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오묘한 생물이다.
자기 자신을 구덩이로 밀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구한다.
그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으면 더 깊은 구덩이로 밀어낸다.
인간들의 심리들은 대부분 포장을 잘 한 오물에 불과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현지의 종교라 생각한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애완동물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말로만 애완동물이라 한다.
그러나 애완동물들의 입장에서는 구속을 당하는 것이다.
인간 역시 이와 비슷한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 칭한다.
그러나 그 인식부터 인간이란 존재의 가치를 정상에 두고자한다.
이 가치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수많은 뿌리들이 거두어졌다.
난 그 가치로인한 뿌리 중 하나인 종교에 대해 논하고자한다.
본래 종교의 의미는 통치자의 말에 권력을 불어넣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안락한 생활에 연속으로 종교의 의미는 점점 더 인간들의 추태로 몰락했다.
인간들은 자기 자신들의 존재가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종교를 인용하여 자기 자신을 보호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의지해야할 기둥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그 종교의 가치관은 본래 통치자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다.
즉 그 종교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게 된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선과 악이라는 일반적인 언어는 절대악과 절대선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선의 입장에서 본 자들이다.
선은 민간인, 악은 강도. 대충 이런 식이다.
그러나 강도에게 있어서는 사회가 악이며 우리는 악마다.
그들에게 적응할 수 없는 사회가 주어지면 그들은 소멸하게 된다.
노력을 해도 적응을 할 수 없다면 그로써 끝이다.
결국 인간 세계에도 약육강식이다.
선과 악, 이 두가지도 약육강식이라 축약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들은 이 사실에 대해 알고있다.
이들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선과 악을 나누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기준으로 잡고 만물을 본다.
그러기에 우리는 선할 수 밖에 없게되어버렸다.
신 조차 이 영역은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우리들을 위해서였다.
결국 인간역시 더러운 오물을 포장만 그럴듯하게 해놓은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더러운 포장물은 우리에게 있어서 욕망이다.
자기 자신이 고통을 받는것보다 먼저 고통을 주는것이 덜 아프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렇게 끊임없는 고통과 욕망을 주고 받으며 여기까지왔다.
하지만 여기까지와서 얻은 것이 무엇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 있는가?
더욱더 골치만 아프게 되었다.
단 하루만에, 지구의 생물들이 사라질 수 있다.
이 골치아픈 회로는 인간이 뿌리내린 씨앗이다.
왜 그랬을까? 우리 인간 자체는 악이다.
그러나 악인 동시에 선이다.
자신에겐 선이나 자신이 아닌 존재에게는 악이다.
인간에게는 악과 선이 언제나 공존하게 된다.
그럼으로 인해 고통과 욕망이 오고가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축복받은 존재라던지 지구에서 가장 훌륭한 생물이라던지.
단지 선과 악이 공존해있는 생물일 뿐이다.
내 비록 인간이지만 인간의 구차한 구걸을 눈뜨고 볼 수 없어 글을 쓰게되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노골적으로 인간은 욕망을 바란다.
더 이상 자신을 선에 관점에 두지 말고, 인생을 즐겨라.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즐기며 살아라.
신이 아닌 자신만을 위해서, 혹은 자신에게 보답할 수 있는 무언가에.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무언가에.
자신의 구차한 구걸을 위하여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길 바란다.
신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신조차 인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인지 신에게 의존하려한다. 생각해보아라.
자신에게 오만하여 시간을 포장에만 힘쓰다가 죽은 사람과.
포장은 허름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게 되었다면.
내일은 신의 존재 부정에 대해 올리겠다.
신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 내 글이 정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