한 구조적 인식의 결과가 아니라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조차 일천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남과 경쟁해서 이겨야만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제도권 교육부터 시작해 ‘연대’보다 ‘경쟁’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평생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는 기부문화가 자리 잡도록 하는 것조차 진보의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

구세군 모금냄비를 아무 관심 없이 지나치거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추운 바람을 맞으며 모금함을 들고 서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지나치는 사람보다는 지갑을 뒤져 천원짜리 몇 장이라도 꺼내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훨씬 유익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도 지난해 막바지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있는 구세군 모금냄비에 가끔 돈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커다란 모금함을 들고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학생들에게 “학생이 추운데 고생하는 것 보고 마음 아파서, 그 정성 때문에 넣는 거야”라고 말하며 푼돈이라도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항상 뒤통수를 잡아끌었다. 이러한 선의들이, 특히 우리 사회의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의 정성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을 더는 데에 쓰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개혁이다.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건전한싸이코
2005-01-11 13:20:07
932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도마령 '05.1.12 5:31 PM 신고
    :-)*나눔도 시스템이 잘갖추어져야 낼마음이 생기는거죠 .자신이 낸 성금이 이리저리 딴용도로 쓰이는걸 볼때 누가 내고 싶겠습니까 . 해마다 수해때면 성금이다 뭐다 걷지만 그돈이 수해민에게 가는건 극히 일부라는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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