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깨닷지 못한 많은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인간을 사랑한다면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때 왜 천사를 보내서 말리지 않았을까?
하필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이 죄를 짓게 만들었을까?
라면서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정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터 등을 돌립니다.
자기가 잘못한 죄를 자기 스스로 정죄하고
'나 같은 더러운 인간은 하나님이 안받아 주실거야'
라며 하나님과 거리를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을 사랑하십니다.
인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주셨고
로봇처럼 마음대로 그 사람을 조정하지 않으시고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놔두셨습니다.
이사야 43:25~ 26을 보면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고 말하셨고.
이사야 44:22에서는
' 네 죄들을 지워버렸으니, 내게로 돌아오라.'
라고 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을 보시면 예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을 모아 두시고 연설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리들이란 깡패들을 말합니다. 그런 자들 마저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죄인과 세리들마저 예수께서는 받아들이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우리라고 못받아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구원과 죄를 지워버린것 둘중 어느게 먼저겠습니까?
당연히 죄를 지워버리고 난 후 인간들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의미를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일조를 열심히 갖다 바치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할텐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뭐가 아쉬워서 십일조를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빵을 드시겠습니까? 돈으로 집을 지으시겠습니까?
사도행전 17장 24절부터 25절까지 이런말이 나옵니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니 그분은 손으로지은 신전에 거주하지 아니하시며 또한 무엇이 부족한 것같이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그리고 모든 것들을 친히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
말라기에 나와있는 십일조는 번제 제를 올리는
유대인들이 다른일에 신경쓰지 않고 번제제만 드릴수 있도록 만든 율법입니다.
말라기 이후에.. 신약의 사도행전이후부터는 절대 십일조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없으며 단지 예수께서 모든 율법을 폐하셨다고 나옵니다.
물론 율법에 대해서 한없이 써 드릴수도 있으나 그냥 율법에 대해서는
이정도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단지 예수님은 모든 율법 행위들을 가증스럽게 보셨다는 것만 기억해 두시고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성령을 받으신 목사님으로부터 설교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단지 그런 목사들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일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모든 율법을 가증스럽게 여겨, 예수께서 친히 돌아가시면서 모두 없애버린것을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들은 십일조만큼은 지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밥줄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부르짖으면서도 실제로는 구원받지 못한 율법 행위들을 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담을 주시려고 인간을 구원 한 것입니까?
모든것을 친히 주시는 분이 뭐가 아쉬워서 달라고 한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단지 사랑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 하십니다.
그 사랑의 자본이 되는 것은 구원입니다. 구원을 자본으로 하여 서로 사랑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라는 새계명을 주신것은 바울서신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제단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사셨습니다.
창22:8, 창8:20, 창12:8, 창 13:18, 창 28:10~11 16~19, 삿 6:24, 삿 13 : 19~20, 삼상 7: 16~17, 삼하 24: 24 ~ 25를 보시면 하나님께 번제제물을 바치면서 제단을 사용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을 잘 보다보면 제단은 구약에만 나타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제단은 구약시대의 율법이었습니다.
신명기 27장 1절부터 8절까지 제단을 쌓는것을 보다 보면 5절~8절에 이런말이 나옵니다. " 거기서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제단 곧 돌 제단을 쌓을 것이며, 그 돌들 위에 어떤 철 연장도 대지 말지니라. 너는 온전한 돌들로 주 너의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주 너의 하나님께 번제 예물을 드릴 것이며 또 너는 화목제 예물을 드리고, 거기서 먹고 주너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들을 아주 분명하게 그 돌들위에 기록할지니라, 하니라."
또 출애굽기 20장 25절에 이런말이 나옵니다. " 만일 네가 내게 돌제단을 세우려거든 다듬은 돌로 그것을 쌓지 말라. 네가 돌 위에 연장을 대면 너는 그것을 이미 부정하게 한 것이니라."
여호수아 8장 30절~31절에 보면, "그때에 여호수아가 에발산에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위하여 한 제단을 쌓았으니 이것은 주님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령하였던 것과 같이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아무도 철 연장을 대지 아니하고 다듬지 아니한 돌로 만든 한 제단이라. 그들이 주님께 그 위에 번제예물과 화목제예물을 드렸더라."
즉, 제단을 만들되 다듬지 않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그대로의 돌로 제단을 쌓으라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말씀을 보겠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얼굴을 땅에 대시고 기도드리며 말씀하시기를, 오 나의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 글은 '나는 다듬기를 원하는데 아버님께서 다듬기를 원하시지 않으시면 아버님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구약시대 처음에는 번제예물만 드리다가 율법이 생긴후로는 번제예물과 속죄제를 같이 드렸습니다. 이러한 모든 율법들이 갑자기 신약에 와서는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번제제와 속죄제를 단번에 모두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번제제와 속죄제는 동물을 죽임으로써 그 피로 인간들의 잘못한 죄를 씻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죄덩어리이기 때문에 번제예물로는 불가능하고 속죄제만 드릴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친히 번제예물과 속죄예물이 되시어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인류를 구원하리라는 암시는 창세기 22장 7절,8절에도 잘 나와있습니다. "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여,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니 이삭이 말하기를, 보옵소서,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예물에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하니,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을 번제 예물에 쓰실 한 어린양으로 예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가니라." (이 부분은 흠정역 킹제임스 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중에도 "하늘에서 이루신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친히 독생자 예수를 땅에 보내시어 번제예물과 속죄제를 올린것과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놋뱀과 여호와의 궤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민수기 21장 8절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불뱀을 만들어서 그것을 장대 위에 달아 놓으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
출애굽기 25장 9절-11절
'너희는 내가 네게 보여주는 대로 성막의 양식과 모든 기구들의 양식을 따라 그것을 만들지니라.
그들은 시팀나무로 궤를 만들지니, 곳 그 길이는 두 규빗 반이요, 그 넓이가 한 규빗 반이요, 그 높이는 한 규빗 반이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 궤를 입히되. 안과 밖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
그러나 십자가에 대해서는 예전에 말씀드린것 처럼 성경 어디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으며 단지 비슷한 구절도 찾아보면 전부 저주나 가증스러운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만들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이교 숭배물이었으며 현대에 이르러
양으로 위장한 염소무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바 같이 자기눈에 보기 좋은것, 즉 자기를 충족시키는 형상을 다듬어 만드는 것은 우상숭배와 종교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어디서도 마리아를 숭배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의 형상을 만들고 마리아의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비슷한 구절을 찾다보면
계시록에 짐승의 형상에 경배하는 것이 나옵니다.
카톨릭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카톨릭 신자들은 지옥보다는 연옥에 가는게 훨씬 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연옥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카톨릭은 지옥마저도 연옥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그래야 사제들도 존속하고 성사를 집전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기들의 죄 가운데서 죽은 자들이 불못(지옥)에서 영원토록 불탄다고 말씀합니다.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로다. 또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엎드려 숭배하는 자들과 누구든지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낮이나 밤이나 쉼을 얻지 못하리라." (계 14: 11)
지옥으로 간사람에게는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연옥이라는 것을 믿게 만들고 자신의 특별한 권세로 불 속에 있는 그들의 혼을 꺼내 줄 수 있다고 믿게 만들면 사람들은 신부가 하라는 것은 뭐든지 하고 내라는 것은 뭐든지 낼 것입니다.
연옥은 카톨릭 신자들을 통제하는 하나의 강력한 무기인 셈입니다.
이 카톨릭이란 체제는 말씀드린바 대로 염소들의 무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 마저도 사랑하셔서
이들이 하나님에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계시록에서는 분명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또 다른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나의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오라.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의 재앙들도 받지 말라.
이는 그녀의 죄들이 하늘에까지 닿았으며, 하나님께서 그녀의 불법들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라.
그녀가 너희에게 보응해준 그대로 그녀에게 돌려주고, 그녀의 행위에 따라 두 배로 갚아주라. 그녀가 채운 잔에도 두배나 채워 그녀에게 주라.(계 18:4~ 6)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성경에서 여자로 통합니다.
유대교 랍비에게 물어보셔도 아시겠지만
부모에게 여자라는 호칭을 하는 것은
상당히 불손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마리아를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훗날 마리아가 우상숭배의 중심이 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