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1-20 09:30 | VIEW : 159
국민 성금으로 출발해, 개혁지로 성가를 높였던 한겨레가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중견 사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적자는 늘어나는 데다 신문의 질에 대한 비판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의 한겨레, 새롭게 도약할 것인가.
1988년 창간 이후 줄곧 한겨레에 네 칸 만화 을 그려온 김을호 화백이 지난 연말 한겨레를 떠났다. 그녀는 부친상을 당했을 때도, 병원에 실려갔을 때에도 펜을 놓지 않았었다. 창간 동료 박재동 화백은 “ 없는 한겨레를 읽는 허전함이라니, 눈동자 하나를 잃은 듯하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김선주 논설주간도 한겨레에 이별을 고했다. 김주간은 논평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한 여성 언론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선주 선생 글이라고 하면, 한 번도 감동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손석춘 논설위원도 짐을 쌌다. 그는 노동·인권·미디어 칼럼니스트로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논객이었다. 2004년 이 실시한 전문가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 부문 3위에 꼽히기도 했다. 손위원은 기자에게 “다른 분들이 고통을 떠안고 나가는데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고통 분담 차원에서 퇴직했다”라고 말했다.
2004년 12월 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희망 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한겨레를 떠난 중견 직원들은 59명에 달했다. 신문사의 얼굴이자 척추인 중견 사원들을 내보내야 할 정도로 한겨레의 위기는 심각한 것일까. 양상우 노조위원장 겸 비상경영위원장은 “희망 퇴직은 회사에 힘을 보태기 위한 한겨레다운 애정 표현이다. 현 상황을 한겨레의 위기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선 기자와 사원 들의 시각은 달랐다. 한 지원 부서 사원은 “한겨레가 귀를 자르고 한 손을 쳐내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9년차 기자는 “쓰러지기 직전이다”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 어떤 외압에도 끄덕 않던 한겨레가 경영 위기에 휘청거리는 것은 한국 언론계, 나아가 사회 전체의 균형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에서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 신문은 노태우 정권 시절부터 권력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으며 개혁지·비판지로서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구축해왔다.
의욕적으로 벌인 신규 사업, 잇달아 ‘쓴맛’
한겨레 신문은 1988년 5월15일 일반 시민 2만7천2백23명이 출연한 창간 기금 50억원으로 탄생했다. 그 해 10월 한겨레 신문은 국민 모금 캠페인을 벌여 1989년 발전 기금 1백17억원을 조성했다. 이 종자돈으로 한겨레 신문은 1991년 서울 공덕동에 새 사옥을 마련하고 독일산 윤전기를 들여놓았다.
한겨레 신문은 신규 사업으로 새 매체를 내놓았다. 1994년 , 1996년 이 태어났다. 두 매체는 창간 이듬해부터 흑자를 냈다. 하지만 한겨레 신문사의 적자 행진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1996년 제호를 ‘한겨레’로 바꾼 이 신문사는 1997년에 이르러 차입 경영을 시작했다. 외환위기가 닥쳤지만 차입한 돈으로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 1998년 지역생활정보신문 을 창간했다. 하지만 이 신매체는 엄청난 시련을 안겨준 채 2000년 98억원 손실을 내고 폐간되었다.
2000년 한겨레는 인터넷한겨레 등을 분사하고 다시 신문 사업에만 집중했다. 판촉 경쟁에도 나섰다. ‘총알’은 은행권과 정부로부터 단기차입금 2백40억원 가량을 조달해 마련했다. 하지만 메이저 신문과의 물량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겨레는 큰 상처만 입은 채 후퇴해야 했다.
2003년 초 임직원의 퇴직금 출자전환제를 통해 80여억원을 모아 위기를 모면한 한겨레는 다시 사업 다각화를 꾀했다. 2003년 진보적인 여성지를 표방하는 를 창간했고, 인쇄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경향신문에서 인쇄법인을 인수했다. 하지만 시장은 외면했다. 도 18억원 적자를 내 정리되는 운명을 맞았고, 인수한 인쇄법인도 20억원이 넘는 손실을 안겼다.
지난해 한겨레 위기는 회사채에서 촉발되었다. 2001년 빌린 재경부 특별보증 회사채 1백50억원의 만기가 돌아왔지만 언론사는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무렵 한겨레가 위험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신문사들은 금융권의 기피 대상이다. 미수금이 2조원에 달하는 데도 돈을 더 내놓으라고 하는 언론사를 누가 환영하겠는가. 한겨레는 다른 신문사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관행의 피해를 고스란히 본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수익을 못 내는 기업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비용 절감밖에 없었다. 한겨레는 노사 공동으로 비상경영위원회(비경위)를 꾸려 구조 개혁 작업에 나섰다. 퇴직금 중간 정산분 지급을 유보하고 2005년까지 상여금을 전액 삭감하는 식으로 50여억원을 만들었다. 회사채 일부를 상환하고 일부는 높은 이자를 주고 만기를 연장했다. 지난해 한겨레 금융 조달을 기획했던 한 금융사 직원은 “한겨레는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몇 달을 유예하는 땜질식 처방을 썼다. 한겨레가 1~2년 새 무너질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퇴직금·상여금까지 다 내놓았는데…”
비경위는 한편으로 10년 이상 장기 근속 사원을 희망 퇴직 시키는 자구책을 내놓았다. 조선·중앙·동아의 인건비 비중이 13~15%인 데 반해 한겨레의 비중은 30%나 되었다. 김을호·김선주·손석춘 씨 등이 희망 퇴직을 하고 정든 신문사를 떠났다. 그러나 제 살을 깎는 구조 개혁 과정에서 탄탄하던 한겨레의 결속력은 급격히 무너졌다. 갈등과 균열이 사내 게시판에서 폭발했다. 전에 찾아보지 못했던 편집국과 지원 부서 사이의 갈등, 직군간 갈등이 표출되었고, 여기에 세대간 갈등까지 이어졌다. 이 갈등은 한겨레이기 때문에 가능한 민주적 의사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봉합과 치유 과정에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자구책은 또 다른 그늘을 드리웠다. 기자와 사원 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한겨레 구성원들이 갖는 급여에 대한 인식은 다른 신문사와 다르다. 창간 당시 대표이사는 월 91만원, 이사진은 월평균 80만원, 1년차 기자들은 월평균 35만원을 받았다. 중앙 일간지의 신입 기자들이 평균 연봉 1천만원을 받을 때였다. 다른 신문사를 다니다가 한겨레로 자리를 옮긴 기자들은 보통 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의 40~50%를 받았다. 그래도 다시 돌아가는 기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악화했다. 한 사원은 “퇴직금을 다 내놓았고 이제 상여금까지 내놓았는데 이마저 바닥이 보인다. 나를 포함해 버티기 어려운 사람들이 다른 데서 살 길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10년차 기자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모른다. 부업에 나선 아내를 볼 면목이 없다”라고 말했다. 편집국의 한 부장은 “청춘을 한겨레에 바치고도 힘없이 걸어나가는 선배들을 보니 한없이 초라해진다. 후배들에게 제 갈 길을 찾으라고 말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점점 감당하기 힘든 생활고가 자부심과 도덕적 우월감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 고희범 사장은 “한겨레 구성원들의 자부심은 변한 게 없다”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의 경영 위기는 경기 침체와 신문 시장 축소 등 외부 환경 탓이 크다. 한겨레는 창사 이래 정도 경영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일부 언론사처럼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특혜 시비가 일어날 소지가 있는 사업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신문사의 부채나 적자 규모도 다른 언론사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다. 한국·세계·경향·국민 일보처럼 자본 잠식 상태인 것도 아니다.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저력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한겨레 위기에는 또 다른 국면이 있다. 무엇보다 신문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볼 것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한겨레 기자들도 대부분 인정했다. 한 9년차 기자는 “한창 필드를 뛸 나이지만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는다. 주변 기자들도 대부분 의욕을 잃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도약 청사진, 1월 하순 발표키로
2년마다 투표로 사장과 편집국장을 뽑는 한겨레의 선거제도가 지면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편집국장 직선제는 민주적인 제도임에 틀림없지만 16년 동안 파벌 논쟁의 발화점이기도 했다. 한겨레 기자들은 선거 때마다 편을 갈라 충돌했다. 또 선거 결과에 따라 편집국 진용이 새로 짜였다. 친정부적인 성향이 언론의 존재 이유인 비판 기능을 무디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그래서 ‘국민 신문’ 한겨레를 국민이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발행 부수는 늘지 않고 있다. 특히 절대 지지층이었던 젊은층에서도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류 신문과의 광고 격차도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조선일보가 2천9백억원, 중앙일보가 2천6백억원의 광고 매출을 올린 데 반해, 한겨레는 연간 순수 광고 3백84억원, 협찬 광고 58억원에 그쳤다. 한 대형 광고회사에서 신문 광고를 담당하는 간부는 “시간이 갈수록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창간 이래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겨울을 통과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구조 조정을 마무리짓고 ‘제품전략 연구팀’과 ‘전략 마케팅팀’을 발족했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한겨레의 실천 방안은 1월 하순 발표될 예정이다. ‘한겨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며 릴레이 광고를 내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은 한겨레만이 갖고 있는 최대 자산이다. 국민이 만든 ‘국민 신문’ 한겨레의 ‘새봄’이 기대된다.
기사제공 = 시사저널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