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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부시 대통령이 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로 지목하여 한반도가 서늘해졌던 기억이 새로운데 라이스 신임 미 국무부장관 내정자는 북한을 ‘폭정의 거점(outposts of tyranny)’ 중 하나로 거명했다.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위치와 한국과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 그리고 북핵문제로 6자회담이 진행 중인 현 상황의 특수함 때문에 미국이 북한을 어떻게 보고 있고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는 한국 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미국의 의도를 분석하기에 앞서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먼저 떠오르는 상은 ‘북한은 남침을 준비하고 있으며 한국을 공산화할 의도를 가지고 있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는 반국가단체이다’라는 것이다. 종래에는 이것이 아마도 한국에서 허용된 유일한 북한관이었다. 소련군 진주를 바탕으로 해방이후 권력을 장악한 김일성 중심의 북한 집권층은 무상몰수무상분배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그에 따른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지주, 중간층, 일제하에 협력했던 세력, 기독교인 등 대거 남으로 온 사람들 그리고 남쪽의 비슷한 사회계층의 사람들은 북한이 재산과 권리를 위협한다는 것을 매우 구체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1950년 6월에 터진 전쟁은 한반도 전역을 피로 물들여 2백 50만의 희생자를 냈다. 희생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가해자는 때로는 인민군일 수도 중공군일 수도 국군일 수도 미군일 수도 있었지만 전쟁의 성격상 그리고 휴전이라는 종전의 특수성상 공식적으로 전쟁과 희생의 책임은 남쪽에서는 모두 북쪽이(특히 김일성 1인이), 북쪽에서는 모두 남쪽이(특히 미 제국주의가) 지는 것으로 결정지어졌다.

전쟁 이후 이런 점에서 반공주의나 위와 같은 북한관은 이미 사실부합 여부와 관계없이 수정할 여지가 없는 가치관이었는지도 모르며 한국 사회는 그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를 오랜 동안 가질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평화통일을 주장한 진보당의 조봉암은 사형 당했고 4·19 직후의 혁신계 인사 조용수도 사형 당했다. 유신치하에서 김대중이 대북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일본에서 납치되어 살해위협을 당할 정도까지 갔었을 지 의문이다(김영삼과 비교해 볼 때).

전 세계가 냉전이란 형식으로 동/서로 갈라져 있고 월남의 공산화가 한국 사회를 위협으로 감싸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에 대해서 공식적인 이야기 외에는 모든 생각이 억압되었던 것 같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을 부정하는 ‘가짜 김일성’론은 그렇게 신화가 되었다. 북한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접근조차 엄격하게 제한되었던 사회, 분명 우리의 과거였고 2004년의 ‘보수적 시위대’의 모습은 상당한 정도의 사람들에게 그 과거는 현재임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특수성 속에서 북한에 대한 전혀 다른 인식이 나타난다. 북한은 같은 민족이며 역시 사람이 사는 동네이라는 생각에서 나아가 북한은 외세에서 독립적인 민족자주정권으로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군의 작전지휘권을 미국이 행사하는 종속적인 한국보다 정통성을 지니고 있으며 통일은 한반도 전체의 모순을 해결하는 사회변혁의 궁극적인 상이라는 인식이다. 80년대 중, 후반 특히 학생운동권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된 이러한 인식은 ‘주사파’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며 북한에 대해 무비판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게 되고 그러한 인식 속에서 활동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92년 조직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되었던 황인오씨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80년 5월에 광주를 겪으면서, 또 나로서는 80년 4월에 사북을 겪으면서 신군부와 보수세력들이 소위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신뢰와 기대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대대로 정권을 잡고 있는 남한 현실과 어쨌든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북한 지도자들을 비교해 보면서 민족사의 정통성이 상당부분 북한에 있다는 인식을 그 당시에 갖게 됐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는데 있어서 좌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고, 일정하게 그렇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상태에서 민주화와 통일 과정에 있어서 북한과 일정한 연대와 협력은 할 수 있다. … 친북 용공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은 분명하다.”

그 후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신뢰와 기대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물론 이들이 모두 통일운동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의 열렬한 선도적 투쟁과 민주화투쟁의 오랜 전통, 그리고 87년 많은 시민들의 적극적 동참에 힘입어 87년 민주화는 이루어지고 한국 사회는 사고와 연구의 자유의 폭에서 훨씬 더 여유롭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NSC 차장으로 현 정부의 국가안보외교정책을 주도하는 이종석씨 같은 이들은 김일성 연구 기타 북한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통일운동의 광범위한 확산과 문익환, 임수경 방북 등의 계기를 통해 한국사회는 북한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접하게 되었다.

한편,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냉전은 86년 고르바초프 집권 후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해 89년 독일 통일과 90년 동구권 민주화, 91년 소연방 해체를 거치며 종식되었다. 전 세계적인 냉전의 해체는 한반도에서도 새로운 생각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는 이미 노태우대통령 때 북방외교와 함께 추진된 7.7 선언 등 새로운 대북제안(당시 이홍구 통일부총리가 주도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 한승주 장관이 추진한 북핵에 대한 유화적 접근으로 이어졌으며 김대중 대통령 이후 햇볕정책으로 공식화되었다. 북한과 계속 대립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가능한 한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전에도 상당한 정도로 정부정책화 하였는데, 이는 햇볕정책의 구체적 입안자라 할 수 있는 임동원이 김영삼 대통령 당시 통일부 차관을 했다거나 대표적 보수론자로 자민련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이동복이 대북 화해적인 정부훈령을 무시한 ‘훈령조작사건’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대북 포용적 시각은 현대의 대북사업과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으로 한국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 95년 이후 지속된 북한의 식량난은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대중적으로 불식시키게 되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대한 자신감은 내부적으로 과거 강요되었던 반공주의 하에서 저질러졌던 많은 문제들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으로 이어졌고 반공주의적 시각 또는 색깔론은 상당부분 과거의 억압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한편, 한반도 전쟁가능성은 전혀 새로운 형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94년 1차 북핵위기의 해결과 대북 화해 무드를 타고 94년 당시의 비화가 상당부분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국인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고 준비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북한은 미국의 공격 타겟이 될 수 있고 그 경우 한반도는 잿더미가 된다’는 생각이 무시할 수 없이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미국 이외의 모든 나라에서 인기가 없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더욱 극명해졌고 2002년 말 이후 북한의 핵개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한국인들이 북한의 핵무장을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미국의 북한 공격은 절대 반대한다는 상황은(그렇지 않은 한국인들은 아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국인들에게 북한이 거대한 ‘지뢰’로 인식되었다고 설명될 수 있다. 미국이 지뢰에 총을 쏴 없애버리려 할 때 그 옆에 있는 한국인들은 반대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한국이 오랜 동맹관계였고 꼭 미국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며 많은 경우 이익이 일치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경우엔 구체적으로 이익이 상충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런 가운데에 북한의 인권 상황이 새로이 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 내 정치범, 납북자 문제, 탈북자 문제, 북한의 기아, 원조 식량의 불공정한 배분 등등. 북한의 인권 문제는 대체로 반공주의적 시각을 가진 한국인, 북핵문제로 북한을 압박하고자 하는 미국 강경파 등이 제기하는 것으로 국내에 보도된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문제는 이렇게 북한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있는 쪽만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식량원조를 담당하는 UN 기구는 종종 식량 배분 실태의 투명성을 감독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세계적인 신망을 받는 NGO ‘국경없는 의사회’는 북한에서 철수했다. 미국이 종종 반미국가로 지목하는 프랑스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들어 수교를 보류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이성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처럼, 한국은 북한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과 대만이 상생의 발전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북한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고 한국 역시 안보부담은 그다지 가볍지 않다. 어쩌면 ‘같은 민족이라는 뜨거운 가슴을 잠시 뒤로하고’ 냉철한 머리로 북한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려는 의사와 능력이 있는지는 이미 과거부터 의문의 대상이었다. 일찍이 리영희 교수는 남북 군사력 비교를 통해 북한의 군사력 우위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전쟁은 미군은 철수하고 전쟁 시 미군 개입이 불투명하며 장개석 군의 패퇴와 부패에 대한 충격으로 미국은 한국에 대한 군사적 원조를 꺼리고 있는 반면, ‘중국 다음은 조선이다’라는 인식 속에서 조선인 출신의 중국 공산군 병력의 북한군 입대가 이어지고 소련의 물적 지원이 이어지는 국제정치적 조건 속에서 발발했다. 그런 상황은 53년 이후 주한미군 주둔과 중, 소의 북한에 대한 입장에서 볼 때 한 번도 재현된 적이 없다. ‘수령님 명령만 내리십시오’하는 정치적 수사는 과대 포장되어 남북 양쪽에서 선전된 면이 적지 않다.

북한이 공산주의사회이고 한국을 전쟁 이외의 방식으로 공산화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지도 이미 의문의 대상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권의 소멸과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인해 95년 이후 식량위기가 만성화되며 대외적으로 외부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대내적으로 배급제 등 사회주의적 분배체계를 상당부분 포기해 왔다. 최근 들어 시장경제적 요소를 확대시키고 내부에 계층 분화가 나타나는 등 이미 사회주의적 성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탈북자 출신의 재입북자가 북한 내 성공사례로 부각되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이미 한국은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또는 북한 지도층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돈줄’이 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북한이 현재 한반도에서 ‘정통성’이나 ‘긍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여지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과거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장을 한 것의 의미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이성계가 홍건적이나 왜구와 싸우고 위하도 회군을 한 것의 의미와 다를 것이 없다. 식량난이 났을 때 식량조차 공평히 나누어 먹지 않은 사회의 집권층이 사회주의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도 관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부시가 악의 축을 이야기할 때에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같이 놓았고 라이스가 폭정의 거점을 이야기할 때는 이란, 쿠바, 짐바브웨, 미얀마, 벨라루스와 동렬에 놓았다. 물론 여기 열거된 나라들이 정말 세계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나라인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의 평가가 편향되었다고 비판할 여지가 있겠지만, 국제적으로 북한의 위치는 결국 그 정도이다. 북한은 이미 냉전체제 속의 사회주의적 전체주의 국가라고 하기보다는 군부에 상당히 의존하는 권위주의 국가이다(반미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뺄 수는 없겠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안이 리비아라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게 크다. 북한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서방세계와 교류하고 정치적으로 크게 충돌하지 않는 권위주의 국가 정도인 것이다.

한반도 내에 하나의 민족국가를 오래도록 이루어왔던 역사적 전통과 동일 언어를 사용한다는 문화적 동질성 때문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구호 아래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종종 생각된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현실은 종종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한반도가 통일되고 간도의 조선족까지 포괄하는 ‘대한국주의’를 실현한다든가, 미군이 철수하기만 하면 한반도의 긴장은 종식되고 평화와 통일의 앞날이 열린다든가, ‘그날’이 온다든가 ….

그러나 중국과 대만이 통일하는 것도 어려운 판에 한국과 북한이 통일한다는 것은 적어도 단기간 내에 생각할 문제가 아니며 남북의 급작스러운 통일이 시너지효과를 낼 가능성도 별로 없다. 중국이 지원하는 가운데 북한의 붕괴가능성은 낮다. 설령 김정일 암살 등이 있다 하더라도 79년 박정희의 사망 이상의 변화가 한반도에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의 혼란은 그냥 정말 혼란일 뿐이지 그것이 통일 등 무언가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북한이 미국과 끝내 대립하기로 한다면, 결국 현재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북한에서 벌어지겠지만 그 와중에 서울이 무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우리가 그저 북한 문제를 생각할 때에 ‘평화’와 ‘인권’이라는 가치만 생각하기로 합의한다면 어쩌면 북한에 대한 정책의 공유는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평화를 지향하면서 인권 문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적당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은 사실 모든 국가와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택하는 관점이다. 또한 때로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냉전적이라 비난하거나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주사파 버릇이 남았다고 비난하는 성급함은 많은 부분 피할 수 있다.

2004년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반공주의와 통일운동의 영향력이 그다지 녹녹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 한 해였다. 그러나 과거의 자기의 기득권이나 삶에 얽매여 일반인들이 매일매일 접하는 현실을 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나서 국민들의 지지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까? 적어도 북한에 대한 인식의 면에서 현 집권당은 보수적인 야당이나 진보적인 야당에 비해 훨씬 앞서있는 것 같다.

2005/01/20 [13:42] ⓒprometheus
김진주

건전한싸이코
2005-01-21 14:26:27
1100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로또1등당첨 '05.1.27 11:29 AM 신고
    :-)*북한에 관하여 너무 무지하고 수정수의 역사관을 앵무새처럼 학습하면서 세뇌된 내용만 주절거리고...토지의 무상몰수무상분배후 국가 소유의 집단농장으로 바꾼 것은 왜 말하지 않는지....북한인민이 우리와 같은 민족은 맞을지는 몰라도 조선로동당은 아니죠...북한을 대표하는 조선로동당은 조폭 수준을 넘어 악귀에 가까운 수준으로 변한데다 공격성은 일체 변하지 않은체 더욱 증가하였는데 무슨 전쟁할 능력이 없다는니 하는 말로 대중을 속이는 이유는 무슨 목적으로 말하는 것일까?....진보정당이라고 떠드는 민노당 당원이 술좌석에서 여자당직자를 두둘겨 패고 그것도 모자라 맥주병을 깨고 위협을 가햇는데 징계는 커녕 훈방한 정도로 대처한 것을 두고 진중권이 조선로동당 보다 못한 민노당이라 한 것으로 봐도 북한을 대표하는 조선노동당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짐작할만한 것인데 북한을 보는 대한민국 국민의 눈이 잘못되였다고 주절거리는 사람이 정신이상에 가까울 정도로 잘못된 것이겠죠.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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