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짜리 부모잃은 꼬마가 있습니다. 그의 친부모는 J라는 사람에게 살해당했으며, J는 그 꼬마에게 앵벌이를 시키다 경찰에 잡혀갔습니다.
혼자남은 꼬마는 춥고 배고픔에 지쳐갔습니다. 그동안 몇몇 후견인이 나서긴 했습니다만 그 누구도 이 꼬마를 살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P라는 사람이 이 꼬마의 후견인으로 나섰습니다. P는 그 꼬마에게는 원수와도 같았던 J의 집에서 합의금을 얻어 우선 옷을 입히고 굶주림을 해결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꼬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시켜서 돈을 벌었죠. 꼬마가 싫다고 울면 매를 들고 때려가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돈을 번 덕분에 꼬마는 더이상 굶주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꼬마는 사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자신의 장래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죠. 하지만 P의 뒤를 이은 새로운 후견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단지 P가 하던 대로 꼬마를 윽박지르면서 일을 시키려고 할 뿐이었습니다. P가 입혔던 그 옷을, 지금은 작아져서 단추도 채워지지 않는 그 옷을 그대로 입힌채 말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훌륭한 지도자인가' 하는 것이 아닐 것 같네요. 지금 그가 잘했네 못했네 따져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을 테니까요.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수십년이 더 지난 후 역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나라에 박정희와 같은 대통령이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지금은 박정희가 필요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박정희의 과를 강조하는 것일 테고, 반대쪽에서는 (박정희교의 신자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누구 덕분에 먹고 살게 됐는데'라는 생각으로 그의 공을 강조하는 것일 테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밑에 누군가도 말했지만, 지금 박정희 대통령이 나타난다면 정말 절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과거, 그리고 집권시의 실행방식이 어쨋든 그의 덕분에 제가 이렇게 따뜻하게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경제개발계획이 장면정부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말도 있지만,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실행자의 리더쉽이 없으면 제대로 실행할 수 없죠.)
하지만 그 박정희대통령이 다시한번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제발 그만 쉬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위에서 우화 비슷하게 썼지만 해방 직후에는 유신시대때와 같은 '밀어붙여'식 경제개발이 가능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식의 개발은 안됩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영리해졌거든요. 지금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정책이 아니라 동의를 얻는 정책이 필요할 때입니다.(지금은 오히려 늦었다고 할 수 있죠. 7,80년대쯤에 일단 경제성장을 멈추고 정책을 바꾸었다면 IMF도 없지 않았을까요?)
그냥 박정희의 리더쉽 안에서 그냥 살아도 되긴 합니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고, 주면 주는대로 받아먹는, 그런 생활이 더 편할 수도 있죠. 하지만 문제는 훌륭한 지도자는 그리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지도자 밑에서는 발전을 이루겠지만, 그보다 훨씬 자주 만나는 멍청하고 욕심많은 지도자 밑에서는 나라를 말아먹고 맙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고통스럽더라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더 낫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런 사회가 될 수 있는 기회구요. 지금 힘들다고 박정희의 리더쉽을 다시 찾는다면, 그 리더쉽이 사라진 후 똑같은 혼란이 진행될 것입니다. 다시 다른 박정희의 리더쉽이 나타날 때까지요.