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입수] |
평양發 괴문서 ‘김정일, 김일성을 죽이다! ’ |
“‘남조선혁명 임박’ 거짓보고 들통나자 치밀한 기획·살해” |
![]() |
● 사망 이틀 전 김일성, 재미교포에게 “100살은 넘게 살 것 같다” 장담 ● 1994년 7월8일 새벽 2시에 대로하게 할 사람은 김정일뿐 ● 묘향산특각에 새로 임명된 젊은 이비과 의사 한 명밖에 없어 ● 기상조건 악화로 의료진 실은 직승기 회항, 산사태로 구급차 되돌아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 김일성, 사망 하루 전 식량난 보고받고 놀라 “사실인가?” 반문 |
![]() |
![]() |
지난11월 중순 일본 ‘산케이신문’은 ‘김정일·김일성의 10대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반북(反北) 유인물 내용을 서울발로 공개한 바 있다. ‘산케이신문’은 이 유인물이 탈북자인 전 여광무역 사장 김덕홍씨가 제3국을 통해 입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의 유인물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목적으로 작성됐는지, 또 사실 여부에 대한 검증절차는 없었다. 이보다 앞서 8월 말 ‘신동아’는 국내 정보기관과 대북 정보통을 통해 북한에서 유포되고 있다는 또 다른 반북 유인물을 입수했다. ‘룡천역 폭발사건은 김정일 자작극’이라는 제목으로 A4용지 10쪽 분량이었다. 고위층 출신 탈북자와 정보기관 관계자에게 유인물 내용의 검토를 의뢰한 결과, 북한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북한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문장형태도 북한보다는 오히려 남한의 것에 가깝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신동아’가 최근 입수한 ‘김정일, 김일성을 죽이다!’라는 제목의 유인물은 앞의 두 유인물과는 내용과 형식이 사뭇 다르다. 컴퓨터나 타자기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직접 쓴 필사본이고, 문장이나 단어, 문장부호 등이 전형적인 북한식인 것. 한 대북전문가는 “문장이나 단어가 완벽한 북한식이고, 내용과 문장력, 선택한 어휘 등으로 미뤄보건대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지식인의 솜씨로 보인다. 웬만한 지위에 있는 인물이 아니고는 북한 사정을 이 정도로 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 정보기관 출신의 한 탈북자는 “문체가 매끄러울 뿐 아니라 북한 맞춤법상 오·탈자가 전혀 없다. 또한 이 글은 하루아침에 쓴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고심하고 수정한 끝에 나온 작품일 것”이라며 “작성된 시점이 7월인데, 7월 초에 평양에서 벌어진 상황을 자세히 기술한 것을 보면 북한 내부에서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1993년에도 평양에서 정권을 비방하는 유인물이 살포돼 보위부에 한바탕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당시 유인물도 필사본이었는데, 보위부는 필체를 조사하기 위해 모든 인민의 필적을 취합하려 했으나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도 유야무야됐다고 한다. 통제가 제아무리 심한 북한 사회라지만 불법 유인물을 제작, 유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北 고위층 아니면 알기 힘든 내용 고위층 출신 탈북인사도 이 유인물에 대해 신뢰할 만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 탈북인사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최고위급 탈북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유인물은 북한식 문장과 문장부호로 작성됐고, 모든 서술(내용)이 사실과 대부분 일치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문장부호의 경우 ‘?!’는 북한에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순 의문이 아닌 감탄이나 비꼬는 뉘앙스를 포함할 때 쓰고, ‘《 》’는 김일성의 교시나 말을 인용할 때 반드시 붙이는 부호인데, 이 유인물에서는 단 한 번도 사용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 유인물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일성 사망 당시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죽음과 관련해 어떤 언급도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고위층 인사들도 대부분 북한 정권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한 내용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해외에 있던 나는 출장 온 북한 상층부 인사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줘 김일성의 죽음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때 들은 내용이 이 유인물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이 탈북인사는 특히 유인물 내용 가운데 ‘김일성이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당시 기상악화로 의료진을 태운 직항기가 회항했고, 산사태로 구급차가 되돌아갔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여러 차례 들은 이야기인데 정말 어이없다. 김일성이 죽게 생겼는데 기상악화나 산사태를 이유로 의료진이 되돌아갔다는 게 말이 되느냐. 누구라도 당연히 목숨을 걸고 김일성에게 갔어야 했다”며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직항기 회항이나 구급차를 되돌리라고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일밖에 없다”고 유인물에서 제기한 것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이 탈북인사는 필사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과거엔 누구의 글씨인지 확인이 가능했고, 복사기도 마음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에 불법 유인물을 제작, 유포하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완벽한 통제가 어려워지고, 내부 불만세력이 커지면서 소규모지만 상층부와 연결된 ‘지하삐라조직’이 활동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1980년 중반 평양건설대 교원이 ‘김일성에게 보내는 10가지 충고’라는 제목의 글을 중앙당에 투고했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당시 이 교원은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글을 써 필체를 조작했지만 당국이 필적을 끈질기게 추적해 결국 발각됐다.
|
그런데 김일성에 대한 이런 엄중한 테로행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위국내에서는 그 누구도 문책을 당하지 않았다. 그 죄는 고스란히 호위국 청사주변의 고층아빠트에서 살고 있던 재일동포들에게로 돌아갔다. 사실 그들은 북새거리 건설당시 막대한 일본 돈을 김정일에게 바치고 그 아빠트에 들어 살게 된 사람들이였다. 김정일은 그런 재일귀국동포들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워 하루아침에 광복거리에 있는 호위국아빠트에 내몰고 그곳에서 살던 호위국 가족들은 재일귀국동포들이 살던 아빠트에 끌어들이도록 조치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김일성에 대한 암살음모가 이미 김일성이 급사하기 몇 달전부터 김일성의 가장 가까이에서 암암리에 준비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김정일은 이미 70년대에 《충신도 곁에 있고 간신도 곁에 있다》는 ‘명언’같지도 않는 명언을 즐겨쓰면서 ‘음모군, 간신배’들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력설을 해왔는데, 김일성은 ‘애석하게도’ 그 자신이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칭송하던 김정일이라는 ‘효자’의 손에 죽은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김일성이 죽은직후 절대다수의 인민들이 《김정일이가 김일성을 죽였다》고 직감했던 사실은 바로 그 천심의 예고였던 것이다.
그러면 왜 김정일이 김일성을 죽였겠는가. 김정일이 김일성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였던 리유는 우선 그가 인민생활에 대해 김일성에게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거짓보고를 했기 때문이였다.
김정일은 그 자신이 정치를 잘못해서 1980년초부터 인민경제가 헤어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1989년부터는 지방인민들에게 여러달 째 식량배급을 주지 못해 주민들이 굶어죽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수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리면 안된다》고 하면서 철저히 김일성에게 보고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김정일의 거짓보고 덕에 김일성은 죽기 직전까지 우리인민이 ‘수령님의 은덕으로 기쁨과 행복만을 누리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식석상에 나올 때마다 《김정일 조직비서가 모든 국사를 맡아서 아주 잘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무 근심걱정도 없다》고 듣기에도 거북한 자랑을 계속 해댔다.
그런 김일성이 1994년 7월초 묘향산특각에 머무르던 어느날 저녁 차를 타고 향산군 일대를 돌아보다가 묘향산 일대 지하갱도건설에 동원된 인민군 군인들이 다해진 군복을 걸치고 길게 늘어져서 무질서하게 주둔지로 돌아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였다. 그날 밤 김일성은 수행부관들에게 그 광경에 대해 《어떤 군인은 상의를 입지 않고, 또 어떤 군인은 바지를 벗어던지고, 삽자루를 질질 끌며 길게 늘어져가는 군인들의 모습이 꼭 거지떼 같았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김일성은 ‘우리인민의 행복한 생활’에 대해 직접 료해하기 위해 김정일과 토의도 없이 자기의 수행부관들을 ‘암행어사’격으로 평안북도와 함경도 일대에 파견하였다. 그들은 1994년 7월7일 오후에야 묘향산특각으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가져온 기막힌 소식들은 김일성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당시 김일성의 놀라움과 책임추궁은 7일 오후에 진행되였던 경제부문 일군회의에서 한 그의 ‘교시’들에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그때 김일성은 쌀이 없어서 인민군 군인들에게 통강냉이를 삶아서 먹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나는 빨찌산 때에도 대원들에게 통강냉이를 먹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 어려운속에서도 통강냉이를 꼭 갈아서 강냉이밥을 만들어 대원들에게 먹였다.》고 추궁하였으며, 지방 인민들이 식량배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지방 인민들이 여러달째 식량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나는 믿지 못하겠으니 다시 구체적으로 료해하라》고 다그쳐댔다. 그리고 천이 없어서 인민군 군인들에게 군복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실태를 보고받고는 회의에 참가한 경공업담당 부총리 김복신을 불러세우고 《무슨 대책이 없는가?》고 안타깝게 물어보았다.
김정일 같은 것을 믿고 《국내사업은 다 그에게 맡기고 나는 대외사업만 하면서 조직비서를 돕겠다》고 했던 김일성은 그때에야 비로소 자기가 김정일에게 속히우고 있었다는 것을 다소나마 알아차렸으며, 그것을 간파한 김정일은 그런 그에게 7월7일 밤 다시한번 큰 충격을 가하여 심장발작을 일으키게 하였다.
김정일이 김일성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다른 하나의 리유는 ‘남조선혁명의 승승장구’에 대한 김정일의 기막힌 거짓말 때문이였다.
우의 문제와 관련해서 김일성 사후 모든 강연들에서 선전되였던 교양자료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김일성은 급사하기 전에 8월초 서울에서 진행하게 되여있는 북남최고위급회담 준비 때문에 기쁨속에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날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서울에 가게 되면 서울시민들에게 무슨 말을 먼저 하면 좋겠는가?》하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정일은 《수령님, 남조선 인민들은 지금 수령님께서 서울에 개선하시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수령님께서 서울에 나가시면 남조선 인민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 것입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백두산호랑이가 서울에 왔다!’고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통일은 다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을 했다. 김일성은 김정일의 ‘수령님의 위대성에 의한 남조선혁명의 승승장구’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김정일은 이렇게 제 아버지를 철저히 속였다.
1989년 평양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남조선 전대협대표로 참가한 림수경을 담당했던 중앙당 대남사업부 일군은 언젠가 사석에서 《지금 우리인민들이 림수경이 온 것을 두고 남조선 인민들이 한결같이 수령님을 흠모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림수경만 보더라도 여기 와서 ‘통일해야 한다’는 말만 했지, 체제찬양이나 수령찬양 발언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조선중앙통신사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림수경이 평양에 온 것에 대해 남조선의 대다수 인민들은 《철없는 아이의 철없는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남조선 인민들은 김일성을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 6.25 동족상잔의 원흉으로 확고히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일에 대해서는 제 애비보다 더 지독한 독재자라고 규탄하고 있다.
최근 대남관계부문 일군들 속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남조선 일각에서는 김정일의 서울방문설에 대해 《만일 김정일이 서울에 오면 그를 체포해서 재판에 넘겨야 한다》는 식으로 준렬히 규탄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일이 그런 남조선에 대해, 북남최고위급회담이 코앞에 다가온 마당에 엄청난 거짓말을 했으니 김일성을 살려둘 수 있었겠는가.
김정일은 ‘충신, 효자’ 행세를 하면서 김일성을 《귀머거리에 소경》으로 만들고, 인민생활을 도탄에 빠뜨리고, ‘조국통일의 구성’이 되려고 한 김일성의 ‘평생념원’을 우롱한 대역죄를 회피하기 위해, 자신을 낳아 키워주고 나라의 모든 권력과 부를 대물림해주고, 팔십평생 온갖 기만술책과 철권통치로 노예처럼 부려먹은 우리인민까지도 아들(김정일)에게 고스란히 물려준 김일성을 암살하였던 것이다.
《불나비는 불에 타죽는 법》이다. 력사는 권력과 야망을 위해 애비를 살해한 놈 역시 그 더러운 피를 물려받은 아들의 손에 죽게 된다는 허다한 사례들을 기록하고 있다. 아니! 독재체제 유지를 위해 수백만 인민들을 굶겨죽이고, 룡천역 폭발사고를 조작하여 무고한 주민들을 대량 폭파시킨 김정일같은 살인악당은 제 아들의 손에 죽기전에 인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같은 놈이다. 아들의 손에 죽은 김일성은 물론 김정일도 더 이상 우리와 한 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우리 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앞으로 김정일이 인민의 재판을 받게 되는 날, 우리인민은 그가 저지른 모든 범죄행위들과 함께, 김일성을 살해한 죄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게 될 것이다.
김정일 정권 붕괴의 날을 기원하며…
2004년 7월 평양에서…
(끝)
![]() |
![]() |
![]() |
비씨파크 주식회사, 대표이사 : 박병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박병철
사업자등록번호 : 114-86-19888 |
본사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73길, 42, 1307호
전자우편 : master@bcpark.net |
(전화전 이용문의 게시판 필수)
전화: 02-534-982구(09:00~18:00) |
팩스: 02-535-155구 |
긴급: 010-9774-988삼
ㆍ저작권안내 : 비씨파크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에 보호를 받습니다. 단, 회원들이 작성한 게시물의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비씨파크에 게재된 게시물은 비씨파크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게시, 판매, 대여 또는 상업적 이용시 손해배상의 책임과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ㆍ쇼핑몰안내 : 비씨파크는 통신판매중개자로서 상품 주문, 배송 및 환불의 의무와 책임은 각 판매 업체에 있습니다.
Copyright ⓒ 2000-2025 BCPARK Inc.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