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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공언

 
천주교의 공언(公言)


“우리는 이 지상에서 전능자 하나님의자리를 차지한다.” -법왕 레오 8세의 1894년 6월 20일자 회장(回莊)중에서.
“법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 일뿐 아니라 그는 육신의 휘장에 가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The Catholic national, 1905년 7월호


“만일 개신교 신자들이 성경을 따르려 한다면 그들은 안식일에 하나님께 경배해야 한다. 일요일을 지킴으로서 그들은 천주교회의 법을 지키는 것이다.”
- Albert Smith, 발티모어 교구 주교의 고문으로 주교를 대신하여 쓴 1920년 2월 10일자 답신 중에서.


"우리는 거룩한 사도의 위 (바티칸 궁)와 로마의 법왕이 온 세계의 머리됨을 주장한다.“
-트렌트 공의회 교령, Phillppe Labbe & Gabriel. Cossart The Most Holy Councils, Vol 13, col. 1167.


“이 안식을 (안식일에서)일요일로 옮긴 것은 천주교회였다. 그러므로 개신교회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그들이 인정하건 말건 (천주)교회의 권위에 경의를 표하는 행위이다.”
- Mosignor Louis Segur, Plain Talk about the Protestantism of Today, p .213.


“우리가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천주교회가 그 신성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PeterGeiermann, CSSR, A Doctrinal Catechism, 1957 ed p.15


“우리 천주교인들은 그러므로 우리의 다른 모든 신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거룩하게 받들 당당한 권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권위인 것이다.... 그러나 실상 당신네 개신교인들은 그렇게 할 아무 권위나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 그것(일요일의 신성성)에 대한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개신교 신자들은 성경 밖에는 어떤 권위도 인정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당신들과 우리는 모두 이 문제에 있어서 전통도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로 믿고또 (천주)교회는 하늘이 지정한 말씀의 수호자요 해석자로 믿고 따르는데 반해 당신들은 항상 우리 교회가 실수하는 믿지 못할 안내자라고 타박하며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패하는 도다’ 하신 마태 15장 6절 말슴을 들어 비방하면서 따르고 있는 것이다.”
- The Britherhood of St, Paul, The Clifton Tracts, Vol4. tract 4, p. 15.


“교회는 안식일 준수를 일요일로 이전했다. 이는 이 공회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거룩하고 무오(無誤)한 권위에 입각한 것이다. 개신교회들은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한내자로 삼기 때문에 일요일을 지킬 명분이 없다. 이점에 있어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일관성 있는 유일한 개신교회라 하겠다.”
-The Catholic Universe Bulletiin, 1942년 8월 14일자, p. 4.


“일요일은 천주교의 제도이며 그 준수는 오로지 천주교의 원칙으로만 변호된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다 살펴보아도 거기엔 매주 드리는 회중 예배를 마지막날에서 첫째 날로 옮기도록 허용한 말씀이 단 한 줄도 없다."
- The Catholic Press, Sydnes, Australia, Augustm 1900.


개신교는 (천주)교회의 권위를 무시하므로 그들의 일요일 이론을 뒷받침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마땅히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
-John Gilmary Shea, American Catholic Qyarterly Renview January 1893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성경이 그들의 일욧일 준수를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회고함이 좋을 것입니다. 일요일은 로마 천주교의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지키는 사람은 천주교회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Brady 신부의 연설문 중에서 뉴 저지 주 엘리자베스 시의 "News"지, 1903년 3월 18일자.


“[문] -그대는 (천주)교회가 축일(성일)을 제정하여 이를 지키라 명할 권한이 있음을 또 달리 증명할 길이 있는가?
“[답] -만일 천주교회가 그 권세가 없다면 모든 종교가듥이 동의하는 사실, 즉 주일 중 첫날인 일요일로 일곱째날 토요일을 대치한 일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변개는 전혀 성경의 권위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Stephan Keenan, A Doctrinal Catechisn, p. 176.


“이성과 상식은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개신교와 토요일 성수냐 아니면 천주교회일요일 성수냐. 타협은 있을 수 없다.”
-The Cattholic Mirror, 1983년 12월 23일자.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천주)교회에다 어느 날이건 마음대로 성일로 정해 지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 하셨다. 그래서 교회는 주일 중 첫날인 일요일을 선택했고 그 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른 축일들을 추가 했다.”
-Vincent J. Kelly, Forbiden Sunday and Feast-day Occupations. p. 2


“개신교는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회중 예배일로 받아들임으로 그것을 바꾼 천주교회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은 한가지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일요일 지킴으로서 (천주)교회의 대변자인 법왕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Our Sunday Visitor, 1950년 2월 5일자.


“사람에게 매 칠일마다 하루씩 일손을 멈추고 쉬도록 허락한 공로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창 2:1-3에 언급된 우주의 창조자가 아니요 천주교회이다.”
-S. D. mosna Storia della Domenica, 69,pp. 300-357


성경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한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말하기를 아니다 나의 신성한 권위로써 안식일을 폐하고 주일 중 첫째날인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교회 전통은 성경보다 위에 있다고 선포하는 바이다. 우리는 우리의 교리를 전통에 기초한 것이다.
(신부서한짐, 1893년 6월 1일 발행, 173면)


위 내용은 천주교회에서 공식적을 발언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기록된 안식일은 분명 토요일입니다.
주일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기준이 성경이 된다면 당연히 성경에 기록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천주교인들은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합니다.
왜 성경에 일요일(주일)예배가 기록이 되어 있다며 우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창세기 첫장 부터 묵시록 끝까지 다 읽어 보아도 주일(일요일)예배를 지키라는 말씀은 단 한 줄 도 없습니다.



2005-01-23 11:05:15
1078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브랜단 '05.1.27 8:22 PM 신고
    :-)*⋅주일과 안식일


    1.

    구약의 안식일(토요일)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신약의 주일(일요일)을 지켜야 하는가? 이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한 학자들은 아직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서로 다른 성경학자들의 주장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신학자들은 주일(일요일)의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가 불확실한 가경(외경) 중에 속하는 바나바 문서와 디다케 문서까지 동원하여 주일(일요일)의 역사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을 아니다. 또한 안식일(토요일) 연구에 있어서도 바벨론 기원설, 혹성기원설, 만월기원설, 겐족속 기원설, 달력기원설 등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연구 방법론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구약 성경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문서설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창세기를 근동아시아의 신화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창세기에 나타난 홍수 사건도 바벨론의 길가메쉬 서사시 에 기록되어 있는 홍수설화의 영향을 받아 기록한 것이 구약 성경이라고 보고 있다.

    더 나아가 모세의 율법 역시 수메르의 법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바벨론 제1왕조의 여섯 번째 왕이었던 함무라비(주전 1792년) 시대에 이미 존재했던 함무라비 법전은 282개 조항으로 되어 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설형문자의 이 법전의 영향을 모세가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수메르 시대의 함무라비의 법전이나, 바벨론의 길가메쉬 서사시 등에 나타난 홍수설화는 등은 도리어 구약성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바벨론 시대에 존재했던 주개념(일주일) 역시 구약성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사실 일주일 개념은 천지창조에 함께 나타나고 있다. 구약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아담시대와 아담의 후예인 족장시대, 그리고 노아시대, 아브라함 시대, 모세시대로 이어져 내려 왔다.




    구약성경에 보면 노아의 세 아들 중에 셈이 나온다. 이 셈족이 바로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수메르족(시날:창10:10)과 융화하여 살았던 아카드족이다(악갓 창10:10=셈족).




    그런데 구약 성경에는 모세의 선대(조상)로 아브라함, 노아, 아담까지 소급되어 있다. 즉, 유브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메소포다미아 문명을 이룩했던 수메르와 아카드족은 모두 모세의 선조들이었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 나타난 안식일(일주일 개념)은 모두 성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세는 수메르와 아카드의 문화 이후에 존재하였던 인물이었지만 이미 고고학으로 밝혀진 모세의 선조인 아브라함과 그의 선조들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소장(보관)하여 온 것과 모세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 내용과 함께 기록한 것이 바로 구약 성경이다. 따라서 고대 세계에 나타나 있는 일주일 개념은 모두 성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신학자는 마땅히 안식일과 주일(일요일)의 근거도 당연히 신구약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은 구약의 안식일(토요일) 제도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안식일과 주일(일요일)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구분 짓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전까지는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관습으로 지켜오던 안식일을 지킨 것으로 신약성경에 기록에 나와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부터는 안식 후 첫날(주일=일요일)에 모여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렸다. 이런 근거들은 신약성경의 기록과 초대교회의 교부들의 문서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 후 서기 321년 3월 7일 콘스탄틴 황제가 법령으로 “존경스러운 태양의 날”을 정했다. 즉 태양신을 숭배 날을 일요일로 정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단 중에 하나인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안식교)는 교도들은 오늘날 기독교가 이 태양의 신을 숭배하는 날을 지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태양신 숭배주의자로 태양신의 축제일을 일요일을 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 날을 받아드려 지켰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기독교는 콘스탄틴 황제가 세상에 존재하기도 전에 이미 전통적으로 주일(일요일) 날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콘스탄틴 황제가 정한 태양신의 날, 즉 일요일은 이방인들과 이단들이 받아드려 지켰을 뿐 기독교가 이것을 받아드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후 역사의 날조자로 불리는 유세비우스(Eusebius)는 330년경에 쓴 시편 91편 주석에서 “안식일에 행하여지는 모든 것들이 주일로 이전되었다.” 고 하였다.

    중세 초기의 스콜라 철학자이며, 로마 카톨릭주의자였던 토마스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주장하기를 “십계명은 자연법으로 신자들에게 구속력을 가진 도덕법이며, 십계명은 의식적인 법으로써 일곱째 날을 이미 폐지되었으나, 도덕법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고 하였다. 이 견해에 따라 중세기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안식일 엄수주의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종교 개혁자 루터는 안식일의 폐지를 강도 높게 비판하여 말하기를 “기독교인들이 매주 쉬는 날이나, 예배를 드리는 날까지도 종교적으로 지킬 아무런 의무가 없다.” 고 하였다.

    종교 개혁자 칼빈 역시 “기독교강요”에서 안식일 날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으며, 폐지되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제칠일 안식교 교도인 김경선 씨가 집필한 “오직성경만이 판단기준이다.” 라는 책 제 6장에서 영국의 청교도들도 안식일을 엄수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김경선 씨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종교개혁 이전으로 돌아가 로마 카톨릭의 안식일 엄수주의를 그대로 받아드렸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 영향을 받은 장로교의 신앙을 집대성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소요리문답, 예배모범 등에 스콜라신학의 안식일을 엄수주의 사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장로교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문서들과 칼빈의 하나님 중심 사상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안식일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문서들과 칼빈의 견해는 정반대 입장에 있다.




    이것은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안식일 문제에 있어서 장로교는 칼빈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문서들을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하는 곤란한 입장에 있다.

    물론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문서에는 성경에서 빗나간 것들이 발견될 경우 언제든지 시정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미 앞서 살펴보았듯이 칼빈은 단호하게 안식일이 이스라엘의 의식법(종교법, 제사법)에 속해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안식일은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의식법(제사법, 종교법)이란? 사람이 범한 죄의 형벌을 동물(소, 양, 염소)에게 전가시켜 안수하고 잡아서 번제단에 태우고, 그 피를 받아 지성소에 뿌리던 제사 의식을 말한다.

    이 구약의 제사 의식은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제물이 되어 희생되심으로써 폐지되었다. 따라서 더 이상 희생 제사는 필요 없게 되었고 안식일 역시 폐지되었다.




    그러나 한국교계에서는 아직도 중세기 로마 카톨릭주의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했던 안식일이 의식법(종교법, 제사법)에만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십계명=도덕법=항구적인 법=영원히)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구속력을 가진다는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안식일은 십계명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완전한 폐지를 주장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 마태가 율법을 배타적으로 보는 측과 율법주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한 말씀에 근거를 두고 더욱 고심하고 있다. 즉,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고 하였다.




    과연 구약의 율법은 신약시대에도 유효한 것인지 살펴봄으로써 율법에 포함된 안식일 문제도 함께 고찰해 보고자 한다. 구약의 율법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완성이 되었다면 율법에 포함되어 있는 안식일(토요일)도 당연히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1. 구약의 율법은 신약시대에도 유효한가?




    구약의 율법은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이사야 33장 22절에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고 하였다. 이 율법은 범법으로 인하여 추가되었으나 약속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3장 19절에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고 하였다.




    그리고 구약의 모든 선지자와 율법은 세례요한 때 까지라고 하여 율법의 한계가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누가복음 16장 16-17절에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고 하였다. 더 나아가 제사장 직분이 변하면, 율법에도 변화가 온다고 언급하고 있다(마11:13).




    히브리서 7장 12절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고 하였다(한글개역 성경). “For the priesthood being changed, there is made of necessity a change also of the law”(KJV=킹제임스 영어성경).



    “제사 직분이 변하면, 율법에도 반드시 변화가 생기게 마련입니다”(새번역성경). 또한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치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




    히브리서 7장 19절에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고 하였다.




    히브리서 10장 1-2절에“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라고 하였다.




    누가복음 24장 44절에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라고 하였다.




    신약 시대에 법은 돌비에 새겨서 전해 준 법이 아니라 양심의 법을 주었다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3장 3절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 하였다(시37:31, 시40:8)




    히브리서 8장 10절에도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고 하였다.




    사도행전 6장 14절에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이라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하였다.




    갈라다아서 3장 11절에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고 하였다.




    사도행전 13장 39절에도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 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고 하였다.




    로마서 10장 3-4절에도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하였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도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하였다.




    로마서 3장 28절에도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 하노라”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하였다.




    로마서 10장 4절에도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도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라고 하였다.




    갈라다아서 3장 11절에도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고 하였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롬3:19, 20, 롬7:7-9, 갈 3:23, ). 그리고 율법을 법있게 사용하면 선한 것이다(딤전1:8).




    로마서 7장 7절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고 하였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고 하였다(롬 13:8).




    갈라디아서 2장 21절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5장 4절에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5장 18절에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라고 하였다.




    디모데전서 1장 9-11절에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이런 말씀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구약의 율법은 신약시대에 이미 폐지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고린도후서 3장 3절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 하였다(시37:31, 시40:8).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비에 쓴” 십계명을 받았다.




    그러나 은혜아래 사는 성도들은 마음의 심비에 새겨진 새로운 법을 받았다. 즉 구약의 율법은 완전히 폐지되고 새로운 법이 성도들에게 주어졌다. 새로 주신 새 계명은 사랑의 법으로 사실 구약의 십계명에 나타난 도덕법보다도 더욱 강화된 법이다.




    요한복음 13장 34-2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랑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고 하였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고 하였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13:1-12절에 “...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 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 하였다.

    신약 성경에는 새 계명인 사랑의 계명과 죄의 요소들은 자세하게 기록함으로써 성도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태복음 15장 18-20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 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고 하였다.




    마가복음 7장 21-32절에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淫亂 )과 도적질과 살인(殺人)과, 간음(姦淫)과 탐욕(貪慾)과 악독(惡毒)과 속임과 음탕(淫蕩)과 흘기는 눈과 훼방 (毁謗)과 교만(驕慢)과 광패(狂悖)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고 하였다.




    갈라다아서 5장 18-21절에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顯著)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術數)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異端)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警戒)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라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6장 8-11절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 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 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 하였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현재 우리나라에 국법(민법, 형법,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상법=6법)이 있는 것처럼 고대 세계에 잘 정비된 법률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도덕인 십계명과 십계명을 기초로 하여 발달시킨 국법(민법, 형법, 농상법, 사회도덕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 법은 주로 출애굽기 20-21장, 레위기 18장, 신명기 20-21장 등에 주로 나타나 있다.

    이 율법 조항들을 모두 613 조항이었다. 유대 정통파인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먼저 “하라”는 긍정적인 율법 248개 조항과 “하지 말라”는 강력한 율법 365개 조항이었다.

    그런데 248개 조항의 율법은 사람의 뼈와 같은 수로 하였으며, 365개 조항 율법은 태양년의 날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법을 주신 근본 취지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법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잘못 사용하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율법을 잘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법을 왜곡시켰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구약의 율법(십계명 포함)을 두 가지로 압축하여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0장 27절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고 하였다.

    마태복음 22장 40절에는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 하였다(마22:40).


    누가복음 10장 27-28절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라고 하였다(막13:28-31).




    그러나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 비유를 들면, 구약성경은 건물을 건축하기 위한 설계도이며, 신약시대에 모습을 나타나신 예수님은 완성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이 완성되고 난 후에는 건물 설계도는 참고용으로 필요할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제칠일(토요일, 안식일) 날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의 사역을 마치시고 기념하여 지키라고 주셨다. 또한 이집트(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그들을 구속(구원)하는 표로 안식일을 그들에게 주셨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토요일)의 기원이었다. 그러나 주일(일요일)은 우리 구주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며, 아울러 오순절(맥추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백성들에게 새 생명(부활=중생)을 주는 날로 구약시대에 이루어졌던 천지창조의 근본 목적과 뜻을 같이 하는 날이기도 하다. 주일(일요일)은 결코 안식일(토요일)과 같은 법으로써 지정된 날의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대하여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십계명과 함께 포함되어 있는 안식일(토요일)은 도덕법과 종교법(의식법) 두 곳에 적용이 되어 있다. 종교법(의식법)에 포함되어 있는 안식일(토요일)이 폐지되었다는 충분한 근거를 신약 성경에서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안식일(토요일)이 도덕법(항구적=영원히)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사역을 기념하여 복되고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다는데 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드리면 안식일(토요일)을 지켜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문제를 소요리문답 등에서는 일주일 중 한 날을 거룩하게 드리는 날로 바꾸어졌다고 설명을 하고 있으나, 속 시원한 설명은 아니다. 또한 신학자들 중에는 율법의 완전한 폐기론을 주장한다.




    이 견해는 안식일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아마 신학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안식일과 주일(일요일) 문제이다. 기독교가 2천이란 긴 세월을 걸쳐 오면서 이 문제를 속 시원하게 설명한 신학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주일(일요일=부활하신 날)을 장려하셨다. 그 근거는 오순절(맥추절) 성령 하나님의 강림 사건으로 입증되고 있으며, 사도 바울의 서신에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2. 부활과 새 생명의 창조(중생)를 기념하는 날(주일)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창조는 인간 이성으로 상상할 수 없는 대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근본적인 목적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였다(계4:11). 창조물 중에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로 구별된다(골1:16).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최대의 걸작품은 바로 인간이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지식, 거룩, 의)으로 창조되었다(창1:26). 하나님께서는 오직 인간에게만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창1:26).




    그러나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했다. 즉 그들은 사탄과 공모하여 하나님께 불순종 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단절이란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주시지 않으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죽었다고 표현했다(창2:17).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 보면, 아버지 품을 떠나 타국에서 탕자가 되어 버린 둘째 아들을 가리켜 “죽었다”(눅15:24)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성경은 영적인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하여 하나님을 스스로 찾을 수 없는 상태를 가리켜 죽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장로교에서는 신학용어로 전적죽음(전적타락, 전적부패)이라고 한다. 이와 반대되는 용어는 중생이다. 중생은 재창조 되었다(엡4:24). 새로 지음을 받았다(고후5:17). 다시 태어났다(약1:18). 거듭났다(요3:1-10). 살린다(요5:21, 엡2:5)는 뜻이다. 구약의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셨을 때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으나 이미 죽은 존재에 불과하다. 이처럼 창조물 중에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사는 바로 인간이었다. 이런 인간이 불순종으로 영적인 죽음을 당하자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특별 계획을 세우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 세상에 오셔서 자신이 얼마나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고 있는지(요1서 4:10) 친히 보여 주시고, 자기에게 속한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시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의 시작이 바로 성육신(예수탄생) 사건이다. 더 나아가 십자가에 희생되심으로써 그 백성들의 받을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그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여 주셨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자기 백성들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고전15:12-19) 길을 열어 주신 이 사건들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천지창조 사역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는 대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아담은 땅(에덴=지상)에 속해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성도들이 장래에 부활될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 창조된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법을 주셨다. 그것은 율법이 아닌 복음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신약 성경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셔서 그 백성들의 죄를 대속해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후에 장사된 지 3일 만에 부활하신 그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이 바로 주일(일요일)이다.



    이 날은 오순절(맥추절, 칠칠절)날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대 사건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행2:1). 이 사건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던 사건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모세는 혼자 높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산이 아닌 마가의 다락방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성령 하나님의 강림을 체험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과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두 사건이 있었던 날을 기념하여 매일 모여 떡을 떼면서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께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눅24:1-3, 요20:1-2, 막16:9, 요20:1-19, 행20:7, 고전16:2, 계1:10).

    안식일에 주인이 되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이 날에 모인 것을 장려하셨다. 그것은 맥추절(오순절) 성령 하나님의 강림으로 확정되었다. 은혜아래 있는 성도들은 이 뜻 깊은 날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연대와 날짜는 서기 33년, 유대창조기원 3793년, 유대종교력 니산월 제16일이며, 양력(태양력)으로는 일요일이었다. 성령 하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하신 날짜는 유대종교력 이야르 25이며, 양력으로는 5월 12일 목요일이었다.



    3. 날에 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




    1)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로 시비하지 말라고 했다.

    골로새서 2장 16절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 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남을 깎아내려 헐뜯음) 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고 하였다(골2:16-17).




    2)날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

    로마서 14장 5-6절에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고 하였다.




    3) 안식일의 문자적인 준수는 복음을 헛되게 한다.

    갈라디아서 4장 8-11절에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고 하였다.(갈4:8-11)




    4)성도들은 복음의 순종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대망한다.

    히브리서 4장 9-11절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다.




    5)예수님께서는 일요일(주일)에 부활하셨다.

    누가복음 24장 1-3절에 “안식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고 하였다.




    여기에서 안식 후 첫날이란 유대인들이 율법에 따라 매주 지키는 토요일(안식일)이 지나고 주일(일요일)에 부활하셨음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20장 1-2절에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라고 하였다.




    마가복음 16장 9절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라고 하였다.




    요한복음 20장 1절에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 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올찌어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라고 하였다(요20:1,19,26).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짜에 대하여 무려 2천 동안이나 많은 학자들이 논쟁하여 왔으나 오른날까지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필자가 성경과 예수님 시대의 고대 역사 기록, 천문학, 고대 히브리 달력 복원 등을 통해 정확하게 밝혀 놓았다.

    예수님께서는 정확하게 서기 33년 4월 1일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서기 33년 4월 3일 일요일(주일)에 부활하셨다. 이런 연구를 통해 성경 기록이 그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6)성령 하나님의 강림이 일요일(주일)에 일어났다

    사도행전 2장 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라고 하였다. 이 사건은 양력(태양력) 서기 33년 5월 22일 일요일,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에 일어났다. 유대시간으로는 제삼시(행2:15)였다. 유대력으로는 시반(Sivan)월 6일 오순절(맥추절, 칠칠절)에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40일 동안 땅에 계시다가(행1:3) 감람산에서 양력 서기 33년 5월 12일 목요일에 승천하신 후(행1:9-12 ) 10일 후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하나님의 강림하신 주일(일요일)에 모여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렸다.




    7)초대교회는 일요일(주일)에 모여 정기적으로 예배를 했다.

    사도행전 20장 7절에 “안식 후 첫날(일요일)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라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 “매주일 첫날(일요일)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의 날” 이란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일요일)이나,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날(일요일)을 뜻한다.




    이런 사실은 고대 교부들의 문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정통성을 부르짖는 장로교가 주일(일요일)을 마치 구약의 안식일 개념처럼 강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경에서 빗나간 매우 그릇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과 사도 중 누구도 어떤 특정한 날을 지정하여 지키라고 하지 않았다. 신약성경은 분명하게 어떤 특별한 날을 한정 짓는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다.




    은혜 아래 있는 기독교인들이 주일(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의무나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다. 오직 우리를 아무런 댓가없이 구속하여 주신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감사하기 때문에 일주일 기간 중 하루를 세속된 모든 일을 버려두고 시간을 내어 예배를 통해 몸과 마음을 성 삼위 하나님께 드리고, 성도들과 만나 서로 교제를 나누고 봉사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성경의 지지를 받는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구별된 날과 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믿음(정성) 그 자체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대 관계에 있어서도 시간을 정하여 만나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주일(일요일)을 마치 유대인들의 안식일처럼 강조하는 것은 복음을 헛되게 하는 일이다.

    성도들은 날과 시간에 매일 필요가 없다. 은혜 아래 있는 성도들은 모두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일(일요일) 예배를 등한시하는 것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 자유는 방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국가기관이나, 각 사회단체들, 또는 교계의 각 교단이나, 기타 성도들의 공동체는 공동규율에 의하여 법으로 규정된 날과 시간들은 잘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세상의 법이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지 않는 이상 성도들도 그 법을 따라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세상의 국법은 날과 시간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고 강제 조항이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임에 대하여 구속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공동규율에 의하여 정해진 규칙이 있다면 그 날과 시간에 모이는 것은 기본 도리이다. 자유라고 해서 상습적으로 모임에 출석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 회원권이 박탈되는 경우도 있다. 교회 단체들의 정관(규칙, 회칙, 규약)에도 날과 시간들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가 세상에 속한 것이며 구원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여 교회의 모임에 대하여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며, 모두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성도들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 신앙에 유익할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 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하였다.

    초대교회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매일 모임에 참석했다. 그 후 로마제국의 핍박이 점점 심해지자 그들의 눈을 피해 매일 새벽마다 정기적으로 모여 예배를 하고 흩어졌다(비두니아의 로마총독이 로마황제에게 보고하는 보고서 기록).

    그러나 은혜시대(신약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는 날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사람이 아무리 특별한 날을 제정하고 뛰어난 예술성을 동원하여 화려한 건축물을 지어 놓고 종교 의식을 제 아무리 고상하게 한다고 할지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요4:23) 예배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사1:10-15).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땅을 발등상(발판=발을 올려놓은 대)으로 삼으시고(마5:35) 하늘을 보좌로 삼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행7:48-49, 시편103:19).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포도주(잔과)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사례하시고 “나를 기념하라” 고 하셨다(눅22:17-19, 고전11:24-25).

    초대교회는 이 말씀을 받아드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주일날(일요일) 모여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제자들의 아름다운 전통을 쫓아 이 복되고 거룩한 날에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를 하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이며,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성도가 한 주간(일주일) 중 단 하루도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신앙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성경의 전제적인 교훈을 통해 모임을 등한시해도 문제가 되고, 날과 시간을 정하고 꼭 그 시간에 모여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강조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안식일의 도덕법 문제가 난제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하는 것은 성경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만약 신약시대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이 합당치 않았다면, 부활 후 40일 동안 땅에 계셨던 예수님께도 주의를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주일(일요일) 모임이 합당치 않았다면, 부활 후 50일째 되는 맥추절(오순절, 칠칠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이유가 없다. 결론적으로 매일 드리는 예배와 정기적으로 드려지는 주일(일요일) 예배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

    1)안식일에 18년 동안 귀신들려 고생하는 여인을 치료하셨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18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를 안수하여 치료해 주었다(눅13:10-13).

    마가복음 1장 21-27절에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안식일에 더러운 귀신들인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고 하였다(막1:21:27).




    2)안식일에 고창병 환자를 치료하였다.

    안식일에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있는 곳에서 고창 병자도 치료해 주시면서“너희 중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하였다(눅14:1-6).




    3)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셨다.

    안식일에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못에서 천사가 내려오면 치료를 받으려고 하였으나, 몸을 제대로 가두지 못하여 치료받지 못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해 주었다(요5:1-11).

    그런데 병자가 깔고 앉았던 자리를 들고 가는 모습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보고 안식일에 짐을 옮기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트집을 잡았다(요5:10).




    4)안식일에 태어나면서 소경된 사람을 고쳐주셨다.

    안식일에 태어나면서 소경된 사람에게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는 말씀으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요 9:1-14).

    여기서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문제를 삼았던 것은 안식일에 진흙을 이겨 발라주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이유로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 온 자가 아니라”고 하였고(요9:16), 일부는 죄인이 어떻게 이런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 있겠느냐 하면서 자기들 끼리 심한 논쟁이 일어났다(요9:16).




    5)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비벼먹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식일에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마12:1-8). 안식일에 남의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어서 유대들이 문제를 삼은 것은 아니었다.

    신명기 23장 25절에 “네 이웃이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 고 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누구나 시장하면 어느 밭이든지 들어가서 이삭을 따서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문제는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손에서 비비는 것을 보고 탈곡하는 일로 간주하여 문제를 삼았던 한심한 자들이었다.

    탈무드에 보면 안식일에 지켜야할 항목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옷을 만드는 사람은 안식일에 바늘을 옷에 꼽지 못하게 했다. 이것도 짐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는 행위와 38년 동안 실로암 못가에서 있다가 예수님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이 깔고 앉아있던 돗자리를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이것을 노동으로 간주하여 안식일을 범하는 행위라고 예수님을 미워했던 것이다.




    6)안식일에 가축의 생명을 구하라고 하셨다.

    안식일에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있는 곳에서 고창 병자도 치료해 주시면서 “너희 중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고 하였다(눅14:1-6).




    7)안식일에 선을 행하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시면서 한편 손 마른 병자를 고쳐주자 죽이려고 하였다(마12:10-14 막 3:1-6).




    8)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안식일에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했다(막1:21, 눅4:16, 18, 눅13:10)




    9)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 자신이라고 하셨다.

    누가복음 6장 5절에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이니라 하시더라 ” 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는 일, 선을 행하는 일, 가축의 생명이 위험에 빠졌을 때 구원하는 일, 성경을 가르치는 일,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는 일 등을 하라고 하셨다.




    5. 구약성경에 나타난 안식일 제도

    우리는 이미 앞에서 구약의 종교법(의식법)에 포함되어 있는 안식일 제도는 복음 아래서 완전히 폐지되었음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구약의 안식일을 정리하여 적어 둔다.




    1)안식일은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었다.

    창세기 2장 2절-3절에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 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 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고 하였다(출20:8,11), (창2:1-3)




    2)안식일은 출애굽을 기념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해방되어 마침내 호렙산(시내산)에 이르러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다(출5:1-21).

    ※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죄와 억압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해방)한 사건은 성도가 죄악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중생)을 받는 것을 상징한다.




    3)일곱째 날(제 칠일=토요일)에 안식하라고 하였다.

    출애굽기 20장 10절에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 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고 하였다.

    출애굽기 31장 15절에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 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고 하였다(출20:8,11),(창2:1-3).

    레위기 23장 3절에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 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 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 이니라” 고 하였다.

    신명기 5장 14절에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 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 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 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 같이 안식하게 할찌니라” 고 하였다(출34:21)




    4)엿새 동안 힘써 일해야 한다고 하였다

    출애굽기 20장 9절에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 할 것이나” 라고 하였다(신5:13).

    5)안식일은 노동을 금지하라고 하였다

    출애굽기 20장 10절에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 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 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고 하였다(출20:10), (출23:12), (신5:14), (출20:10), (출23:12).







    6)안식일은 매매를 금지하라고 하였다.

    아모스 8장 5절-6절에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 잿밀을 팔자 하는도다.” 고 하였다.




    7)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죽이라고 하였다.

    출애굽기 31장 14절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 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 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 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 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 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 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 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고 하였다(출31:14 -17), (출31:14), (출 35:2,3).

    출애굽기 35장 2-3절에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 칠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 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고 하였다.




    8)안식일에 오락을 금하라고 하였다.

    이사야 58장 13절-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고 하였다.




    9)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주었다.

    출애굽기 16장 29절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 육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 칠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 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고 하였다.

    출애굽기31장 14절에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고 하였다




    10)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표징이었다.

    출애굽기 31장 13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 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고 하였다(출31:13 ,16,17).




    11)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지킬 규례(일정한 규칙)라고 하였다.

    레위기 16장 29절-31절에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 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고 하였다(레 16:29-31).




    12)땅에도 안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레위기 26장 34-35절 “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 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 한 동안 너희 안식 시에 쉼을 얻지 못 하던 땅이 그 황무할 동안에는 쉬리라”고 하였다.




    13)외식적인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

    이사야 1장 13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고 하였다(사1:13), (애 2:6), (겔20:12,13,16.21,24), (겔22:8,26), (겔23:38).




    14)안식일에 규정된 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안식일에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들은 주로 떡, 흠없는 어린양과 흠없는 수양의 번제, 향불, 밀가루, 기름 등이었다.

    레위기 24장 8절에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찌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고 하였다(대상9:32).

    역대하 2장 4절에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고 하였다.

    역대상 23장 31절에 “또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 모든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 명 하신 규례의 정한 수효대로 항상 여호와 앞에 드리며” 라고 하였다.

    에스겔서 46장 4-5절에 “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과 흠 없는 수양 하나라 그 소제는 수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니라”고 하였다.




    15)안식일에 허용되었던 일도 있었다.




    󰊱할례(포경수술)를 시행했다.

    요한복음 7장 22절에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고 하였다.




    󰊲제사장은 안식일에도 성전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마태복음 12장 5절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고 하였다.




    󰊳안식일에도 가축에게 물과 먹이를 주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누가복음 13장 15절에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 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고 하였다.




    󰊴안식일에 위기에 처한 가축을 구하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누가복음 14장 5절에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 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라고 하였다.




    󰊵안식일에도 한정된 거리를 걷는 것이 허용되었다.

    사도행전 1장 12절에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고 하였다.

    탈무드의 미쉬나(Mishnaah)에 따르면, 안식일에 도보할 수 있는 거리는 2천 규빗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것은 약 1.1Km 정도의 거리에 해당된다.




    󰊶안식일에 제사장에게 나아가는 일은 허용되었다.

    열왕기하 4장 23절에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거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고 하였다.




    󰊷안식일에 왕궁 호위대는 교대했다.

    열왕기하 11장 5절에“명하여 가로되 너희의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입번한 너희 중 삼 분일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 안식일에 출번하는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바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라고 하였다(왕하11:5, 7,9 대하23:4,8).




    16)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였다.

    마가복음 2장 27절에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하였다.




    17)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셨다.

    누가복음 6장 5절에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이니라 하시더라 ”고 하였다.




    18)땅에서 지키는 안식일은 천국의 모형으로 진정한 안식은 천국에서 이루어진다.

    히브리서 4장 10-11절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다.

    성도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안식일(토요일)을 정하는 분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도 예수님께도 천지창조 사역을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리고 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6장 5절에“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이니라 하시더라 " 고 하였다.

    제자들과 성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주일(일요일)에 모였던 것이다. 우리 역시 같은 말씀을 따라 주일(일요일)에 모여 예배를 보는 것이다.

    3. 이단 안식교(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1)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안식교

    안식교(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교도들은 구약의 안식일 즉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으로 제정이 되었고(창2:1-3),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였으며(출20:8-11), 안식일은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라고 하였으며(출31:13,-17).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고(출20:8-11). 십계명에도 포함된 도덕법이며, 항구적(영원히) 법이기 때문에 이 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변하고 토요일(안식일)에 집회를 갖는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주일을 지키는 자들은 모두가 짐승의 표를 받은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제 4계명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인치신 표라고 주장한다.

    안식교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진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 원래 농부였다. 그런데 그가 34세 되던 해에 성령의 감화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밀러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종말론에 심취되었다.

    그는 다니엘서 8장 14절에 기록된 2천 3백일을 계산한 결과 1844년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그 후 건전치 못한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모여서 안식교를 세웠다.

    역시 안식교의 대표자 중에 한 사람으로 안식교에서 여선지자로 부르는 엘렌 지 화이트(Ellem G. White)는 1847년 4월 17일에 환상을 통해 천국의 지성소에 들어가 보니 “제 4계명 주변에 주의 영광의 광채가 둘렀더라” 고 하였다.

    이때로부터 안식교도들은 기독교에서 지키는 주일을 배격하고 구약의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화이트는 여사는“안식교는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화이트 저, 가려 뽑은 기별 1권. P .272).




    화이트 여사의 이런 주장은 복음을 아주 헛되게 만드는 주장으로 성경의 기본 진리에서 크게 빗나간 이단 사상이므로 더 이상 논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안식교가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안식일에 대하여 어느 정도 합리적인 면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성경의 진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특히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그들의 사상은 신약 성경 전체를 배격하는 사상이므로 안식교가 이단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무가치 한 논쟁일 뿐이다. 안식교가 이단이라는 근거는 몇 가지만 살펴보아도 그들의 정체가 드려나고 만다. 그들은 초창기부터 거짓된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워 미국 사회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잘못된 교리를 유포시켜 복음의 진리를 파괴하고 있으며, 환상을 성경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집단이다. 이런 곳에 성령의 감화가 있을 리 없거니와 그들이 주장하는 토요일 안식일 준수 주장에도 문제가 많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현재 기독교가 지키고 있는 주일은 서기 321년 3월 7일 콘스탄틴 황제가 법령으로 정한 “존경스러운 태양의 날”을 기독교가 지키고 있는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필자가 지적했지만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리이다. 콘스탄틴 황제는 죽을 때까지 태양신을 섬겼고, 주일이 아니라 태양의 날(일요일)을 법령으로 정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결코 태양의 날(일요일)을 지키지 않는다. 기독교는 태양의 날(일요일)을 도리어 배격한다. 기독교가 지키고 있는 주일(일요일)은 콘스탄틴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존재했었다. 일주일의 개념은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으며, 고대 세계에도 있었다. 따라서 기독교가 태양의 날을 지키고 있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성령께서 강림하신 주일(일요일)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안식교의 구약시대의 안식일(토요일) 준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그들의 주장들을 비교 연구하여 보면,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이단 집단들의 사상과 일치하고 있다.

    특히 프리메이슨에 속한 학자들과 사전에서 안식교가 기독교와 다름이 없는 정통교회라고 규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안식교와 프리메이슨의 관계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이 글은 필레오에게 저자권이 있는 글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iak 의 기독교 특별 자료테마. 93번 글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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