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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몽양 2급 서훈 유감(조영건 경남대 교수·한국사회경제학회명예회장)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저 못되먹은 파쇼의 족벌, 핫바지 왕초 (이발사)Rhie와 매국언론 매국군벌 민족반역의 도당이 몽양선생을 쫓아내고 (지네들 맘대로의)자칭 "민족주의자"라는 개량주의자들의 난장판을 만들었습니다.
몽양 선생의 서훈은 統一高麗에서 특급, 0등급으로 바쳐져야 되겠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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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 선생을 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의위원회에서 2등급 서훈으로 판정한 것을 정부가 추인한 바로 그날, 몽양추모사업회가 6·15공동선언 시대를 맞아 몽양 여운형기념사업회로 재발족하는 총회에서는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항변이 이어졌다.

“13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서훈을 신청했다. 어떻게든 서훈되어야 한다. 그러나 몽양은 특급이다.”(조윤구 선생)

“분단 상황 아래 서훈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 냉전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부에서 서훈을 받는 것은 몽양을 모독하는 것이다. 서훈을 구걸해서는 안된다.”(이종린 범민련명예대표)

몽양 여운형(1886~1947)은 누구인가. 청년 몽양은 중국 대륙에서 상하이임시정부와 연결 아래 신한청년당을 결성, 약관의 나이에 민족지도자로 부상한다. 1918년엔 미국 대통령특사 크레인에게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독립청원서를 전달하기 위해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했다. 이듬해 도쿄에서는 일제 수뇌부의 자치제 제안을 공박하고 즉시 독립을 주창한 데 이어 22년 모스크바 피압박민족대회에 대표로 참석해 레닌과 스탈린에게 자주독립을 역설했다. 그리고 25년 중국혁명과 국·공합작에 관여한 뒤 중국공산당 당원대우와 함께 손문의 권유로 중국국민당에 입당한다. 28년 상하이 복단대학 축구팀을 인솔, 동남아 일대를 돌며 아시아민족의 단결을 주창했고 이듬해 일본경찰에 체포돼 3년 옥고를 겪었다.

-분단논리 매인 엉터리 평가-

30년대에는 조선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했으나 조선체육회회장을 함께 맡으면서 손기정 일장기말소사건의 배후로 지목, 신문이 폐간당하기도 했다. 이어 경성헌병대에 연행돼 구속됐다가 가석방됐다. 그는 44년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하면서 무장투쟁을 준비하고 중국 조선독립동맹과 임정과의 연계를 도모한다. 45년 8·15 해방 국면에서는 치안유지 책임을 맡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 신생공화국의 역사적 대업에 나서게 된다.

몽양은 일제때 일본 천황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조선 독립을 역설, 히로히토가 나중에 “당당하고 담대한 여운형이 조선인인 것이 애석하다”고 할 만큼 거침없는 혁명적 독립운동가였다. 일본 고려사찰에 남긴 ‘혈농어수(血濃於水)’-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글귀는 몽양의 진하디 진한 민족 사랑을 말해주는 사례다. 보훈처의 몽양 자료집 골격도 위의 약전(略傳)과 같다. 그런데 몽양에 대한 2등급 서훈 판정과 함께 1급도 될 수 있고 2급도 될 수 있다는 사족을 어떻게 평가해야 옳은 것인가. 중국 혁명을 언론을 통해 세계에 알린 에드가 스노는 “몽양을 건국에서 놓친 것이 한국 현대사의 혼란과 비극의 귀결”이라고 했다.

광복 60년, 그러나 우중정치의 암흑 60년을 지내오면서도 국민은 몽양을 알고, 몽양의 무게를 느끼고, 몽양의 애국 행로를 소중해 한다. 그런데 냉전논리, 흑백논리, 분단논리의 멍에에 묶인 옹색하고 졸렬한 역사 오도와 민족자존의 훼손을 어떻게 감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래서는 과거사 청산도, 화해협력도, 민족상생도, 동북아와 세계 속에서의 웅비도 공염불이다. 제 민족의 독립운동을 왜곡하고, 애국지도자를 폄하하고, 그리하여 세계 만방에 조롱거리가 되고, 끝내 나라와 겨레를 2등급으로 묶어 놓고는 문명국이자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화해·민족상생 되겠는가-

물론 서훈의 등급에 몽양의 고혼(孤魂)도, 직계 유족도, 그리고 국민도 연연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 29명의 1급 서훈자에는 몽양과 함께 한 파리강화회의의 독립 청원을 시작으로 해방 국면에서 자주독립 통일국가를 이룩하려다 숨진 뒤 지금 평양 애국열사능에 잠들어 있는 우사 김규식도 있다. 그리고 2급에는 반민특위에 의해 1급 친일파로 제소된 인사도 들어 있다. 아직 애국과 매국이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은채 또다시 서훈의 잘잘못을 얘기해야 한다는 게 자못 부끄럽다.

좌우를 가르고 분열을 즐기는 악폐는 더이상 재연돼서는 안된다. 20세기 민족의 위인을 모독해서야 21세기 통일조국의 전망이 없다. 민족의 사표 몽양 여운형 선생이 남긴 겨레 사랑의 뜨거운 심장과 숭고한 뜻을 다시 살펴볼 때이다.


입력: 2005년 02월 25일 17:27:46 / 최종 편집: 2005년 02월 25일 17:27:46


치세
2005-02-26 21:25:52
898 번 읽음
  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시작 '05.2.26 10:20 PM 신고
    어떤상을 주던...
    상은 상입니다.. ↓댓글에댓글
  2. 2. 박병철 '05.2.27 1:39 AM 신고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는 S사의 광고가 생각나는군요.
    똑같은 행위에 대한 판단도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죠. 세월이 더 흘러야 제대로된 평가가 나올거 같네요.

    몽양 기념사업회에 말하는것도 이해는 가나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에 대해서 말하는거죠. 몽양사업회장이 몽양의 손자인가 그런거 같더라구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법이죠.

    사실 자신과 이익이 관련있지 않으면 저렇게까지 행동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몽양선생이 객관적이고 제대로된 평가를 받으려면 전혀 몽양선생과 관련 없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몽양선생이 남긴 업적에 대해서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너무 이상적인건가...^^

    신용하 국가보훈처 국가유공자 공적심사위원장이 여운형선생 포상에 대한 견해를 밝힌것을 들어보면 건국전에 암살당했다는 부분이 강조되더군요.

    실질적으로 건국을 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것과, 건국하는데 노력은 했지만 직접적인 행위를 하지 못한것과 다르다는 설명이던데... 그 판단이 합리적인 판단인거 같습니다.

    결과를 이루어낸 사람은 1등급과 조력자는 2등급.
    현실은 냉엄하죠... 2등은 애석하다는 표현이 맞는듯.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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